2022년 12월 25일 오전 11시 21분쯤 경기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이기영의 여자친구 C씨였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시신은 며칠 전 교통사고 문제로 이기영과 만난 뒤 연락이 끊긴 택시기사 A씨였다.
경찰은 C씨를 상대로 사건 경위를 확인한 뒤 이기영을 살해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시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긴급체포됐다.
단순 살인 사건으로 보였던 수사는 곧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A씨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기영이 살던 아파트 명의자가 동거녀 B씨라는 점을 확인했다. B씨는 2022년 8월 초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명의의 신용카드 대출과 사용 내역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기영은 처음에는 “B씨가 갑자기 집을 나갔고 나도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가 자기 명의의 집을 두고 사라질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점, 실종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 B씨가 모습을 감춘 직후 이기영이 새로운 여자친구 C씨와 동거를 시작한 점 등을 추궁했다.
결국 이기영은 “지난 8월 3일 B씨를 살해한 뒤 파주시의 한 강가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택시기사 살해 사건으로 시작된 수사는 두 명의 피해자가 희생된 연쇄 강도살인 사건으로 번졌다.
재력가 행세 뒤 드러난 본색…동거녀 명의로 대출까지
이기영은 2017년 겨울쯤 노래방 종업원으로 일하던 B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결혼한 상태였지만 B씨와 불륜 관계를 이어갔고 2020년 음주운전 등으로 법정구속됐다가 2021년 6월 출소한 뒤에도 관계를 계속했다. 같은 해 12월쯤 배우자에게 불륜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B씨의 주거지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기영은 자신이 건물주의 손자이며 아파트와 건물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다고 속였다.
토목 관련 사무실과 자전거 매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다. 동거 초기에는 가족에게 빌린 돈을 B씨에게 건네며 재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이후 2022년 2월 아내와 이혼한 뒤에는 B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생활을 이어갔다. 실제로 그는 별다른 수입이나 재산이 없었고 채무, 카드대금 연체, 체납 세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기영은 B씨에게 카드론 대출을 받게 한 뒤 그 돈을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으로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폭력도 잦아졌다. 급기야 B씨의 지인을 폭행해 입원 치료를 받게 한 일도 있었다.
‘먹으면 죽는 농약’ 검색한 날, 렌치로 동거녀 살해
경찰 수사 결과 이기영은 2022년 8월 3일 인터넷에 수상한 검색어를 입력했다.
검색어에는 ‘잡초제거제’, ‘잡초제거제 먹었을 때’, ‘먹으면 죽는 농약’, ‘핸드폰 핀 번호 잃어버렸을 때 푸는 법’ 등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이기영이 B씨 소유 아파트와 예금을 차지하기 위해 범행 방법과 휴대전화 잠금 해제 방법을 미리 검색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기영은 농약 등 독극물을 이용한 범행이 어렵다고 보고 평소 자전거 수리 등에 사용하던 L자형 철제 렌치를 범행 도구로 삼았다.
그는 같은 날 B씨의 주거지 안방에서 렌치로 B씨의 머리와 몸통을 여러 차례 내리쳤고 B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범행 다음 날 이기영은 B씨의 시신을 차량용 루프백에 담았다. 범행 도구인 렌치도 함께 넣은 뒤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파주시의 한 장소로 이동해 땅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 수사 과정에서는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시신을 유기한 정황도 확인됐다.
B씨가 숨진 뒤에도 이기영은 B씨 명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휴대전화를 계속 사용했다. 2022년 8월 3일부터 10월 26일까지 총 31회에 걸쳐 약 3696만 원을 결제하거나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고 B씨 명의 체크카드로도 93회에 걸쳐 약 4193만 원을 사용했다.
그는 B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기기 위해 3개월간 B씨의 메신저 계정에 접속해 총 92차례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B씨인 것처럼 연락하며 사망 사실을 숨겼다.
돈이 떨어지자 범행은 또 다른 사기로 이어졌다. 이기영은 B씨 명의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위조한 뒤 아버지에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내 소유인데 명의만 B씨로 돼 있다. 아파트를 팔아 돈을 갚겠다”고 속여 약 1000만 원을 받아냈다.
“합의금 주겠다”…음주 사고 뒤 택시기사 집으로 유인
B씨를 살해한 지 약 4개월 뒤인 2022년 12월 20일 밤 또 다른 피해자가 이기영의 집으로 들어갔다. 택시기사 A씨였다.
이기영은 이날 오후 10시 5분쯤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몰다가 직진 신호에 따라 진행하던 A씨의 택시와 충돌했다.
그는 이미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고 당시 누범기간 중이었다. 다시 음주운전 사실이 경찰에 신고되면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기영은 A씨에게 경찰이나 보험회사에 신고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 현금으로 합의금을 주겠다”고 말해 A씨를 자신의 주거지로 유인했다. 그러나 당시 이기영의 계좌에는 약 17만 원밖에 없었다.
A씨가 이기영의 집 앞에 도착한 시각은 같은 날 밤 10시 48분에서 11시 14분 사이였다. 이기영이 약속한 합의금을 주지 않자 A씨는 112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기영은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했고 주먹으로 A씨의 몸을 여러 차례 때리며 밀쳤다. A씨가 넘어지자 그의 가슴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눌렀다. A씨가 저항하자 집 안에 있던 5㎏짜리 아령을 들어 이마 중앙 부위를 두 차례 힘껏 내리쳤다. A씨는 두개골 함몰과 경부압박 질식 등이 겹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기영은 A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작은방 옷장 안에 넣었다. 허리띠로 고정하고 종이상자로 가린 뒤 옷장 문을 닫았으며 손잡이는 끈으로 묶어뒀다. 이후에는 A씨의 휴대전화와 카드를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
이기영은 2022년 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A씨 명의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총 6회에 걸쳐 약 4788만 원을 이체했다. A씨 명의 신용카드로도 총 5회에 걸쳐 약 769만 원을 결제했다. 이 돈은 명품 커플링 구매와 여자친구와의 숙박비 결제 등에 쓰였다.
그는 A씨 가족에게도 피해자인 척 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한 뒤 메신저에 접속해 2022년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총 132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A씨의 딸은 아버지의 연락 방식이 평소와 다르다고 의심했고 결국 실종신고를 했다.
이후 이기영의 여자친구 C씨가 집 안 옷장을 열었다가 A씨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범행은 드러났다.
검찰은 사형 구형…법원은 무기징역 선고
이기영에게는 강도살인, 보복살인, 사체유기, 사체은닉, 컴퓨터등사용사기, 사기,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정보통신망 침해 등 다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이라며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이기영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기영의 범행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내하고 용서할 정도를 이미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사형이 인간의 생명 자체를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들어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범행을 다시는 저지를 수 없도록 사형을 선고함이 마땅해 보일 수 있다”고 하면서도 “법이 허용했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원심의 무기징역이 너무 가볍고 이기영에게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범행의 잔혹함, 동기와 결과를 볼 때 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게 마땅할 수 있어 형을 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무기징역형으로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