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목격자는 왜 위증범이 됐나…포천 교통사고 20년 만에 재심 청구

 

2003년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실형이 확정된 이수재씨와 당시 사고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처벌받은 성기수씨, 고(故) 전영도씨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재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23일 의정부지방법원에 이씨와 성씨, 전씨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기존 교통사고 유죄 판결뿐 아니라 목격자들의 위증 유죄 판결까지 함께 문제 삼는 재심 청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운전자는 누구였나”…사고 직후부터 엇갈린 진술


사건은 2003년 9월 28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의 한 군부대 앞 도로에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승용차 한 대가 도로를 벗어나 전신주와 나무를 들이받았고,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이씨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는 숨졌다.

 

검찰은 이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13% 상태에서 무면허로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이씨는 사고 직후부터 자신은 운전자가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동승자였다고 주장했으며, 차량이 출발할 당시 A씨가 운전석에 앉았고 이씨가 조수석에 탔다는 목격자 진술도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사람은 이수재씨였다”


사고 직후 현장을 봤다는 목격자들도 있었다. 성기수씨는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리다 군부대 위병소 방향으로 진행했고 이후 “쿵” 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차를 세운 뒤 사고 현장으로 가 차량 내부를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전영도씨 역시 사고 직후 현장에서 경찰에게 인적사항을 남긴 목격자로 기재됐다.

 

두 사람은 이후 이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씨가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차량 안을 직접 봤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의 얼굴과 인상착의를 기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성씨와 전씨의 증언보다 구조자와 경찰관의 진술에 더 무게를 뒀다.

 

앰뷸런스 기사 B씨와 소방공무원 C씨는 사고 직후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먼저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고, 조수석 탑승자는 문 쪽에 끼어 나중에 구조됐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먼저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사람이 이씨였고, 뒤늦게 구조된 조수석 탑승자가 A씨였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D씨도 법정에서 조수석 탑승자의 소지품에서 운전면허증을 확인해 그가 이씨가 아닌 A씨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사고 현장을 직접 봤다는 목격자들의 말보다 구조 순서와 경찰관의 신원 확인 진술을 더 신뢰했고, 이를 토대로 이씨가 운전석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목격자들이 사고 발생 약 21개월이 지난 뒤에도 조수석 탑승자의 얼굴과 옷차림을 구체적으로 기억한다는 점이 이례적이고, 차량 파손 상태와 탑승자들의 부상 정도를 고려하면 사고 직후 얼굴을 정확히 식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씨는 운전자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이 2006년 7월 이씨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목격자들도 위증죄로 처벌


문제는 이씨가 조수석에 있었다고 증언한 성씨와 전씨도 이후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두 사람이 “이씨가 조수석에 있었다”고 한 증언이 객관적 사실과 다르고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했으며, 성씨와 전씨에게 각각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08년 10월 두 사람의 상고를 기각했고, 이씨의 교통사고 유죄 판결뿐 아니라 목격자들의 위증 유죄 판결까지 확정됐다.

 

이후 성씨와 전씨는 형을 살고 나온 뒤에도 억울함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씨는 세상을 떠났다.

 


“목격자 조사 21개월 지연…증거 보전 기회 사라져”


20년이 지나 재심을 청구한 박 변호사 측은 두 목격자의 위증 판단 자체를 다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씨와 전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긴 목격자였는데도 수사기관이 약 21개월 동안 이들을 조사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사고 차량 내부의 혈흔과 머리카락 위치를 감식하거나 DNA 감정을 통해 탑승 위치를 확인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두 사람은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일반 시민으로서 목격한 바를 말하기 위해 경찰에게 인적사항을 남겼다”며 “그런데도 수사기관은 약 21개월 동안 이들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씨와 전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이씨와도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며 “두 사람이 이씨를 위해 허위 증언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D씨의 법정 증언도 재심 사유로 제시됐다.

 

박 변호사는 “사고 당시 119 신고는 오후 3시 28분쯤 접수됐고 구급대는 오후 3시 34분쯤 현장에 도착했으며, 탑승자들은 오후 3시 38분쯤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관 D씨는 오후 3시 40분쯤 포천경찰서에서 사고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며 “포천경찰서에서 사고 현장까지 거리는 약 23㎞로, 이 시간표대로라면 D씨가 탑승자 구조 과정을 직접 목격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에서도 경찰서에서 사고 현장까지 이동 시간을 실험한 결과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달렸을 때도 약 18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계산대로라면 D씨의 현장 도착 시각은 오후 3시 58분쯤으로 추정돼 이미 탑승자들이 구조된 뒤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초기 구급활동일지에 조수석 이송 환자가 ‘이수재’로 기재돼 있었다는 점도 재심청구서에 포함됐다.

 

박 변호사는 “구조 직후 작성된 기록에는 조수석 이송 환자가 이씨로 적혀 있었다"며 "이후 수사 과정에서 조수석 탑승자가 숨진 A씨였다는 방향으로 사실관계가 정리됐다”고 했다.

 

이어 “D씨는 구조 과정을 직접 목격할 수 없는 시간과 위치에 있었다”며 “D씨의 증언은 초동수사의 오류와 운전자 특정 과정의 취약성을 감춘 허위 서사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목격자들이 겪은 피해도 강조했다. 그는 “전씨는 6·25 참전용사였지만 위증 전과로 인해 국립묘지 안장에 어려움을 겪었고, 성씨 역시 위증 사건 이후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회는 사고를 봤으면 사실대로 말하고 범죄를 봤으면 외면하지 말라고 말한다”며 “그런데 본 대로 말한 시민이 오히려 위증죄로 처벌받는다면 누가 진실을 말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진실이 늦게 드러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재심을 통해 운전자 특정 과정과 목격자 위증 판단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장미비디오 사건’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이민형씨 사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재심을 청구해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