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에어컨 논란,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폭염 대책과 국민 박탈감 사이
교정복지보다 뒤처진 사회복지

 

최근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뒤 반대 여론이 거세다. 교도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정시설의 폭염 문제를 단순히 “수용자에게 왜 에어컨을 달아주느냐”는 감정만으로 볼 수는 없는 문제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6년 여름, 부산 등 일부 교정기관에서 노약자 수용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근무했던 대전교도소에서도 선풍기가 없는 조사실에서 60대 장애인 수용자가 숨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대전교도소의 수용정원은 2500명 정도였지만 실제 수용 인원은 3200명을 넘었다. 과밀수용 상태에서 노약자들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됐고, 각 거실에 선풍기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보안과장은 주간에 거실문을 열어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계호 원칙에는 맞지 않는 조치였다. 노약자뿐 아니라 교정사고 위험이 있는 수용자의 거실문까지 열어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다행히 그해 여름 우려했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국가가 대신 부담한 교정시설 수용자의 외부 의료시설 진료비는 305억여원, 연평균 61억여원에 달한다.

 

과밀수용이 심각한 현실에서 노약자 수용자가 폭염으로 쓰러지면 생명 위험은 물론 병원 이송과 치료비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취약 수용 공간에 한해 에어컨을 제한적으로 설치하고 관리하는 방안은 필요하다고 본다. 

 

무더위로 교정시설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결국 관리 책임은 교도관에게 돌아간다. 교도관들은 수용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국민들이 느끼는 박탈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사회 밖에서는 전기요금이 부담돼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있고 난방비와 식비, 병원비를 걱정하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도소 에어컨 설치 소식은 “범죄자는 국가가 돌보면서 왜 가난한 국민은 방치하느냐”는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불만을 교정시설 처우를 낮추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국가가 구금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따져야 할 문제는 사회 밖 취약계층의 삶이 왜 교정시설보다 더 불안정하게 느껴지느냐는 점이다.

 

나는 그 이유가 사회복지가 교정복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정시설 안에서는 겨울에 난방이 들어오고 끼니마다 식사가 제공된다. 아프면 약을 받고 병원 진료도 받을 수 있다.

 

교도관들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상담도 한다. 반면 사회 밖에서는 난방비와 전기요금이 무서워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끼니를 걱정하고 돌봐줄 사람 없이 홀로 지내다 고독사하는 사람들도 계속 나온다.

 

교도소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사회보다 교도소가 더 낫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맡았던 한 60대 수용자는 뇌병변 장애와 전립선 질환이 있었고 출소 후 가족도 주거지도 마땅치 않았다.

그는 여인숙을 전전하며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생활했고 종교단체에서 제공하는 100원짜리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결국 그는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왔다. 사회에서의 삶보다 교도소 안의 삶이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교정복지보다 못한 사회에서는 범죄 예방도 어렵다. 생계와 주거, 의료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교도소를 마지막 선택지로 여기게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방향은 분명하다. 교정시설의 처우를 무조건 낮추자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 밖 취약계층의 삶을 끌어올려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공공 요양시설과 의료·주거 안전망을 확충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논란은 단순히 수용자 처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묻는 문제다.

 

교도소가 저소득층 국민의 생활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는 분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 밖 취약계층의 삶이 교도소보다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