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섭외형에서 빌라왕 사태까지…전세사기 범죄는 어떻게 진화했나

 


집주인 섭외하던 2000년대 전세대출사기


금융기관을 상대로 전세자금 대출금을 가로채는 범죄가 계속 지능화되고 있다. 정부와 은행이 심사 절차를 강화하고 규제를 마련해도 범죄 조직은 제도 변화와 금융 환경의 빈틈을 따라 수법을 바꿔왔다.

 

2일 더시사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과거 2010년 대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이른바 ‘업자’들이 집주인과 대출 명의자를 각각 모집한 뒤 허위 임대차계약과 재직 서류를 이용해 금융기관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내는 구조로 이뤄졌다.

 

당시 전세자금 작업대출 일명 업자라 불리던 A씨는 더시사법률과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 앱으로 간단히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었다”며 “우선 전세자금 대출이 잡혀 있지 않은 주택과 협조 가능한 집주인을 찾아야 했고, 대출 명의자를 구한 뒤 허위 재직 상태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범행은 집주인을 섭외하는 업자, 대출 명의자를 구하는 업자, 허위 재직 자료를 만드는 업자 등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대출 명의자는 실제 근무하지 않는 회사에 재직 중인 것처럼 꾸며졌고, 이 과정에서 4대 보험 가입 이력을 일정 기간 소급해 만드는 방식이 활용됐다. 금융기관은 제출된 재직·소득 자료와 임대차계약서를 토대로 대출 심사를 진행했다.

 

은행이 대출 실행 전 주택 방문이나 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브로커들은 집주인과 명의자의 말을 맞추는 방식으로 심사를 통과했다.

 

대출금이 실행되면 보증금 명목으로 집주인 계좌에 돈이 들어갔고, 이후 집주인과 브로커, 명의자가 미리 정한 비율에 따라 돈을 나눠 갖는 구조였다.

 

A씨는 “명의자가 실제로 거주하지 않거나 연체가 발생해 은행에서 집주인에게 연락이 가면 집주인이 ‘세입자가 개인 사정으로 나갔다’는 식으로 말하면 은행이 곧바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전세보증금은 은행이 아니라 임차인에게 돌려주는 구조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 확인 절차의 빈틈을 파고든 범행


이 같은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금융기관의 심사 방식과 정보 확인 절차의 허점을 파고든 범죄였다.

 

금융감독원도 작업대출을 대출희망자의 정보를 위·변조해 금융회사를 속여 대출을 받는 행위로 보고 있으며, 임대차계약서나 사업자등록증 등을 위·변조하는 전세·사업자금 작업대출을 대표적인 유형으로 보고 있다.

 

금융기관을 속이는 대출사기는 전세자금 대출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후에는 대출 명의자의 직장과 재직 여부를 현장 조사 없이 서류와 전화로 확인하는 점을 악용한 신용 작업대출이 성행했다. 브로커들은 허위 재직증명서와 급여명세서, 통장 거래내역 등을 만들어 대출 부적격자가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금융감독원은 2020년 저축은행 업계와 함께 점검한 결과 가공의 회사에서 발행한 재직증명서와 급여명세서, 급여통장 입출금 내역서 등을 위조한 작업대출 43건, 2억7200만원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적발된 작업대출 이용자는 대부분 20대 대학생·취업준비생이었고, 대출금액은 400만원에서 2000만원 수준으로 모두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집주인도 모르게 이용된 청년 전월세 대출


은행들이 재직 확인과 소득자료 검증을 강화하면서 기존 방식의 작업대출은 한동안 주춤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금융거래가 확대되고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월세 보증금 대출 수요가 늘어나면서 범행 방식은 다시 바뀌었다.

 

A씨는 “과거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협조할 집주인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실제 집을 보유한 임대인이 범행 구조를 알고 가담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에는 비대면 인터넷은행을 통한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이 확대되면서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범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허위 또는 가장된 전세계약을 이용해 대출금을 실행시키는 방식이 등장했다.

 

브로커들은 급전이 필요한 청년층에게 접근해 “전월세 보증금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거나 “명의만 빌려주면 수수료를 주겠다”고 유인했다.

 

이후 실제 매물을 물색하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처럼 꾸민 뒤 금융기관으로부터 전세자금 대출이 임대인 계좌로 송금되도록 했다.

 

대출 실행 뒤에는 계약 해제나 변심을 이유로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고, 반환된 돈은 브로커와 명의자가 나눠 가졌다.

 

이 단계에서 범행 구조는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집주인이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비대면 전세자금 작업대출에서는 집주인도 계약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대출금 반환 문제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겼다.

 


빌라왕·건축왕 사건으로 커진 피해 규모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이후 무자본 갭투자형 전세사기와 결합하며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 없이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를 사들인 뒤 전세보증금을 받아 매매대금을 충당하고, 다시 다른 주택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 합계액이 건물 가치보다 커지면 세입자는 계약 만료 뒤에도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른바 ‘빌라왕’ 사건이나 ‘건축왕’ 사건으로 불린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에서도 명의상 임대인은 수백 채의 주택을 보유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보증금을 반환할 자력이 없었고, 배후에서는 분양업자·브로커·컨설팅업자 등이 임차인을 모집하거나 계약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범행이 진행됐다.

 

일부 사건에서는 원룸이나 다세대주택 여러 채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취득한 뒤 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 합계액이 건물 가치를 초과하도록 임대차계약을 반복 체결한 사례도 확인됐다.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상 일부 권리관계만 보고 계약을 체결하지만, 실제로는 선순위 담보와 다수 임차인의 보증금이 누적돼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수법이 지능화되면서 피해 구조도 달라졌다. 과거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금융기관이 직접적인 피해자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출 명의자로 이용된 청년층과 보증금을 맡긴 세입자까지 함께 피해를 입었다.

 

이후 법원도 조직적으로 이뤄진 전세대출 사기와 전세사기 범행에 엄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대출금을 편취한 사건을 넘어 브로커, 명의자, 임대인, 모집책 등이 역할을 나눠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에는 범죄단체조직 혐의까지 적용돼 중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과거와 같은 집주인 섭외형 전세자금 작업대출은 상당 부분 차단된 것으로 보고 있다

 

. 4대 보험 소급 가입 이력만으로 재직을 인정하거나, 형식적인 임대차계약서와 전화 확인만으로 대출을 실행하던 시기와 달리 현재는 소득·재직 확인, 보증기관 심사, 금융기관 간 대출정보 공유, 비대면 본인확인 절차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대출 범죄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주인 섭외형 전세자금 작업대출이 막히자 허위 재직·소득자료를 이용한 신용 작업대출로 옮겨갔고, 이후 비대면 금융거래와 청년 전월세 대출이 확대되자 스마트폰 앱과 보증서 대출 구조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다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특정 수법 하나를 차단하는 방식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출 심사 단계에서 재직·소득 자료의 진위뿐 아니라 임대차계약의 실질, 대출 실행 직후 계약 해제 여부, 보증금 반환 흐름, 동일 브로커나 동일 계좌의 반복 등장 여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도 “명의만 빌려주면 돈을 준다”, “전월세 대출을 받아 수수료를 나누자”, “소득이 없어도 대출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받으면 작업대출을 의심해야 한다. 허위 계약서 작성이나 허위 서류 제출에 관여하면 실제 돈을 대부분 브로커가 가져갔더라도 대출 신청인이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업대출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대출이 아니라 금융회사를 속이는 사기 범죄”라며 “명의만 빌려줬다고 해도 허위 서류 제출이나 허위 계약에 관여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되면 금융거래 제한과 취업상 불이익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