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줄었다는데 계좌 지급정지는 급증…신종 사기 계좌도 막는다

5대 은행 1년간 지급정지 14만9176건
투자사기·노쇼사기 등 신종 피싱 피해 확산

 

정부 대응 강화로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줄었지만 금융사기 범죄에 연루돼 은행에서 지급정지된 계좌는 1년간 15만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리딩방 사기, 노쇼사기, 로맨스 스캠 등 신종 금융사기가 확산되면서 전통적 보이스피싱 중심으로 운영돼 온 지급정지 제도의 보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금융사기 피해 접수에 따라 계좌 지급정지가 이뤄진 건수는 모두 14만9176건으로 집계됐다.

 

정부 발표 기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7개월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9353건으로 전년 동기 1만4461건보다 35.5% 감소했다.

 

반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대 은행의 계좌 지급정지 건수는 7만212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2683건의 두 배를 넘었다.

 

월별 지급정지 건수도 증가세를 보였다. 5대 은행의 지급정지 건수는 지난해 1월 5598건에서 같은 해 12월 1만2747건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1월 1만4363건, 3월 1만4982건, 4월 1만5787건을 기록했고 5월에도 1만3720건의 지급정지가 이뤄졌다.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외에 투자사기, 노쇼사기, 로맨스 스캠 등 계좌를 이용한 신종 금융사기 피해 신고가 늘면서 지급정지 건수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지급정지 제도는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재화나 용역 거래를 가장한 사기까지 폭넓게 포함할 경우 개인 간 거래 분쟁에 지급정지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용 범위가 제한돼 있었다.

 

이 때문에 노쇼사기나 투자 리딩방 사기 피해자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송금한 경우에도 보이스피싱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은행이 즉시 계좌를 동결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하더라도 현행 제도상 적용 대상인지 불명확해 계좌 차단이 지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신종 피싱 범죄 연루 계좌에 대한 임시 정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경찰청,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금융권 협회, 주요 시중은행 담당자 등이 참석한 ‘금융권 보이스피싱 근절 협의회’ 1차 회의를 열고 신종 피싱 범죄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달 말부터 금융회사는 보이스피싱인지 신종 피싱인지와 관계없이 사기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 우선 계좌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임시조치 기간은 최대 72시간이다.

 

금융회사가 자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통해 이상 거래를 탐지하거나 피해자 신고를 접수한 경우, 경찰로부터 피해 신고를 전달받은 경우 모두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회사는 신종 피싱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경찰청 통합대응단에 알리고, 경찰은 재화·용역 거래 여부와 범죄 유형, 수법 등을 확인해 72시간 안에 금융회사에 통지한다.

 

경찰이 신종 피싱으로 판단하면 금융회사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7일간 임시 거래정지를 할 수 있다.

 

이후 금융정보분석원 검토를 거쳐 범죄 연관성이 의심되는 계좌에는 원칙적으로 30일간 본정지가 이뤄진다. 경찰 요청이 있으면 한 차례 연장돼 최대 60일까지 정지될 수 있다.

 

다만 사후 지급정지가 급증한 것과 달리 피해를 미리 막기 위한 이상거래탐지시스템 임시조치는 줄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대 은행의 임시조치 건수는 4만615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8609건보다 21% 감소했다.

 

임시조치는 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이 비정상적인 거래 정황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일시적으로 거래를 차단하는 조치다.

 

사후 지급정지는 늘었지만 사전 차단 조치는 줄면서 신종 금융사기를 조기에 탐지하는 체계도 함께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공동 이상금융거래 탐지체계도 구축된다. 금융위와 금감원, 금융보안원은 경찰청 및 주요 금융권 이상거래탐지시스템 실무진과 논의해 신종 피싱 6종, 대포계좌 9종 관련 공동 탐지룰을 마련했다.

 

당국은 7월까지 업권별 모의 운영을 거쳐 정확성을 점검한 뒤 3분기 중 최종 공동룰을 확정하고 은행권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현장 부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사기가 아닌 거래에 선제적으로 임시조치를 했다가 예금주 피해가 발생하면 금융회사가 책임을 져야 할 수 있고, 관련 민원과 신고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만으로는 금융회사별 해석이 달라져 현장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신종 금융사기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범죄수익을 조기에 차단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금융권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정부와 전 금융권이 포착은 먼저, 차단은 즉시, 대응은 함께해서 피싱범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