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페트병은 안 되고, 볼펜심은 된다”…특수범죄 ‘위험한 물건’ 판단 기준은

'위험한 물건' 인정 여부가 핵심
볼펜심·스마트폰도 위험한 물건

 

특수폭행·특수협박·특수상해 등 이른바 ‘특수범죄’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은 어디까지 인정될까. 법원은 물건의 이름이나 종류만으로 위험성을 판단하지 않고, 범행 당시 물건의 상태와 사용 방식, 공격 부위,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은 특수폭행, 특수협박, 특수상해 등의 구성요건으로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위험한 물건은 본래 용도와 관계없이, 구체적인 사용 방법과 상황에 따라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을 의미한다.

 

실제 법원은 회칼이나 유리잔처럼 일반적으로 위험성이 인정되는 물건뿐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도 범행 수단과 위해 정도에 따라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해 왔다.

 

2024년 서울고법은 피해자의 등을 볼펜심으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 볼펜심을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했다. 2022년 수원지법도 피해자를 스마트폰으로 수십 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 스마트폰을 위험한 물건으로 보고 특수상해죄를 인정했다.

 

반면 같은 물건이라도 범행 당시 상태와 위해 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3년 대법원이 확정한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2L 페트병으로 피해자를 때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사안이 문제 됐다.

 

1심은 생수가 든 페트병이 사용됐다고 보고 특수상해죄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페트병 안에 물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항소심은 빈 페트병 자체를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가할 정도의 물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특수상해가 아닌 일반 상해죄만 인정했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최근에도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폭력 범행에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선민정 판사는 지난 24일 특수상해, 특수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2024년 방문취업 체류자격으로 입국한 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술집에서 술값 문제로 전모씨(59)와 말다툼을 벌이다 300ml 맥주잔을 던져 피해자의 이마에 약 7cm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 4월 오전 3시 10분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미리 준비한 길이 약 30cm의 회칼을 들고 업주 임모씨(45)를 협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범행에 사용한 맥주잔과 회칼 등을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채 폭력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 정도도 가볍지 않으며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한 점은 불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국내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법조계는 위험한 물건 해당 여부가 물건의 이름이나 종류보다 범행 당시의 객관적 위해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특수범죄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은 칼이나 둔기처럼 원래 위험한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일상적인 물건이라도 사용 방법이나 가격 부위, 범행 당시 상황에 비춰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같은 물건이라도 실제 위해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특수범죄가 아닌 일반 폭행죄나 상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며 “결국 법원은 물건 자체보다 범행 당시의 구체적인 사용 방식과 위험성을 중심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