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강력범죄 피해자들과 이들을 대리해 온 오지원 변호사 등은 15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단계에서 놓친 혐의와 증거가 검찰의 추가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례를 잇달아 소개하며 보완수사권 유지와 피해자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피해자가 배제된 검찰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며 보완수사권 유지와 함께 수사·재판 절차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씨는 경찰의 초기 수사가 상해 혐의에 머물렀지만 검찰의 추가 수사를 거쳐 성범죄 목적이 규명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후 검찰은 피고인에게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고, 대법원은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김씨는 "경찰은 내 상처조차 제대로 촬영하지 않아 가족이 대신 증거를 남겨야 했고, 수사기록 열람도 거부당했다"며 "피해자 의견도 듣지 않은 채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결국 피해자만 더 오래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인천 강화도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 한지유씨도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경찰은 해당 사건의 피해자를 방치한 의붓아버지에게 유기 혐의만 적용해 사건을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치료가 늦어지면서 피해자의 상태가 악화했다고 판단해 유기치상 혐의로 죄명을 변경해 기소했다.
한씨는 "경찰이 혈흔과 DNA 등 핵심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아 피해자 가족이 직접 증거를 찾아야 했다"며 "검찰 보완수사권까지 사라지면 피해자는 진실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세종 집단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연수씨는 경찰이 참고인 조사조차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사건을 불송치했지만,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정씨는 “보완수사가 없는 구조였다면 저는 구제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완수사는 제게 구원과도 같았다”고 강조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2023년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숨진 고(故) 김혜빈씨의 유족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는 방청객에 불과했다"며 불기소 이유를 설명받을 권리와 수사 진행 상황을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성폭력 피해자 한우리(가명)씨도 "피해자인데도 기록을 제대로 열람하지 못했고 공소장 내용도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며 "피해자를 절차의 당사자로 세우지 않는 개혁은 피해자를 지우는 개혁"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오지원 변호사는 "지난 5년간 수사 지연과 부실수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 이를 바로잡을 장치 없이 보완수사권만 폐지하면 피해 회복과 권리 구제가 더 늦어질 수 있다"며 "형사사법 절차를 개편하려면 권한 조정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 체계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공개한 통계에서도 보완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이 전국 12개 주요 검찰청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보완수사 현황을 처음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3월과 4월 처리한 송치 사건 5만 5174건 가운데 45.59%인 2만 5152건에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검찰의 보완수사는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하는 '보완수사요구' 비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파악돼 왔다.
그러나 검사가 피의자와 참고인을 직접 조사하거나 계좌추적, 압수수색 등 실질적인 보완수사 현황을 별도로 전수조사해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부 유형별로는 피의자·참고인 소환 조사와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수사가 2241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공기관 사실조회는 198건,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을 위한 영장 청구는 54건, 인신 영장 청구는 37건으로 집계됐다.
대검찰청은 동일 사건에서 여러 차례 소환 조사나 강제수사가 이뤄졌더라도 통계 왜곡을 막기 위해 사건당 1건으로만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한 보완수사요구 비율도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보완수사요구 사건은 11만 623건으로 전체 송치 사건의 10.7%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열고 검찰의 직접·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회의에서는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공백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불송치 사건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과 피해자의 재정신청권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함께 검토됐다.
법안 심사와 별도로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후속 제도 마련 필요성도 제기됐다.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강화해 수사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완수사권을 폐지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과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보호는 물론 피해자 권익이 위축되지 않도록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