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아니면 기각뿐이던 영장심사…‘조건부 석방’ 도입 논란

접근금지·전자감독으로 구금 대신 위험 통제
감독 인력과 조건 위반 대응 절차 마련 필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에 가려진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가 구속 중심의 형사사법 체계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의 방어권과 불구속 수사 원칙을 강화할 수 있지만, 조건 위반에 대한 감독과 피해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면 석방 이후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8일 국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달 각각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수사 주체를 경찰로 일원화하는 내용과 함께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가 담겼다.

 

개정안은 지방법원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도 전자장치 부착이나 주거 제한 등 일정한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도록 했다.

 

조건부로 석방된 피의자가 조건을 이행하도록 검사가 보호관찰소 등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 영장을 발부하거나 기각하는 결정을 내린다. 구속 필요성이 일부 인정되더라도 도주나 증거인멸,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다른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중간 단계가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가 도입되면 법원은 구속 사유가 인정되는 피의자에 대해 곧바로 구금할 필요가 있는지를 별도로 판단할 수 있다. 출석 의무와 주거 제한, 피해자 접근금지, 전자장치 부착 등을 통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도 실제 구금은 하지 않는 방식이다.

 

공소 제기 이후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보석과 비슷하지만 적용 시점이 다르다. 보석은 이미 구속기소된 피고인을 재판 과정에서 조건부로 석방하는 제도인 반면, 조건부 구속·석방은 수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을 심사받는 피의자에게 적용된다.

 

중병이나 출산, 가족 장례 참석 등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 이미 구속된 피고인의 구속 집행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구속집행정지와도 구별된다.

 

조건부 구속·석방은 구속 이후 발생한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 영장 발부 단계에서부터 구금 이외의 방법으로 피의자를 통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현행법에도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피의자를 조건부로 석방할 수 있는 구속적부심 제도가 있다. 법원은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보증금 납입이나 주거 제한, 출석 의무 등을 조건으로 피의자의 석방을 명할 수 있다.

 

다만 피의자가 먼저 구속된 뒤 별도의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해야 한다. 조건부 구속·석방은 피의자를 일단 구금한 뒤 석방 여부를 다시 심사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최초 영장 심사에서 조건부 석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영장이나 구금 심사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체포된 피의자를 통상 48시간 안에 치안판사에게 인치해 보석 여부를 판단하고, 석방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구금심문절차를 진행한다. 법원은 심문 결과에 따라 구금을 유지하거나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다.

 

독일도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일정한 조건을 부과해 구속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피의자가 구속심사를 청구하면 법원은 구속 유지와 구속 취소, 구속집행유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한다.

 

 

조건부 구속·석방 제도의 가장 큰 변화는 구속 여부를 양자택일 방식으로 판단하던 영장심사 구조가 바뀐다는 데 있다.

 

법원은 피의자의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주거 제한이나 출석 의무로 이를 통제할 수 있는지, 피해자 접근금지나 전자장치 부착이 실제 위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지를 함께 심리해야 한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흉악범 등 특수한 경우에만 구속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할지는 형사사법 체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문제”라며 “조건부 구속·석방은 보완수사권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항 하나를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논점인데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가 보완수사권에만 집중된 점이 아쉽다”고 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도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구속과 불구속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현행 제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원행정처는 “비례성 심사에 따른 다양한 결정을 할 수 있다”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위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사건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불구속 상태에서 변호인과 접견하고 수사기록과 증거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구금된 피의자는 변호인 선임과 자료 수집, 가족과 직장을 통한 방어자료 확보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전주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지난해 2월 법관이 영장 발부와 기각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구속 필요성이 일부 있더라도 실제 구금까지 필요하지 않은 사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여지가 생길 뿐 아니라 운용을 잘하면 피해자 보호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과 스토킹, 성폭력 사건에서는 단순히 불구속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접근금지와 연락금지, 주거 이전 등을 구체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 피해자 보호에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조건을 누가 감독하고 위반 시 어떤 조치를 할지 개정안에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접근금지나 주거 제한 위반을 즉시 확인하고 경찰이 출동할 체계가 없다면 법원의 조건은 서류상 명령에 그칠 수 있다.

 

조건 위반 사실을 확인해 법원과 검찰에 통보할 기관, 재구속 절차, 경미한 위반과 반복적 위반의 구분도 정해야 한다.

 

검사가 다시 영장을 청구해야 하는지, 법원이 직권으로 석방 결정을 취소할 수 있는지도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조건이 과도하게 부과되면 구금을 줄이는 대신 국가의 감시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자장치 부착과 야간 외출 제한, 주거 제한, 정기 출석 의무가 함께 부과되면 실제 생활에서 받는 제약이 구금에 가까워질 수 있다.

 

기존에는 영장이 기각됐을 피의자에게까지 형식적으로 영장을 발부한 뒤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이 일반화될 가능성도 있다. 적용 대상과 조건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통지 절차도 필요하다. 피해자가 피의자의 석방 사실과 접근금지 조건을 알지 못하면 신변 보호를 준비하거나 위반 사실을 신고하기 어렵다.

 

피해자 위해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서는 영장심사 단계에서 피해자의 의견과 보호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도 검토해야 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어떠한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진행한 검찰 개혁을 반대한다”며 “지금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조건부 석방 등 그저 가해자를 위한 법”이라고 말했다.

 

경찰 출신 박성배 변호사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있는 피해자 보호 제도를 더 폭넓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조건부 구속과 함께 피해자를 보호할 다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조건부 석방이 피의자의 증거인멸과 공범 접촉을 막는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사 초기에는 공범이나 범행 구조가 확인되지 않아 전자장치와 주거 제한만으로 연락과 증거인멸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재경지검 검사는 “조건부 구속·석방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되는 제도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영장심사 절차가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다. 법원이 주거와 직업, 가족관계, 전자장치 부착 가능성, 피해자와의 거리, 감독 여건까지 확인하면 심문과 결정에 필요한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보호관찰소와 경찰의 인력 문제도 남는다. 전자장치를 부착한 피의자의 위치와 접근금지 위반을 확인하려면 별도의 인력과 전산시스템이 필요하다. 경보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경찰의 업무도 증가한다.

 

법조계에서는 제도를 도입하려면 적용 대상과 조건의 종류, 피해자 통지, 위반 시 재구속 절차, 감독기관의 권한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강력범죄나 보복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건, 피해자와 함께 거주하는 사건, 조직범죄처럼 공범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어려운 사건에는 조건부 석방을 제한하거나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조건 위반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