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나는 (사)아시아교정포럼 학술대회에서 한국과 미국의 교정행정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이 내용이 더시사법률을 통해 짧게 기사화되었는데, 얼마 후 이를 읽은 한 수용자로부터 18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1999년에 구속되어 30년 가까이 복역 중인 한 무기수의 글이었다.
편지에는 범죄자로서 느끼는 깊은 자책감과 감히 이런 글을 써도 될지에 대한 미안함과 망설임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죗값을 치르는 와중에도 다시 살아갈 희망과 기대를 품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서신에 적힌 구체적인 처우나 규정이 실제 교정행정과 100% 일치하는지 일일이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수용자 스스로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제도적 절망감’과 ‘소외감’ 그 자체에 주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여 우리 교정 당국이 관행과 제도의 이름 아래 소홀히 지나친 부분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물론 이 글이 만성적인 과밀수용과 다양한 수용자 처우 문제로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정공무원들에게 또 다른 무거운 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진정한 교화로 이어지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수용자의 호소를 바탕으로 교정행정이 나아갈 방향을 네 가지로 나누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가석방 및 처우 심사 기준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편지 속 수용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상담 직원의 성향이나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가석방 심사 기회마저 좌우된다고 느끼며 깊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실제 행정 절차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수용자가 시스템을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교화의 동력은 상실되고 만다.
교정 당국은 심사 탈락이나 배제 사유를 기계적인 규정으로만 통보할 것이 아니라,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용자가 막연한 좌절감에 빠지지 않고,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예측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둘째, 획일적인 범주화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위험성 평가’로 처우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서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0여 년간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업을 이어가는 등 최선을 다해 모범적인 생활을 했음에도 과거의 ‘조직사범(엄중관리대상자)’이라는 꼬리표 하나 때문에 모든 처우 개선에서 원천 배제된다는 점이었다.
특정 죄명에 따른 일괄적인 통제는 보안 관리 측면에서 효율적일지 모르나, 수용자의 개선 의지를 꺾는 뼈아픈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과거 조직폭력 사범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보다 엄격한 규정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교정행정이 특정 수용자를 기계적이고 관행적으로 처우하는 경직성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교정정책을 펼칠 역량을 갖추었다고 본다.
과거의 범죄 유형이라는 굴레를 넘어 현재의 수형 태도와 심리 상태, 실제 재범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단계적이고 개별화된 처우 시스템’이 필요하다.
모범 수용자에게는 죄명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유인책으로 삼아야 한다.
셋째, 교화의 핵심 안전망인 ‘가족 관계 회복’을 위해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편지의 주인공은 직계가족과의 전화 통화 제한, 화상 접견 및 가족만남의 집 불허 등 가족과의 교류가 지나치게 제한적인 현실에 짙은 고통을 호소했다.
가족과의 유대감은 출소 후 재범을 막고 사회에 무사히 안착하게 돕는 가장 강력한 요소다. 엄중관리대상자라 할지라도 가족 관계 회복 프로그램만큼은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실제 보안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화상 접견이나 직계가족과의 통화 등은 수용자의 정서적 안정과 직결된다.
획일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철저한 입회나 모니터링을 전제로 그 기회를 점진적으로 늘려, 수용자가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지지망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넷째, 징벌적 통제를 보완할 수 있는 ‘심리적 지지와 상담’을 강화해야 한다.
과밀수용으로 수용자 간 마찰과 무고성 투서가 빈발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수용자는 “100번의 엄중 관리보다 1번의 따뜻한 관심(상담)이 교화에 훨씬 큰 도움이 된다”고 호소한다.
규율 위반에 대한 엄격한 징벌은 교도소 내 질서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 시설의 안전과 수용자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특히 장기 수형자들은 긴 수감 생활로 인해 깊은 우울과 절망감에 빠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외부 전문 심리사의 정기적인 상담이나 담당 직원의 인격적인 면담 등 ‘통제’와 ‘치유’가 병행되는 심리 지원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이 장기수의 절절한 호소는 차가운 제도적 규정과 수용자의 피부에 닿는 현실 사이의 깊은 괴리를 보여준다.
교정 당국은 수용자의 이러한 목소리를 단순한 불만이나 핑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이곳에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모범적으로 노력하면 기회가 주어진다’는 교정 본연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거에 얽매인 기계적 배제가 아닌 유연하고 개별화된 처우, 그리고 투명한 행정만이 수용자들을 자포자기의 늪에서 건져내 진정한 교화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