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재 내려앉은 교실에 10년째 피어난 온기…국경 넘은 ‘오라 엣 라보라’의 인연

화산 분화로 수업 중단 반복된 인도네시아 학교
한국 후원단, 장학금과 기자재 지원, 10년째 동행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주 카로군의 중심 도시를 벗어나자 도로 양옆으로 고추와 옥수수, 감자밭이 이어졌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피해지역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붕과 나뭇잎 위에 내려앉은 잿빛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시나붕산은 해발 2460m의 거대한 능선을 마을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길가에는 화산재가 뒤덮었던 낡은 주택과 장기간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문이 닫힌 건물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은 오토바이와 작은 화물차에 농작물을 실어 날랐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농사는 생계의 대부분이지만, 화산이 분화할 때마다 한 해 농사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일이 반복됐다.

 

시나붕산은 수백 년간 큰 활동이 없다가 2010년 다시 분화하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 폭발과 화산재 분출이 되풀이되면서 주민 수천 명이 대피하거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2014년 분화로 16명이 숨졌고 2016년에는 화산재와 고온의 가스가 마을과 농경지를 덮치면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는 분화가 멈춘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화산재는 농작물과 식수원을 오염시켰고 주민들의 눈과 호흡기를 자극했다. 어린이들은 학교가 문을 닫을 때마다 안전지역의 다른 학교나 임시학습공간으로 옮겨야 했다.

 

가족이 이주하면 전학하거나 먼 거리를 통학해야 했고, 폭발음과 반복되는 대피는 아이들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피해지역 안쪽에 자리한 오라 엣 라보라(Ora et Labora) 학교도 화산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넓거나 화려한 시설은 아니었지만 교실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오랜 시간 비바람과 화산재를 견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화가 시작되면 화산재가 운동장과 통학로는 물론 교실 안까지 스며든다. 교사와 학생들은 직접 재를 치운 뒤 수업을 이어가지만 경보 단계가 높아지면 보호자에게 학생을 인계하거나 대피 장소로 이동한다.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방진 마스크와 식수, 청소 장비 등 재난 대응 물품과 학생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히 잊지 않고 지난 10년간 재난의 흔적이 남은 학교를 해마다 찾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상담학과 변상해 교수와 박사들은 매년 오라 엣 라보라 학교를 방문해 장학금과 교육 기자재를 전달하고 있다.

 

이들의 지원은 화산 피해 직후 한 차례 이뤄진 구호활동에 그치지 않았다. 학교와 연락을 이어가며 필요한 교육물품을 확인하고 학생들이 수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학용품과 기자재를 마련해 왔다.

 

변상해 교수는 “처음 학교를 찾았을 때 화산 피해 속에서도 교실을 지키는 아이들과 교사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며 “한 번 돕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년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후원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나눔일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잊지 않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이 될 수 있다”며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재난과 가난을 넘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난지역에는 사고 직후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집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지원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분화가 멈춘 뒤에도 주거지를 복구하고 생계를 다시 꾸려야 한다.

 

농사를 잃은 가정은 소득이 끊기고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자녀의 교육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시나붕산은 2020년과 2021년에도 다시 분화했다.

 

2021년 3월에는 화산재 기둥이 정상에서 약 5㎞ 높이까지 치솟아 주변 마을에 영향을 줬다. 나만테란과 파융, 심팡음팟, 티간데르켓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화산 활동에 대비하며 생활하고 있다.

 

오라 엣 라보라 학교의 운동장 너머로도 시나붕산의 능선이 보였다. 지금도 화산의 위험이 남아 있는 가운데 교실에서는 수업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