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건] 연쇄살인범 유영철…교도소에서 이어진 사형수의 시간

2004년 사형 확정 뒤 20년 넘게 수감생활
교도관 충돌·성인물 반입 논란·재이감까지
조용했던 독거생활 뒤 잇따른 교도관 충돌
대구교도소 거쳐 2023년 다시 서울구치소로

 

2007년 어느 날 서울구치소의 한 독거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교도관 A씨였다. 문은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였다. 밖에서 다른 교도관이 열어주지 않으면 A씨 역시 수용자와 함께 거실 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혼자 있었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서울 일대에서 노인과 여성 등을 잇달아 살해했다.

 

검찰은 21명에 대한 살인 혐의로 그를 재판에 넘겼지만 이 가운데 이문동 살인사건은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이 인정한 희생자는 20명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20년 넘게 사형 확정자 신분으로 교정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수용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독거실에서 비교적 조용히 생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교도관과 충돌해 징벌을 받았고,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성인물을 교도관을 통해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구치소를 떠나 대구교도소로 이송됐다가 2023년에는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왔다.

 

수용 초기 유영철의 생활은 의외로 조용했다.

 

2008년 당시 서울구치소 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그의 하루는 규칙적이었다. 오전 6시쯤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정돈한 뒤 아침을 먹었고 식사가 끝나면 직접 설거지를 했다.

 

가끔 무협지 등을 읽었지만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다른 수용자들과 어울릴 기회도 없었고 외부 접견도 거의 받지 않았다. 2004년 체포된 뒤 수년 동안 하루 대부분을 독거실에서 혼자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교도관 이름 앞으로 배달된 성인물


2014년 12월 유영철이 외부 물품구매 대행업체를 통해 성인 화보와 성인 소설, 일본 만화 등을 주문한 사실이 알려졌다. 문제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반입 방식이었다.

 

유영철은 주문한 물품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특정 교도관 앞으로 보내도록 요구했다. 노골적인 사진이나 그림이 포함된 경우에는 다른 잡지 사이에 끼워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물품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교도관 개인 앞으로 배송된 물건을 별도의 절차 없이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해당 교도관은 유영철 대신 두 차례가량 책을 받아준 사실을 인정했다. 유영철 이름으로 책이 들어오면 주변에서 어떤 책을 보는지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 싶다는 부탁을 받고 대신 받아줬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형수가 교도관을 통로로 이용해 외부 물품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단순한 규정 위반을 넘어 교정시설의 수용관리 문제로 번졌다.

 

 

파문 이후 유영철과 교도관 사이의 충돌도 벌어졌다.

 

서울구치소에서 정기적인 ‘거실검사’가 진행되던 날이었다. 거실검사는 수용자가 흉기나 허가되지 않은 물품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용자를 밖으로 나오게 한 뒤 교도관들이 거실과 소지품을 살피는 절차다.

 

교도관 3명이 한 조가 돼 유영철의 독거실을 검사하던 중 유영철이 갑자기 흥분했다.

 

교도관 한 명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고 이를 제지하는 직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자신을 제압하려는 교도관들에게는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결국 유영철은 기존 독거실에서 징벌수용 거실로 옮겨졌다.

 

법무부는 당시 유영철이 거실검사 과정에서 교도관들과 마찰을 빚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떠나 대구로…그리고 다시 서울구치소로


유영철은 이후 서울구치소를 떠나 대구교도소에 수용됐다.

 

그의 수용생활에 다시 큰 변화가 생긴 것은 2023년 9월이었다. 법무부는 대구교도소에 있던 유영철과 또 다른 사형확정자 정형구를 서울구치소로 이송했다.

 

한 달 전인 2023년 8월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울구치소와 부산구치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등 사형 집행시설이 있는 교정기관에 시설 상태를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점검 결과 실제 사형 집행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은 사실상 서울구치소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직후 유영철과 정형구가 서울구치소로 이송되면서 사형 집행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서울구치소에는 이미 강호순과 정두영 등 다른 사형확정자들도 수용돼 있었다.

 

당시 대구교도소는 같은 해 11월 달성군 화원읍의 기존 시설에서 하빈면 신축시설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법무부는 유영철과 정형구의 이송에 대해 대구교도소 이전 등을 고려한 “교정행정상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자신이 이송을 지시한 것은 맞다면서도 교정행정상 필요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역시 사형 집행을 위해 이들을 서울구치소로 옮겼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사형 집행시설 점검 직후 이송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두 사안을 연결하는 해석이 나왔지만 실제 사형 집행을 전제로 한 조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 현실적으로 다가왔는지는 결국 유영철 자신만 알 일이다.


“밤마다 피해자들이 나타난다”


유영철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당시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했던 교도관 A씨다.

 

A씨는 2007년부터 약 7년 동안 일주일에 한 차례씩 유영철과 상담했다. 때로는 좁은 독거실 안에 들어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 번에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영철이 털어놓았다는 이야기가 2024년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어느 날 유영철은 눈이 충혈된 상태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가 이유를 묻자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들이 밤마다 독거실에 나타난다고 답했다고 한다.

 

화장실 쪽 천장 아래에서 서너 명의 모습이 반복해서 보이고, 이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해 낮에도 피곤하다는 이야기였다.

 

유영철은 2004년 체포돼 2005년 6월 9일 사형이 확정된 뒤 20년 넘게 교정시설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독거생활을 이어가다 교도관과 충돌해 징벌을 받았고, 규정을 어긴 외부 물품 반입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구치소를 떠나 대구교도소로 이송됐다가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차례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이었다.

 

유영철의 20여 년 수용생활은 한 연쇄살인범의 교도소 뒷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형이 끝나는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사형확정자를 국가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형 집행이 수십 년째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을 어떤 기준으로 통제하고 처우해야 하는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철문 밖에서는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영철의 하루는 여전히 교정시설 안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때 교도관들에게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라고 소리쳤던 그는 지금도 법적으로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