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또 다른 편견 만들지 않도록”…수용자 자녀를 ‘다시 보다’

에세이 속 기억, 저마다 작품으로
“고통보다 극복 과정에 더 초점”

 

수용자 자녀의 삶과 상처를 예술로 풀어낸 전시장 한가운데 거북이 등껍질을 형상화한 작품이 놓여 있었다.

 

단단한 외피 안에는 알록달록한 천과 부드러운 소재가 채워져 있었고, 그 사이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왔다. 고통을 견디며 단단해진 삶의 한 부분인 동시에 지칠 때면 언제든 몸을 숨겨 쉴 수 있는 ‘안식처’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1-5디자인랩에서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과 1-5디자인랩이 함께 마련한 전시 ‘seen again : 수용자 자녀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다’가 마지막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지난 5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세움과 함께 성장한 수용자 자녀 청년 10명이 공동 집필한 에세이 《기억함의 용기: 나는 수용자 자녀입니다》에서 출발했다.

 

10대 초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은 책에 담긴 수용자 자녀의 삶과 경험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해 작품으로 옮겼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플라스틱 이젤에 걸린 사진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회화와 드로잉, 입체·설치 작품,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이 이어졌다.

 

의미가 직관적으로 읽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작품 설명과 형태를 함께 살펴봐야 이야기가 드러나는 작품도 있었다.

 

 

전시장 안쪽 벽에는 오래된 옷을 잘라 엮은 작업과 흑백 드로잉 12점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소영 작가의 ‘자화상’이다.

 

오랫동안 입은 옷은 ‘과거’를, 거울이나 창문에 비친 모습과 자신의 습관을 담은 드로잉은 ‘현재’를 나타냈다.

 

작업의 출발점은 《기억함의 용기》에 실린 ‘자화상’이었다. 수용자 자녀 당사자가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읽은 이 작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무엇이 나 자신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며 “계속 자화상을 그리면서 내가 스스로 바라보는 나는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다”고 말했다.

 

드로잉에서는 색을 덜어냈다. 색을 사용하면 자신의 모습을 관람객에게 정해진 방식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강하다고 판단해 흑백으로 표현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수용자 자녀의 경험을 다른 사람이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어떤 시선으로 보여줄 것인지도 고민해야 했다.

 

정은서 1-5디자인랩 디렉터는 “수용자 자녀가 겪은 부정적인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면 관람객에게 또 하나의 사회적 편견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어려움을 깨닫고 극복하는 과정과 긍정적인 방향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내기 어려워하는 작가들에게는 ‘나에게 감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에게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이 무엇인지, 그곳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작품으로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세움과 1-5디자인랩은 2018년부터 수용자 자녀를 주제로 한 전시를 이어왔다.

 

초기에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부에 드러내기 어려워 세움 관계자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후 당사자들이 직접 에세이를 쓰고 전시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한채연 1-5디자인랩 대표는 “당사자들이 직접 만든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것과는 다른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두 기관은 약 3년간 공동 전시를 쉬었다가 올해 다시 손을 잡았다.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과 함께 수용자 자녀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 대표는 “수용자 자녀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무겁게 다가가 그다음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작품을 먼저 접하면 색이나 형태에서 시작해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하는 일이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하고 싶다”며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때에 맞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