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정도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받아 현금을 건네받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았고 연락은 텔레그램이나 전화로만 한다. 평범한 일자리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그런데 사건을 하나둘 보다 보니 자꾸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말과 ‘사기 범행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했다’는 말은 정말 같은 것일까.
형사재판에서 이 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기죄는 고의범이다. 부주의하게 범죄에 이용됐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범죄가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를 속여 돈을 빼앗는 범행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행동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미필적 고의’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런 결과가 생겨도 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쉽게 말하면 ‘혹시 범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범죄여도 상관없다’는 생각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현금 수거책 사건에서 바로 이 간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상한 정황이 많을수록 피고인에게 불리하다.
대법원도 공범과 어떤 방식으로 연락했는지, 정상적인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 어떤 경위로 일을 시작했는지, 피해자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현금을 몇 차례나 받았는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사용했는지, 보수를 얼마나 받았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을 하나씩 체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한 결론으로 넘어가기 쉽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기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나는 이 두 문장 사이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본다.
현금 수거책 중에는 정말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담한 사람도 있다.
피해자에게 금융감독원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한 문서를 보여주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돈을 보내고, 경찰이나 은행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대법원은 금융감독원장 명의 문서를 출력해 피해자에게 건네고 타인 명의로 무통장송금을 한 사건에서 고의를 인정했다.
이런 행동은 단순히 ‘이상한 일을 했다’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를 속이는 과정에 직접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군가 시키는 대로 특정 장소에 가서 현금을 받아 전달했을 뿐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정상적인 수금 업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같은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기 어렵다.
실제 무죄가 선고된 사건들을 보면 법원도 피고인이 당시 보이스피싱 범행이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적어도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는지를 살폈다.
판결문을 보다 보면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했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을 볼 때마다 조금 조심스럽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과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수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문제다. 전자는 부주의나 나태함에 가까울 수 있고, 후자는 고의의 문제다.
형사법이 고의와 과실을 따로 구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확인하지 않았느냐.” 이 질문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만으로 곧바로 “그러므로 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조를 보면 더 그렇다.
조직은 처음부터 하부 조직원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정상적인 채권추심 업무나 대출 관련 업무처럼 속이기도 하고, 단순 심부름이나 현금 전달 업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피해자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현금 수거책까지 속여 범행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도 2025년 한 사건에서 범행 직후 경찰의 연락을 받은 피고인이 스스로 출석해 가지고 있던 현금을 반환한 점 등을 고려해, 그 전까지 피해금 수거 과정이라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도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다시 느낀 것은 고의를 판단하는 시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범행이 끝난 뒤 모든 사실을 알고 사건 기록을 읽으면 수상한 정황은 얼마든지 보인다.
하지만 재판에서 물어야 하는 것은 사건을 다 알고 있는 판사의 시선이 아니다.
현금을 받으러 가던 바로 그 순간, 피고인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 질문이어야 한다. 변호인으로 사건을 볼 때도 나는 가능하면 시간 순서대로 자료를 다시 배열한다.
처음 채용 제안을 받은 시점에는 어떤 말을 들었는지, 첫 현금 수거 당시에는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피해자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언제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 이후에도 일을 계속했다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하나씩 나눈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대화도 같은 방식으로 본다.
사건 전체를 한꺼번에 놓고 “이 정도면 알았겠지”라고 보는 것과 각 시점에서 피고인이 실제로 받은 정보를 놓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때가 있다.
현금 수거책이라고 해서 모두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 사이에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뛰어든 사람도 있고,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외면한 사람도 있고, 끝까지 정상적인 일이라고 믿은 사람도 있다.
형사재판은 그 차이를 가려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결과가 크고 피해자가 많다고 해서 고의의 문턱까지 낮아져서는 안 된다. “알 수 있었다”는 것과 “알고도 했다”는 것은 다르다.
현금 수거책 사건을 볼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그래서 늘 같은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