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면회실에서 마주한 이별…연극 〈면회〉

 

교도소 면회실을 무대로 한 연극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 한성아트홀을 찾았다.

 

그동안 접했던 교도소 소재 공연 상당수는 수용생활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내거나 교도소를 이야기의 배경 정도로 활용했다.

 

연극 면회는 배우 두 명이 작은 면회실 안에서 대화만으로 극을 이끌어간다고 해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궁금했다.

 

 

공연이 열린 2관은 배우들의 표정과 작은 몸짓까지 객석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소극장이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도 가까웠다.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면서 이어지던 말소리는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잦아들었다. 잠시 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위로 희미한 조명이 들어왔다.

 

조그마한 무대에는 교도소 면회실로 보이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서로 마주 놓인 의자 두 개와 그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한 칸막이가 무대의 전부였다. 칸막이 너머에는 수감번호 2317번을 단 여자가 앉아 있었고, 잠시 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연극 〈면회〉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여자와 그를 찾아오는 남자의 대화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10년 동안 사랑하고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이제 남자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면회뿐이다.

 

남자는 찾아올 때마다 바깥세상의 소식과 두 사람이 함께했던 기억을 들려준다. 자신의 일상을 전하고 자리를 떠날 때면 늘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여자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남자에게 돌아가라며 차갑게 밀어낸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그 자리에 남아야 하는 사람의 말은 좀처럼 한곳에서 만나지 못한다.

 

극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남자는 교도소 안으로 가져가기 어려워 보이는 꽃과 여러 물건을 여자에게 건넸다. 담배를 꺼내 함께 피워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실제 교정시설의 접견실이라면 허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두 배우가 좁은 공간에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면서 초반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배우들의 목소리도 작아 일부 대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졸음이 밀려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교도소 면회실을 내세운 것에 비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공연이 이어질수록 두 사람의 대화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말과 행동에서 둘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대화는 원망과 죄책감, 미안함이 뒤섞인 언쟁으로 바뀌었고 배우들의 목소리와 감정도 점차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무대가 좁다는 사실도, 두 사람만으로 극이 진행된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게 됐다.

 

면회실 안에는 남자가 가져온 물건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꽃은 모두 생화가 아닌 조화였다. 그중에는 꽃다발로 묶을 수 없는 화분째 놓인 베고니아도 있었다.

 

여자는 수용자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돈된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손톱에는 네일아트가 돼 있었고 가슴에는 수감번호처럼 보이는 숫자가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재촉하는 교도관도 없었고 정해진 접견시간도 없었다.

 

남자는 휴대용 공기계를 건넸고 담배까지 꺼내 놓았다. 처음에는 교도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설정이라고 여겼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생화를 가져오지 못한 이유와 면회시간에 제한이 없는 이유, 하얀 옷과 가슴에 달린 번호가 하나씩 연결됐다.

 

여자가 남자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이유와 남자가 매번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찾아오는 이유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처음부터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교도소 면회실로 보였던 공간은 면회실이 아니라 납골당이었다.

 

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자가 찾아온 것은 교도소에 갇힌 연인이 아니라 조울증을 앓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인의 유골이었다.

 

남자가 가져온 조화와 베고니아, 여자의 하얀 옷과 가슴에 달린 번호, 시간제한 없이 이어지던 만남은 모두 결말을 예고한 단서였다.

 

교도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담배와 공기계도 납골당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설명됐다.

 

처음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겼던 장면들이 오히려 공간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반전을 조금 일찍 알아차렸지만 작품이 전하는 감정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남자의 절규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여자의 분노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던 시간이 전해졌고 두 배우가 감정을 끌어올리는 후반부에 이르자 초반에 느꼈던 지루함도 사라졌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반전이 아니라 먼저 떠난 사람의 외로움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외로움이었다.

 

〈면회〉는 교도소 면회실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빌려 이별 뒤에도 끝나지 않는 사랑과 죄책감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을 본 뒤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대사와 물건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결말을 알고 나서야 앞선 장면들이 비로소 완성되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