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현장을 떠난 뒤에도 현직 후배들을 만나면 대화는 어김없이 교정 이야기로 흘러간다. 수용자 관리의 어려움과 부족한 인력, 낡은 시설과 과밀수용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늘 인사제도가 남는다. 현장 직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문제이자, 교정조직의 오랜 병폐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후배들에게 교정 인사개혁의 첫 번째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지 않은 이들이 주저 없이 ‘교정고시 폐지’를 꼽는다. 왜 현장에서는 교정고시에 대한 반감이 이토록 클까. 현장의 반감은 특정 입직 경로 자체보다 그 이후 형성된 인사구조에 있다. 고시 출신 간부들이 교도소장에서 지방교정청장으로, 다시 청장에서 일선 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오랫동안 고위직에 머무르는 사이 교정조직 상층부의 인사 흐름이 막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임 교정본부장의 연임 가능성이 거론되던 당시, 일선 기관장들은 관행적으로 실시하던 정년퇴직 1년 전 공로연수나 명예퇴직을 미루고 정년까지 근무했다. 그 결과 인사 적체가 심화돼 5급 승진시험 합격자들이 1년 넘게 보직을 받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고위직 한두 자리의 정체가 조직 전체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형사사건이 종결된 이후 민사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때, 실무에서 가장 빈번하게 문제 되는 쟁점 중 하나가 있다. 형사합의금이나 형사공탁금을 이미 지급한 경우, 이를 민사상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있는지 여부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합의서의 문언과 지급 경위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진다. 문제의 출발점은 대법원이 확립한 기본 법리에 있다. 가해자가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에게 금원을 지급하고 처벌불원의 의사를 얻은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금원은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본다. 즉 별도의 명시가 없다면 해당 금원은 재산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법리는 형사공탁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공탁을 한 경우라도, 그 금원이 형사책임을 전제로 지급된 것이라면 민사상 손해배상액에서 공제 대상이 된다. 다만 이때 공제 방식은 민법상 상계가 아니라 손익상계 또는 공제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구분은 이후 상계 제한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 원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분쟁에서는 예외가 더 자주 문제 된다
교정시설 의료는 더 이상 교도소 안의 부수적 문제가 아니다. 정신질환 수용자, 마약류 사범, 고령·만성질환 수용자가 함께 늘어나면서 교정시설은 단순한 격리 공간을 넘어 치료, 관리, 재활, 사회복귀까지 감당해야 하는 복합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교정의료체계는 개별 교정기관 부속의원과 외부 병원 진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부속의원은 일상 진료와 응급 초기대응을 담당하지만 정밀검사, 입원치료, 정신질환 집중치료, 중독치료, 고령·만성질환 장기관리까지 맡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통계도 변화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2024년 교정시설 내 진료 인원은 연인원 기준 829만 명을 넘었고, 의료비 집행액은 449억 원으로 당초 예산 335억 원보다 약 34% 초과했다. 65세 이상 수용자는 2018년 2,648명에서 2024년 5,054명으로 늘었다. 최근 서영석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 수용자도 2016년 3,296명에서 2026년 6월 기준 6,571명으로 증가했다. 현행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부속의원과 외부 병원 사이에서 중증도와 치료 필요도를 판단하고 조정할 권역 단위 2차 의료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신질환 수용자는 늘고
최근 다양한 생성형 AI가 저마다의 성능을 뽐내며 등장하고 있다. 오픈에이아이(OpenAI), 구글 등 주요 기술 기업들이 선보인 모델은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인간의 사고와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인간의 노동과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최첨단 IT 전선에 있는 리더들이 공통으로 경고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AI로 인한 인류의 위험’이다. 이들이 말하는 위험은 단순히 기계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다. 최근 미국의 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과 미국 국방부(DoD)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방부는 AI 프로그램을 공급받으며 어떠한 제한도 없는 ‘순수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원했다. 일촉즉발의 분쟁 상황에서 AI가 윤리적 판단을 이유로 명령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명령 거부를 해제해달라고 매번 기업에 전화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국방부의 주장은, 민간 기업인 앤스로픽이 국
7월 1일 아침, 사무실 책상 위에 통지서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2026형제0000호. 처분요지란에는 짧게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혐의없음(증거불충분)'. 더시사법률 임예준 기자를 상대로 제기되었던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고소 사건이 불기소로 종결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기사 한 편이었다. 더시사법률은 교정시설 수용자와 그 가족들을 상대로 한 불법 사건 알선, 이른바 '사무장 카페' 문제를 파헤쳐 왔다. 수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인터넷 카페 뒤에 숨어, 담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구조였다. 접견 한 번, 서신 한 통이 아쉬운 수용자와 가족들에게 '좋은 변호사를 연결해 주겠다'며 접근해 뒷돈이 오가는 세계. 임예준 기자는 그 실태를 끈질기게 취재해 기사로 썼고, 나는 기사가 나갈 때마다 곁에서 법률 검토를 함께했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해명이나 반박이 아니라 고소장이었다. 보도의 당사자인 변호사는 임 기자를 상대로 잇달아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기사의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기자를 피의자로 만들어 취재 자체를 위축시키려는 전형적인 입막음 고소였다.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나는 곧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는 단순한 수용 공간의 부족이 아니라 형사정책 구조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결과다. 더구나 이는 이미 헌법적 차원에서도 지적된 문제다. 헌법재판소도 2016년 구치소 과밀수용 사건에서, 수용자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과밀수용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과밀수용은 행정 운영의 불편을 넘어 국가형벌권의 한계를 묻는 문제인 셈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시설 확충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유입과 유출이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른바 ‘정문정책’과 ‘후문정책’의 역동적 균형이다. 최근 법무부가 과밀수용 해소를 위해 가석방 확대를 추진하고, 노후 교정시설 확충을 위한 민자·개발사업 추진단을 신설한 것도 이러한 구조적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조치들이 단기 처방에 그치지 않고 형사사법 흐름 전체를 조정하는 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문정책은 형사사법 체계의 입구를 조정하는 정책이다. 수사·기소·재판·구속을 거쳐 교정시설로 들어오는 흐름을 통제하여 불필요한 구속과 과잉수용을 줄이는 것이 골자다. 블룸스타인(Alfred
“분명 강도상해죄로 기소됐는데, 강도 혐의는 무죄가 나오고 상해죄만 유죄로 인정될 수 있습니까. 검사가 공소장을 바꾸지도 않았는데요.” 형사재판에서 종종 문제 되는 질문이다.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 전체가 그대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 안에 포함된 더 가벼운 범죄사실은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법원이 공소장 변경 없이 그 축소된 사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형사소송의 출발점은 공소장이다. 법원은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사실에 대해서만 심판할 수 있다. 이를 불고불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법원이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임의로 심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면, 원칙적으로는 검사가 공소장 변경 절차를 통해 심판 대상을 바꿔야 한다. 피고인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혐의와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일정한 경우 공소장 변경 없이도 법원이 ‘축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축소사실이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보다 범위가 좁거나 법정형이 가벼운 범죄사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살인죄의 공소사실 안에는 폭행치사죄가 포함될 수 있고, 강도상해죄의 공소
법무부가 교정미래혁신단을 출범시키며 교정청 신설 논의를 본격화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결단이다. 특히 정성호 법무부장관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교정청 신설과 교정공무원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교정행정의 구조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인물이다. 검찰개혁이 형사사법의 입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면, 교정개혁은 형사사법의 마지막 단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검찰개혁 이후 법무행정의 개혁 축을 교정으로 확장한 바람직한 수순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교정 현장에서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사람으로서 이번 결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교정청 독립은 법무부 교정본부의 간판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교정행정의 뼈대를 새로 세우는 국가적 과제다. 그동안 교정은 형사사법의 마지막 단계에 있으면서도 사회적 관심에서는 늘 뒤로 밀려 있었다. 수사는 뉴스가 되고 재판은 논쟁이 되지만, 판결 이후 수용자를 어떻게 책임지고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것인가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나 교정시설은 이제 단순한 수용공간이 아니다. 마약류 수형자, 정신질환 수용자, 고령 수용자, 여성 수용자, 장기수와 무기수까지 다양한 처우 수요가 한곳에 모여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더 이상 단순한 전화 사기가 아니다. 해외 거점을 둔 조직이 국내 하위 조직원을 모집하고, 총책·관리책·유인책·모집책·수거책·인출책·자금세탁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움직이는 조직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범행 방식도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피해금을 현금으로 수거하거나 여러 계좌로 나누어 이전하고, 상품권·가상자산 등으로 전환하는 방식까지 결합된다. 범죄수익의 흐름을 숨기고 추적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구조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말단’으로 불리는 가담자들의 역할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현금을 직접 받아 전달하는 수거책, 피해금을 인출하는 인출책, 계좌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옮기는 자금세탁책은 모두 피해 발생과 범죄수익 실현에 연결된다. 조직의 지시를 받은 하부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돈을 빼앗기는 마지막 단계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이다. 모집책 역시 마찬가지다. 고액 아르바이트나 단순 전달 업무처럼 포장해 사람들을 범행에 끌어들이는 행위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유지시키는 핵심 고리다. 범행에 필요한 사람을 계속 공급하지 못하면 조직은 움직이기 어렵다.
며칠 전 가석방 심사 도움과 수용생활 편의 제공을 내세워 수형자들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 교도관 비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해당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오래전 있었던 가석방 비리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2013년 무렵 한 교도소에서 가석방 관련 비리 의혹이 불거진 일이 있었다. 내부에서는 법무부 본부 직원까지 연루됐다는 자체 조사 결과가 보고됐다는 말도 나왔다. 당시 이 내용을 알게 된 P 소장은 가석방 비리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기관장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해당 교도소 관할 지청장을 찾아가 자체 조사 관련 서류를 전달하려 했다. 본부까지 거론된 비리 의혹을 외부 수사기관에 알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지청장은 당시 특검으로 파견돼 검찰청에 없었고, P 소장의 시도는 무산됐다. 그 당시 그 검사는 대쪽같이 곧고 정의로운 검사로 소문나 있었다. P 소장은 그 검사라면 가석방 비리를 바로잡아 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이후 P 소장은 직원들과 식사 자리에서 끝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 자리에 있던 필자는 가석방 제도를 둘러싼 내부의 불신과 무력감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