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에서 대표이사와 회사 사이에 금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표이사가 회사 계좌에 자금을 입금하거나, 회사가 대표이사에게 차입금 또는 가수금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회사는 대표이사 개인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다. 회사 계좌에 있는 돈은 대표이사 개인의 돈이 아니며, 대표이사가 회사에 자금을 투입한 사실이 있더라도 회사 자금을 임의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대표이사와 회사 사이의 자금 거래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입금 경위, 금액, 상환 약정, 회계 처리 등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후 회사 자금 인출 과정에서 민·형사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대표이사가 회사 계좌에서 자신의 개인 계좌로 돈을 이체한 경우, 그 이체가 회사 채무의 정당한 변제인지, 아니면 업무상횡령에 해당하는지가 문제 될 수 있다. 형식상 ‘가수금 상환’이라고 기재되어 있더라도 실제 채권이 존재하지 않거나, 금액이 불명확하거나, 회사와 무관한 개인 용도로 사용됐다면 형사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 형법상 업무상횡령죄는 업무상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불법영득의 의사로 그 재물을 임의 처분할 때 성립한다. 대표이사는 회사
특수협박이나 폭행 사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는 진술이다. 실제 형사사건 가운데 상당수는 치밀한 계획범죄라기보다 말다툼이나 감정 충돌이 격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기준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행위의 위험성이다. 특히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 경우에는 단순한 다툼을 넘어 중대한 범죄로 평가될 수 있다. 한 사례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며 동거하던 사이였다. 주변에서도 두 사람이 가까운 장래에 부부가 될 것으로 여길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 하지만 말다툼이 격해지면서 사건은 형사절차로 이어졌다. 피고인은 주방에 있던 식칼을 들고 피해자에게 다가가 위협적인 행동을 했고, 언쟁 과정에서 폭행까지 이어졌다. 공포를 느낀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형법상 특수협박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킨 경우 성립할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실제 상해가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상대방이 현실적인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면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 식칼과
통계상 1심 재판 단계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약 71%에 이른다. 구속된 피고인과 가족 입장에서는 열 명 중 일곱 명이 실형으로 이어진다는 수치가 쉽게 체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구속은 곧 실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라 형사절차상 강제처분이다. 도망이나 증거인멸 우려를 막기 위한 조치일 뿐, 그 자체가 유죄의 증거가 되거나 형을 무겁게 하는 독립적인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동기와 수단, 범행 후 정황 등을 참작하도록 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구속 상태에 있다는 사정은 별도의 가중 사유로 규정돼 있지 않다. 따라서 구속됐다는 이유만으로 실형이 예정되는 것은 아니다. 구속 상태에서도 집행유예 선고는 법리상 가능하다. 문제는 구금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자료로 재판부를 설득하느냐에 있다. 구속 상태의 피고인에게 가장 위험한 태도는 선고 전까지의 시간을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양형 판단은 선고 직전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미결구금 기간은 반성, 피해 회복, 재범 방지 계획을 구체
최근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뒤 반대 여론이 거세다. 교도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정시설의 폭염 문제를 단순히 “수용자에게 왜 에어컨을 달아주느냐”는 감정만으로 볼 수는 없는 문제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6년 여름, 부산 등 일부 교정기관에서 노약자 수용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근무했던 대전교도소에서도 선풍기가 없는 조사실에서 60대 장애인 수용자가 숨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대전교도소의 수용정원은 2500명 정도였지만 실제 수용 인원은 3200명을 넘었다. 과밀수용 상태에서 노약자들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됐고, 각 거실에 선풍기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보안과장은 주간에 거실문을 열어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계호 원칙에는 맞지 않는 조치였다. 노약자뿐 아니라 교정사고 위험이 있는 수용자의 거실문까지 열어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다행히 그해 여름 우려했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국가가 대신 부담한 교정시설 수용자의 외부 의료시설 진료비는 305억여원, 연평균 61억여원에 달한다. 과밀수용이 심각한 현실에서 노약자 수용자가 폭염으로 쓰러지면 생명 위
최근까지 형사재판 현장에서 피고인들이 재판을 고의로 미루기 위해 활용해왔던 '불출석' 전략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2026년 5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소촉법')' 개정안은 사법 정의를 무력화하던 오랜 편법에 제동을 걸었다.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의 출석을 원칙으로 삼은 본래 취지는 방어권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 재판 현장에서 이 원칙은 소송 지연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민생 범죄 피고인들이 재판에 나오지 않아 피해자들이 수년간 고통받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온라인 중고 거래 사기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배상명령이라도 받을까 싶어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가 텅 빈 피고인석만 바라보다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대리를 주로 하는 변호사들은 "피해자가 증인 신문을 하는 날인데 피고인이 나오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개정안은 이러한 불출석 편법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한 날부터 즉시 시행되며, 시행 당시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도 적용된다. 그동안 피고인들이 주로 활용한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다른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이
아청법상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관리 제도는 크게 신상정보 등록, 신상정보 공개, 신상정보 고지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이 제도는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관리하고 지역사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보안처분의 성격을 가진다. 범죄자를 형사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정 기간 국가가 신상정보를 관리하며, 필요한 경우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추가 피해를 예방하려는 취지다. 아청법 제2조 제2호에 규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으로 유죄판결이나 약식명령이 확정된 사람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된다. 신상정보 등록은 형사처벌에 부수해 부과되는 보안처분이다.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에게 등록대상자라는 사실과 신상정보 제출 의무가 있음을 고지해야 한다. 이는 범죄의 종류와 유죄 확정이라는 객관적 요건에 따라 결정되는 의무적 절차다. 피고인이 된 시점에서는 아동·청소년이었더라도 사실심 판결 선고 시 성년에 이르면 등록의무를 면할 수 없다. 등록대상자는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실제 거주지, 직업 및 직장 등의 소재지, 신체정보, 소유 차량의 등록번호 등을 주소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의 승자가 날카롭고 공격적인 존재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것은 타인과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는 존재였다. 경쟁보다 협력, 공격보다 관계 형성이 생존의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관점은 법률 현장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법정과 수사 절차는 냉정한 기록과 증거의 세계다. 판단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과 법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과 법리에 접근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증인, 가족, 수사기관, 재판부 모두가 각자의 언어와 기억, 두려움 속에서 사건을 마주한다. 변호인의 역할도 결국 사람의 말을 듣는 일에서 출발한다. 기록을 읽고 법리를 검토하며 판례를 찾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필요한 과정이 있다. 사건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당사자가 변호인을 신뢰하지 못하면 필요한 말만 한다. 유리해 보이는 말은 남기고 불리한 말은 감춘다. 창피한 이야기는 빼고, 본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부분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사건에서는 바로 그 빠진 말 속에 중요한 단서가
형사사법의 양형 저울은 종종 역설적인 방향으로 기운다. 실제 피해자가 발생한 강력범죄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를 통해 선처의 기회를 얻는 반면, 구체적인 피해자가 없는 경우 피고인은 용서를 구할 대상조차 없이 획일적인 처벌의 잣대 앞에 놓인다. 특히 음주 운전과 같이 사회적 비난이 거센 범죄일수록 이러한 역설은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적 안전을 위한 엄벌의 필요성과 개별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정의의 저울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 형법은 범죄를 ‘실제로 법익을 침해한 경우(침해범)’와 ‘법익 침해의 위험만으로 성립하는 경우(위험범)’로 나눈다. 폭행, 상해, 사기 등 범죄 대부분이 피해자의 신체나 재산에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성립하는 ‘침해범’이다. 반면 음주 운전은 교통사고라는 실제 결과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대표적인 ‘추상적 위험범’이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라는 중대한 사회적 법익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다. 이러한 입법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주 운전이 초래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에 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
최근 다양한 생성형 AI가 저마다의 성능을 뽐내며 등장하고 있다. 오픈에이아이(OpenAI), 구글 등 주요 기술 기업들이 선보인 모델은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인간의 사고와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인간의 노동과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최첨단 IT 전선에 있는 리더들이 공통으로 경고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AI로 인한 인류의 위험’이다. 이들이 말하는 위험은 단순히 기계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다. 최근 미국의 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과 미국 국방부(DoD)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방부는 AI 프로그램을 공급받으며 어떠한 제한도 없는 ‘순수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원했다. 일촉즉발의 분쟁 상황에서 AI가 윤리적 판단을 이유로 명령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명령 거부를 해제해달라고 매번 기업에 전화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국방부의 주장은, 민간 기업인 앤스로픽이 국
오늘날 대한민국 기업들은 전례 없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AI, 반도체, 에너지 전환 등 글로벌 산업 지형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1분 1초를 다투는 의사결정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정작 경영 현장에서는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도 결과가 나쁘면 감옥에 갈까 봐 무섭다”는 토로가 나온다. 사법부는 기업가 정신보다는 사후적 결과에 치중한다. 경영진이 리스크를 감수한 사업적 판단을 내렸다가 손실이 발생한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른바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에 빠져 배임의 고의를 인정해 왔다. 경영 실패가 곧 범죄 수사의 빌미가 되는 구조 속에서, 국가적 차원의 과감한 투자를 독려하는 말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입법의 칼날마저 경영자의 목 앞에 다가섰다. 최근 수차례에 걸쳐 단행된 상법 개정(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에 이어, 지난 2026년 2월 25일에는 자사주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마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3차 개정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 의무화 등을 통해 기업의 자본 운용 재량을 제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