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신병을 한국 사법당국이 곧바로 확보하지 못하고, 교도소 수감 이후에도 일반 수용자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 발생했다. 1992년 10월 28일 오후 4시30분쯤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셋방에서 미군 전용클럽 종업원 윤금이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이 방문을 열었을 당시 윤씨는 온몸에 피멍이 든 알몸 상태였으며, 생식기에는 맥주병 2개가 들어가 있었고 질 밖에는 콜라병 1개가 박혀 있었다. 또 항문에서 직장까지 약 27㎝ 길이의 우산대가 꽂혀 있었고, 온몸에는 하얀 합성세제 가루가 뿌려진 채 입에는 부러진 성냥개비가 물려 있었다. 부검 결과 윤씨는 콜라병으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맞아 발생한 전두부 열창과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으며, 사망 시각은 같은 날 오전 2시쯤으로 판정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확보한 피 묻은 셔츠와 맥주병 지문, 사건 전날 윤씨와 한 미군 병사가 다투는 모습을 본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0월 31일 오전 0시30분쯤 미2사단 정문 앞에서 부대로 돌아가던 미 육군 소속 케네스 리 마클 3세 이병을 붙잡았다.
하늘을 꿈꾸게 하는 이름, 조종사 조종사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많은 남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구름 위로 솟구치는 영화 ‘탑건’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기체를 몰고 하늘길을 가르는 파일럿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품어본 로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종사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군사관학교는 오랫동안 ‘하늘로 가는 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2019학년도 공군사관학교 제71기 사관생도 선발 경쟁률은 41.3대 1에 달했고, 해마다 수십 대 1 안팎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입학 문턱은 높았다. 일부 비조종 분야 선발이 있기는 하지만, 공사는 기본적으로 공군 장교와 조종 자원을 길러내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지원자 상당수는 조종사의 꿈을 품고 공사 문을 두드린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한 남성은 훗날 전 직장 동료들의 집 앞까지 찾아가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그는 일산서구의 한 주거지에서 전 직장 동료였던 항공사 기장을 덮친 뒤 도구로 목을 졸라 살해하려 했으나 피해자가 저항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현장을 벗어난 그는 부산으로 이동했고, 다음 날 오전 부산 부산
2002년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유재필은 사기죄로 복역하던 중 애인의 변심 소식을 듣고 교도소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함께 수감돼 있던 최무석은 숟가락으로 판 땅굴을 통해 탈옥에 성공하고, 두 사람은 뒤늦게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대상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정문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던 두 사람은 탈옥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다시 교도소 안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영화 속 교도관들은 문책을 우려해 두 사람을 조용히 다시 교도소 안으로 들여보내려 한다. 관객에게는 웃음으로 소비되는 장면이지만, 현실에서 수용자가 통제 구역을 벗어나거나 담장을 넘는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보안 사고다. 영화에서 보던 교도소 탈주극은 과거 국내 교정시설에서도 실제 사건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처럼 극적인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었다. 실제 탈주 시도는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실패했고, 현행 교정보안 체계에서는 감시장비와 주벽, 인원점검, 비상출동망을 모두 넘어야 하는 만큼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 과거에는 수용자 도주나 탈주 시도가 교정기관 문책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구체적인 경위가 뒤늦게 알려지는
38선에서 불과 1㎞ 남쪽에 있던 개성소년형무소에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과 함께 총성이 울렸고, 교도관들은 군부대와 관공서를 향하던 공격이 수용자 탈출로 도시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형무소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질서이고, 교정시설은 그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야 하는 마지막 경계선에 가까웠다. 통신이 끊기고 상부 지시가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교도관들은 형무소 열쇠를 내려놓지 않았다. 가족을 피란시키지 못한 채 정문을 지켰고, 수용자를 통제하고 형무소를 방어하는 전투요원이 됐다. 6일 호국보훈의 달마다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의 희생은 자주 언급되지만, 전쟁과 재난, 시설 내부의 위험 속에서 국가 질서를 지켜온 교정공무원의 희생은 여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6·25전쟁 당시 전국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던 교도관들이 수용자 관리와 시설 방어, 피란 지휘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하거나 불법 처형 등으로 순직했다는 사실은 오랜 기간 교정 조직 안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국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던 교도관 167명이 전사하거나 불법 처형 등으로 순직했다. 이들
2024년 12월 3일 아동·청소년 강간죄로 복역 중이던 수형자가 소년교도소 같은 거실에서 생활하던 10대 재소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A씨와 피해자 B군은 경북 김천시에 있는 김천소년교도소 C실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같은 거실에서 생활하던 18세 재소자였다. 폐쇄된 수용 공간 안에서 피해자는 낮에는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밤에는 다른 수용자들이 잠든 시간대마다 반복된 추행과 폭행을 견뎌야 했다. 범행은 저녁 시간 수용 거실 안에서 시작됐다. A씨는 피해자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고 입을 맞추는 등 강제추행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에도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12월 4일부터 9일까지 매일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같은 거실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추행을 반복했다. 피해자는 피할 곳이 없었고 가해자와 같은 거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낮에는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한 뒤 밤이 되면 다른 수용자들이 잠든 시간대에 다시 피해를 입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반복된 범행은 추행에 그치지 않았다. “잠 자지 말고 기다려라” 폭행 뒤 협박 같은 달 9일 A씨는 수용 거실에서 피해
2003년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실형이 확정된 이수재씨와 당시 사고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처벌받은 성기수씨, 고(故) 전영도씨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재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23일 의정부지방법원에 이씨와 성씨, 전씨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기존 교통사고 유죄 판결뿐 아니라 목격자들의 위증 유죄 판결까지 함께 문제 삼는 재심 청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운전자는 누구였나”…사고 직후부터 엇갈린 진술 사건은 2003년 9월 28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의 한 군부대 앞 도로에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승용차 한 대가 도로를 벗어나 전신주와 나무를 들이받았고,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이씨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는 숨졌다. 검찰은 이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13% 상태에서 무면허로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이씨는 사고 직후부터 자신은 운전자가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동승자였다고 주장했으며, 차량이 출발할 당시 A씨가 운전석에 앉았고 이씨가 조수석에 탔다는 목격자 진술도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사람은
“홍성록 씨가 화성 부녀자 연쇄 폭행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1987년 5월 13일 KBS 뉴스9는 경기도 화성에 사는 40대 남성 홍성록씨가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가운데 최소 3건의 범인이라고 보도했다. 홍씨가 경찰 조사에서 “가출한 부인이 평소 붉은색 옷을 즐겨 입어 술에 취했을 때 같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을 보면 이상한 충동을 느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해졌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홍씨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는 장면이 강하게 남았다. 그러나 홍씨가 일주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에 끌려간 사람이라는 낙인은 오래 남았고 억울하게 석방됐다는 사정은 쉽게 잊혔다. 이 과정에서 홍씨의 이름과 얼굴, 주소, 직장, 가족관계와 사생활까지 공개됐다. 홍씨는 회사를 그만뒀고 형사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두려워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도 ‘살인자의 자녀’라는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홍씨는 오랜 정신적 고통을 겪다 2002년 간암으로 숨졌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우리나라 대표 장기 미제사건이었
지은 죄의 무게만큼 형을 선고받고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사라진 이들.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살아가지만 그들의 목소리까지 완전히 갇히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의 높은 담장 안에서 쓰인 편지들은 때때로 바깥세상으로 흘러나오고, 그 안에는 법정에서 못다 한 말과 억울함의 호소, 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사건의 조각들이 담겨 있다. 교정시설에 배포되는 신문 중 유일한 법률신문인 더시사법률에는 하루 수십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누군가는 재판에서 못다한 변경을 되풀이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범행의 무게보다 억울함을 앞세우며 재판 기록과 수사기록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025년 6월 1일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가 보내온 편지는 여느 편지와 달랐다. 이씨는 “2020년 8월 안산단원경찰서 형사들로부터 2001년에 발생했다는 강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며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제 DNA가 나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고 했지만 경찰은 제가 어릴 적 본드를 많이 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자백을 요구했다”고 호소했다. 재소자들이 보내오는 억울함의 호소는 대
2022년 12월 25일 오전 11시 21분쯤 경기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이기영의 여자친구 C씨였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시신은 며칠 전 교통사고 문제로 이기영과 만난 뒤 연락이 끊긴 택시기사 A씨였다. 경찰은 C씨를 상대로 사건 경위를 확인한 뒤 이기영을 살해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시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긴급체포됐다. 단순 살인 사건으로 보였던 수사는 곧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A씨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기영이 살던 아파트 명의자가 동거녀 B씨라는 점을 확인했다. B씨는 2022년 8월 초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명의의 신용카드 대출과 사용 내역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기영은 처음에는 “B씨가 갑자기 집을 나갔고 나도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가 자기 명의의 집을 두고 사라질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점, 실종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 B씨가 모습을 감춘 직후 이기영이 새로운 여자친구 C씨와 동거를 시작한 점 등을 추궁했다. 결국 이기영은 “지난 8월 3일 B씨를 살해한 뒤 파주시의 한 강가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택
사람을 죽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의 수감 생활은 어떨까. 세간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의 당사자들은 교도소 안에서도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군가는 사람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방 안에서 조용히 지내고 누군가는 자신의 사건을 웃으며 이야기했다는 말도 나왔다. 또 다른 이는 성별 논란과 억울함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며 다른 수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4일 더시사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고유정은 현재 2인실에서 생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는 대인기피 성향이 강해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함께 지내는 20대 수용자와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피해자의 시신조차 온전히 찾지 못하게 만든 잔혹한 범행과 달리 교도소 안에서는 극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외 중개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유정의 수감 생활은 또 다른 모습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현재 4인실에서 생활 중으로 방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또래 나이에 비해 다소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