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더시사법률> 품36.5 코너를 언제나 잘 챙겨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제 출소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동안 말없이 옥바라지해 준 고마운 남편에게 이 코너를 빌려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보야… 나야…. 갑자기 신문에 편지를 써서 놀랐지? 이 글이 실린다면, 서프라이즈 성공이다! 여보야~ 여자의 몸으로 이곳에 와 있는 날 이해해 주고, 평생 받아도 넘칠 만큼의 사랑을 나에게 줘서 고마워. 자기 덕분에 나 여기서 잘 견디고 있는 거 알지? 지금 나에게 준 사랑, 내가 나가서 백배 천배로 잘하면서 갚을게.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평생 내 옆에 있기야~! 이 안에 있어도 매번 둘만의 이벤트를 챙겨주는 사랑꾼 우리 남편.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내 사람…. 마음을 다해 사랑해.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조금만 더 견디자. 이번 생은 나랑 함께하고, 그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도 나랑 함께해! 2026년에도 우리 잔뜩 사랑하자~ 사랑해! 아프지 마. 내 전부에게, ○○가.
삶의 우여곡절에도 언제나 곁을 지켜주었던 당신. 그런 당신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어 미안하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처음으로 이렇게 떨어져 지내게 되었구려. 나와 당신 사이에 저 높은 담장이 자리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나, 언제나 그랬듯 변함없는 당신의 모습에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오. 어디를 가든지 내 옆에는 늘 당신이었소. 그래서일까, 이제 그 자리엔 그리움만 차오르는구려. 내가 지은 죄는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기에 지금의 시간, 앞으로의 세월 또한 달게 받아야 함을 모르는 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나누었던 소소한 일상이 오늘따라 너무도 간절해지는구려.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아무쪼록 당신의 날들이 조금이나마 덜 고달프길 빌겠소.
안녕하세요. 얼마 전 ‘오크나무’ 카페에 올라온 편지가 신문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더시사법률 신문을 안 보는 수형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가족들의 글을 눈여겨봤을 겁니다. 저희 방에서는 혹시 신문을 구독한 사람이 이송되거나 전방 가는 상황에 대비해 늘 2부씩 구독합니다. 이번에 가족들의 편지가 실린 걸 보면서, 같은 방 형님 한 분이 울더군요. 자기 애인 글도 아닌데 말이죠. 아마도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그리움이 밀려오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보고 싶고…. 저 역시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오크나무’ 카페에도 가입해 있는데,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될지 몰라, 용기 내어 편지를 써봅니다. 사랑하는 ○○○아, 오빠야. 너 면회 와서 마지막으로 “다시는 안 찾아온다” 하고 돌아섰을 때, 나도 괜히 자존심 부린다고 편지에 막말을 퍼부었지.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후회밖에 안 남더라. 여기서 너까지 없다고 생각하니, 진짜 세상 모든 걸 잃은 기분이야. 우리 춘천에서 바이크 타고 달리던 거 기억나지? 그날 내가 너한테 반지 주면서 “평생 잘할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5년째 수감생활 중이며, 앞으로 3년의 형기를 더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서 과밀수용 관련 기사를 접했습니다. 여기서는 “과밀수용 소송이 승소했다”, “안 된다” 등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는 대부분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저 ‘카더라 뉴스’만이 떠도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최근 더시사법률 기사를 통해 재소자들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과밀수용의 위헌성을 인정했고, 실제로 손해배상 판결까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2㎡ 기준’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요? 저희가 생활하는 현실은 다리를 펴고 눕기도 어려운 상황이며, 2㎡는커녕 1㎡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무부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원 보고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자료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교도관들과 저희 5만 명이 넘는 수형자들이 증인인데 정작 당사자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사 내용 중 변호사님들이 “소송을 할
저는 2018년 중한 사건으로 15년 형을 받아 현재까지 7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이복누이 세 명이 어린 저를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사랑과 정성이 여느 부모 못지않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마흔두 해를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감사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질지 못해 남에게 상처를 주었고, 의롭지 못해 남의 것을 훔쳤고, 예절이 없어 몸을 단정히 하지 못했고, 신의가 없어 남을 속였고, 지혜가 없어 어두운 길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제가 자비를 알아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옳음을 알아 훔치지 않고, 예절을 알아 방탕하지 않고, 믿음을 알아 속이지 아니하고, 지혜를 알아 밝은 길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쳤지만 이제야 반성하고 다시 태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젠 그저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잊힐까 하는 걱정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곁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인연은 맺어지더군요. 얼마 전 호주 브리즈번에 살고 있는 조카가 결혼을 약속한 호주인 친구와 이 먼 곳까지 접견을 왔습니다. 못난 삼촌이지만 저를 찾아준 것에 크나큰 감동과
안녕하세요! <더시사법률> 열렬한 독자입니다. 저의 수감 생활을 일절 꿈에도 모르시던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시고 충격과 염려에 마음 졸이시며 밤잠을 못 이루고 계십니다. 저는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부디 제 걱정은 덜어 두시고,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그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천금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편지를 전해 봅니다. 엄마. 당신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태어나 처음 세상의 빛을 보던 그날의 미약한 생명의 울림. 뭐가 그리 급했는지… 팔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그렇게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작게 태어난 게 두고두고 미안하다시며 눈물짓곤 하셨지요. 울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을 걸 압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언제나 저를 살뜰하게 챙겨 주시고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보듬어주셨습니다. 따뜻한 보살핌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늘 자애로운 눈빛과 가끔은 걱정 어린 시선이 머무는 듯했으나 이내 믿음으로 저를 지켜봐 주셨습니다. 당신에게 받은 사랑은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
여보야.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넌 무슨 생각을 할까? 서투르고 부족한 나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제대로 내 마음을 전하려고 해. 우리는 참 특별한 인연이자 운명이었고, 필연이었지. 만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서로가 있어 기대고 이겨 왔잖아. 여보가 내게 먼저 고백도 하고 프로포즈도 했었지?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날이었어. 이제 네 곁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한 번의 겨울만 보내면 되는데 조금만 힘내고 버티고 있어 주라. 더 행복하게 해 줄게. 네가 웃는 날 많이 만들어 줄게. 나랑 평생을 약속해 줘서 고마워. 늘 내 자존감을 높여 주고, “오빠 같은 사람이 될 게”라고 말해 주는 네게 많이 감동받았어. 이젠 내가 말하고 싶어. 우리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들과는 다르게 행복하고 예쁜 가정 꾸리고 살자. 이○○, 나랑 결혼해줄래? ○○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평범하고 익숙한 속담이 얼마나 무거운 진리였는지 저는 요즘 매일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직 제 욕구만 앞세우며 살아왔습니다. 제 이기심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오만하고 배려 없는 삶의 태도가 결국 제 자신을 이 좁은 곳에 구속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제한된 환경과 불안감 탓에 날이 서 있고 포용심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타인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태도 탓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며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설령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내 살을 깎아내는 것처럼 아프더라도 말입니다. 원치 않아도 부대끼며 지내야 하고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이기에 얼굴 붉힐 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타고난 성정대로 서로에게 쉽게 화를 내고, 다투고, 참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아무런 반성도 배우지 못한 채 멈춰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저는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재판을 위해 출정을 나갈 때는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채 이동해야 하고 인원 확인을 위해 이름을 부르면 관등성명처럼 크게 대답해야 합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숨 막힐 정도로 엄격하게 진행됩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긴장된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제 이름이 불려 대답하고 앞으로 나갔고 뒤이어 한 사람의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줄에 섰습니다. 직원이 몇 차례나 다시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버스에 올라 재판장에 도착해서 다시 줄을 세울 때도 그 사람은 이름이 불리자 대답 없이 손만 들어 보였습니다. 예외가 용납되지 않는 이곳에서 혹시 억하심정에 반항하는 것은 아닐까 저를 포함한 모두가 긴장된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뚫어져라 보던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혹시… 말씀을 못 하시는 분입니까?” 그러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을 바라보던 제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섣불리 그를 반항하는 사람, 문제아로 단정 지으려 했던 제 오만한 태도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습니
내 나이 사십 중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무엇이 옳은 삶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탐욕과 불안 속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 나 스스로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넉넉하지 못했던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았어야 했다. 겸손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감사를 찾는 인생이어야 했다. ‘지족상락(知足常樂)', 만족함을 알면 인생이 즐겁고,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큰 부자라는 말을 이곳에 와서야 배우게 되었다. 지난 과업을 돌아보며 나를 성찰하는 중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탐욕을 버리고 만족을 아는 마음을 갖자.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단초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간 감사도, 만족도 모르던 내 삶은 스스로도 불행하고 주변인들까지 파괴하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다. 그 결과 내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그 결핍이 얼마나 많은 이를 힘들게 괴롭혔던가!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려 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갈고닦을 곳이 많은 모난 인생이었는지 알게 됐다. 나를 바로세우고, 내가 입힌 피해를 직면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진창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