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겪은 수많은 마음의 고통으로 저도 모르게 고난의 길을 참 많이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거친 길 위에서도 늘 귀한 은인들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선행을 베풀고도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숭고한 직업들이 참 많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우리 곁의 교정 직원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정부교도소에서 근무하시는 장선숙 교감님께 받은 깊은 은혜에 뒤늦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평소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던 중, 더시사법률의 품36.5˚라는 따뜻한 창구를 통해 큰 용기를 내어 인사를 올립니다. 힘든 직무 속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늘 명쾌하고 통쾌하게 해결해 주시고, 무엇보다 사각지대에서 홀로 외로워하는 재소자들에게 조용히 건네주시는 그 따뜻한 관심이 제게는 큰 구원이었습니다. 교감님이 나눠주신 온화한 미소와 눈빛이 그 어떤 거창한 격려나 칭찬보다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아쉽게도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감님, 이제 저는 스스로 자립하여 반드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올바른 구성원으로 거듭나, 저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봐 주신 교감님의 노고가
마약 판매 혐의로 구속됐을 때, 솔직히 나는 4년 정도 살고 나오지 않을까 낙관했었다. 그런데 법정이 내준 답지는 내 예상보다 두 배나 높은 '8년'이었다. 세상 다 끝난 줄 알고, 여기서 살아서 나가긴 글렀다며 엄살을 떨고 죽네 사네 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렇게 8년이라는 숫자에 좌절하며 만기 출소 날짜를 통보받은 지 보름이나 됐을까. 옛날에 저지른 일로 추가 건 수사가 개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애꿎은 하늘 탓을 한참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죄는 내가 지었지, 하늘이 지었나.’ 그제야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선처를 바라는 마음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판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하지만 내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행유예 조항이 있었음에도 추가로 1년 2개월이 확정됐다. 내 총 형기는 그렇게 9년 2개월이 됐다. 8년을 선고받았던 날 그토록 절망했던 내가 추가 건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참 간사하게도 ‘제발 8년만 살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빌고 있었다. 그 마음의 변화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우습고 씁쓸했다. 지금은 ‘나, 약은 했지만 나약하지는 않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티는
화면 속 숫자가 오르내리는 것에 내 영혼을 맡겼던 시간, 나는 정작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잊고 살았습니다. 도박이라는 괴물에 잠식되어 '한 판만 더', '이번만 복구하면'이라는 악마의 유혹같은 계산 속에 나의 미래는 물론, 나를 믿어준 사람들의 신뢰까지 판돈으로 걸고 있었습니다. 내 손가락이 도박판의 버튼을 누르며 일확천금의 신기루를 쫓는 동안 정작 내 곁을 지키던 사람들의 삶은 매 순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정직하게 땀 흘려 일궈온 평범한 일상을, 나는 도박판의 칩으로 바꾸어 허망하게 탕진했습니다. 내가 복구라는 핑계로 화면 속 숫자에 매달리는 동안, 정작 우리 집의 안온한 저녁 식사와 당연했던 평화는 송두리째 파산하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구치소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내가 탕진한 건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의 기대와 안식이었다는 것을요. 도박은 돈을 잃는 게임이 아니라 인간성을 탕진하는 죄악이였습니다. 내 비겁했던 침묵이 당신들에게 남긴 눈물이 조금이나마 흐려지길 바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 못난 놈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그 마음들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내가 이곳에 갇힌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네. 처음 구속되던 날, 내 잘못으로 인해 당신과 아이들에게 남긴 거라곤 수많은 빚과 절망뿐이었지. 그때는 모든 게 산산조각 나 끝나버릴 것만 같았어. 하지만 현명한 당신이 그 모진 풍파를 홀로 견디며 가정을 지켜준 덕분에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오늘을 버틸 수 있게 된 것 같아. 5년이라는 형기를 확인하고 차마 기다려달라는 염치없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당신과 아이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도 컸기에, 홀로 남겨질 각오로 "이혼 서류를 보내도 된다"고 했었지. 그때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주냐"며, "나와서 제대로 살 생각이나 해"고 말했던 당신의 그 불호령 같은 사랑이 나를 다시 살게 했어. 늘 미안하고 또 고마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 내가 여기서 가족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이 순간에도 내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 속에 살고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야. 내가 감히 우리 가족의 안녕을 바라도 되는지, 스스로 물어보며 고개를 숙이게 돼. 그래서 나는 남은 2년의 시간을 단순히 기다림으로 채우지 않으려 해. 출소 후에 다시는 비겁한 길에 서지 않도록 누
사회에서 불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의 가해자가 되고, 이곳 수용 거실까지 흘러 들어온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때 한 번만 참을 걸" 하며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수용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의 가장 혹독한 인내심 수업을 받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인내의 연습은 바로 지금, 이 좁은 거실 안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수용 생활에도 엄연히 지켜야 할 규칙과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고압적인 '방장' 문화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실의 최고 선임이 권위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봉사원이 되어 원활하고 건전한 단체생활을 이끄는 미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선임이 중심을 잡고 에티켓을 솔선수범할 때 수용 거실 내 불필요한 다툼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최고 고참이라는 이유로 큰 소리로 주변에 불편을 주거나, 거친 언행으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특히 설거지나 청소 같은 공동의 과업에서 "나는 선임이니 열외"라고 주장하는 편향된 태도는 동료들을 괴롭게 만들고 불평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권위적으로 군림하며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주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반성하며 지내고 있는 수형자입니다. 24년 3월에 처음 구치소에 들어왔다가 올해 2월 이곳 교도소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담장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참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내가 그때 사고만 안 쳤어도 지금쯤 가족들이랑 저녁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에 목이 맵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못난 자식 때문에 고생만 한 가족들 생각에 눈물부터 앞서네요. 보고 싶어도 못 보고, 남들 다 가는 여행 한번 같이 못 가드리고... 번듯하게 성공해서 효도부터 해드리고 싶었는데 효도는커녕 죄수복 입은 모습만 보여드린 게 너무 가슴 아프고 죄송합니다. 특히 잊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제가 재판받던 날, 징역 4년 선고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내 죄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우리 엄마 인생까지 무너뜨렸구나 싶어서 제가 저지른 잘못의 무게가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가족들을 만나려면 이제 2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뭘 해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속죄하며
우리는 살면서 무심코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는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사회에 있을 땐 그저 관습적인 예의라고만 생각했던 이 짧은 안부가, 이곳 담장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내다 보니 얼마나 고귀하고 어려운 축복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의 밤이 아무런 공포나 걱정 없이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선의입니다. 하지만 우리 수용자들은 그 소중한 타인의 평온을 깨뜨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잘못의 돌에 맞은 누군가는 그날 이후 단 하루도 ‘안녕히’ 잠들지 못하는 고통의 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자각이 들 때면 감히 타인에게 안부를 묻거나 사랑을 논하는 것조차 오만하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한 채 내 마음의 평안만을 구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반성은 단순히 말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뜨린 타인의 일상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방치하고 미워하며 불성실하게 수용 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속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 것뿐인데 사람들은 참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사실 1년은 정확히 365일이 아니라 365일 6시간(5시간 48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 미세한 오차가 모여 4년에 한 번, 2월 29일이라는 '윤년'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제게 주어진 이 수용 생활 또한, 어긋난 삶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선 '인생의 윤달' 같은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속되고 처음 맞이한 연말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한 해의 성과를 축하하며 환하게 웃는 이들을 보며, 공연히 그들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저렇게 빛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차가운 담장 안에 덩그러니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봅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 보려 해도 거울 속에 비친 건 일그러진 얼굴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닫습니다. 내가 시기했던 그들의 환한 미소는 정직하게 땀 흘린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는 것을요. 내가 그리워하는 가족의 온기,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새해 인사... 그 평범한 행복을 누릴 자격을 스스로 내던진 건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
안녕하세요. 교정시설 내에서 부정행위가 근절되고 모든 수용자들이 건강한 수용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교정시설에서는 많은 수용자들이 정신과 진료를 통해 수면제 등을 비롯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약이 꼭 필요한 분들도 있지만,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고 일어나면 출소 날이겠다 싶을 정도로 아침, 점심, 저녁, 취침 전까지 수면제를 복용하며 수면제에 의존하는 중증 수용자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약을 거래하기 위해 처방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처방받은 약을 숨기려고 혀 밑이나 잇몸 속 깊숙이 넣거나, 약을 먹은 척하고 먹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약을 받고서 바닥에 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수용자들은 이렇게 숨긴 약들을 교정시설 내에서 수수·거래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용되어 있는 중에도 이런 행위들로 벌금형부터 실형까지 선고된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한정된 인력의 교도관이 수용자들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기도 어렵고, 다수 수용자들이 먹는 많은 양의 약을 하나하나 다 확인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악용해 이러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부 수용자들 때문에 실질적으
구치소가 있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제가 구치소에 수감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됐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 내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에는 ‘실제로 일을 주도하고 지시했던 사람은 밖에 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나’ 하는 억울함에 사로잡혀, 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나의 탓이며,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던 일이 잘못된 일인 것을 알게 됐을 때 똑바로 생각해 보고 일을 그만둘 용기를 냈어야 했습니다. 제가 제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제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며 살았던 결과 이곳까지 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제가 했던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지금은 사회로 돌아갔을 때 다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처음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이송되던 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눈물을 흘리며, 행여 나오는 호송 차량에 남편이 타고 있지 않을까 발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