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경찰서 강력2팀 형사 C에게 2020년 7월 2일 자정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온 건 송산면 변사 현장으로 출동한 형사팀이었다. 현장에서 두 자매의 사체가 발견됐다며 빨리 현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살인사건이었다.
형사 C는 강력2팀 팀장과 막내 형사와 함께 서둘러 현장으로 이동했다. 강력2팀이 있던 당진경찰서와 사건 현장이 있던 송산면까지는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짧은 이동 거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형사 C는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고, 쉽지 않은 심각한 사건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형사 C는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한 뒤 동료 형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 멈췄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끈적한 공기와 함께 강렬한 악취가 밀려들었다. 변사 사건을 많이 겪어본 형사들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견디기 힘든 냄새였다.
악취는 열려 있는 현관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였다. 형사 C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료 형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형사 C는 그 냄새만으로 사체의 부패가 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뜨거운 공기 속에서 사체는 빠르게 변했을 터였다.
두 구의 사체 중 아파트 7층 거주자는 30대 후반의 여성 A 씨였다. A 씨는 팬티를 입은 채 어깨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부패액이 흘러 침대를 적시고 있었고 이미 구더기가 사체 곳곳에 많이 끼어 있었다.
얼굴은 부패가 심해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날 발견된 사체로는 A 씨 만이 아니었다. 12층에 거주하는 40대 초반의 여성 B 씨도 발견됐고, A 씨와 B 씨는 자매였다.
형사 C는 12층으로 올라가 B 씨의 사체도 확인했다. B 씨는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부패 상태는 A 씨와 비슷했다. 두 사체 모두 부패가 심해 육안으로는 상처나 외부의 공격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7층과 12층 모두 사건 현장에 범인이 남긴 흔적은 거의 없었다.
혈흔도 없었고 누군가 집안을 뒤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형사들은 자살 가능성을 염두하고 유서도 찾아보았지만, 집안 어디에도 유서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현장에서 감식을 진행하는 과학수사팀이 언니 B 씨의 집에서 수많은 슬리퍼 족적을 찾아냈다.
형사들은 그 족적이 어떤 신발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B 씨의 동생 A 씨의 집 현관에 있던 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누가 그 슬리퍼를 신고 7층과 12층을 오가며 살인을 저질렀는지 형사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미 유력한 용의자를 이 사건을 신고했던 신고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고자는 B 씨가 운영하던 민속주점의 종업원이자 같은 교회의 교우였다. 그녀는 평소 B 씨와 사이가 좋았고 가깝게 지냈다. 종업원은 2020년 6월 26일 저녁 B 씨에게 온 메시지를 받고 의아함을 느꼈다.
B 씨가 뜬금없이 고향인 부산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며칠 정도 쉬다가 올 테니 가게 문을 닫으라는 메시지까지 보냈던 것이었다. 종업원은 평소 신중하고 계획적이던 B 씨의 성격상 갑작스럽게 부산에 간다는 사실도 이상하고 며칠씩 장사를 접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7월 1일 오후 5시에는 B 씨의 여동생인 A 씨에게도 메시지를 받았는데 갑자기 B 씨가 운영하던 민속주점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종업원은 A 씨의 황당한 요구에 직접 확인하고자 B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B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전화를 받지 않던 B 씨에게서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동생 A 씨에게 가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라는 내용이었다.
이상함을 감지한 종업원은 B 씨의 민속주점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과 같이 B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들이 12층에 내리던 순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닫힌 현관문 밖으로 악취가 새어 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지구대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했고, 잠긴 문을 뜯어냈다. 텅 빈 집 안엔 부패한 시신 한 구가 침대 위에 있었다. B 씨였다. 한편 종업원은 경찰에게 한 가지 또 다른 사실을 알렸다. B 씨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던 자신의 동생 A 씨의 집을 같은 동 7층에 얻어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확인차 7층의 A 씨 주거지도 수색하기로 했고, 그곳에서 역시나 부패한 사체를 발견했다.
제보자인 종업원의 신고 덕분에 자매의 시신은 뒤늦게나마 발견될 수 있었다. 종업원은 두 사람의 죽음을 보고 한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최근 두 자매와 함께 교회에 나왔던 교우로 한 달 전부터 당진에 있는 한 마트 정육점에서 근무하는 남자였다.
수사팀은 종업원의 제보 내용을 추적하는 동시에 자매의 부모를 찾아 상황을 공유하였다. 알고 보니 자매의 부모는 두 딸이 며칠이나 연락되지 않자 실종신고까지 마친 후였다. 그리고 형사들은 자매의 부모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됐다. 자매의 부모 역시 자매 곁에 있던 한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던 것이다.
용의자는 D 씨(남성, 30대 초반)로, 최초 신고자였던 민속주점의 종업원이 지목한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D 씨는 전과 10범의 알코올중독자였다.
자매 중 동생이었던 A 씨 역시 알코올중독자였는데, 두 사람은 알코올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나 가까워졌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보였다. D 씨와 A 씨는 2020년 2월부터 사귀기 시작해 5월부터 동거 중이었으나 두 자매의 살인사건 이후 D 씨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 확인되었다.
당진경찰서 강력팀은 두 자매가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드디어 수상한 한 남자가 포착되었다. 6월 26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A 씨의 거주지가 있는 7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1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새벽 3시경, 그는 다시 12층에서 7층으로 내려갔고 손에는 B 씨의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차림새였다. 남자가 신고 있던 슬리퍼가 바로 B 씨의 집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던 그 슬리퍼였다. 형사들은 이 남자를 범인으로 특정하였다.
범인은 주위를 살피더니 공동 현관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러고는 다시 7층으로 올라갔고, 이후에 그가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당진경찰서 형사들은 당일 새벽 3시 40분경 주변의 CCTV를 통해 범인이 공동 현관 밖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남자는 벤츠 차량에 올라타고는 유유히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형사들은 해당 차량의 동선을 계속해서 추적했다. 출발 후 5분이 지났을 무렵, 범인은 차를 잠깐 세우고 쓰레기장에 옷가지로 보이는 것들을 버렸다. 형사들의 직감이 반응했다. 범행 당시 입고 있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형사들은 범인이 타고 간 벤츠 차량의 차량번호를 확인했다. 조회 결과 해당 차량의 소유주는 사망한 B 씨였다.
형사들은 범인을 더욱 확실하게 특정하기 위해 남자의 얼굴을 확보해야 했다. 다행히 CCTV 영상 중 범인의 맨얼굴이 드러난 장면들이 있었다. 범인이 쓰레기장 앞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화질은 희미하긴 했지만 대체로 분명한 얼굴 윤곽이 CCTV에 찍힌 것이었다.
형사들은 해당 장면을 캡처하고 이 사건의 최초 신고자였던 종업원에게 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캡처 사진을 본 종업원의 눈이 커졌다. 영상 속 인물이 바로 종업원이 처음부터 수상한 남자로 지목한 D 씨였다.
한편, 사건 현장에서는 A 씨와 B 씨의 휴대폰을 찾기 위한 수색이 이어졌지만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D 씨가 자매의 휴대폰은 물론 언니 B 씨의 지갑이 들어 있던 명품 핸드백까지 훔쳐 달아난 것이었다. 형사 C는 우선 A 씨와 B 씨의 휴대폰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사팀이 D 씨의 휴대폰 번호 역시 확보한 상태였다. 문제는 그가 사용하던 통신사가 별정통신사여서 추적이 곧바로 진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우선 D 씨가 훔쳐 간 자매의 휴대폰부터 추적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두 휴대폰 모두 7월 1일 오전 10시를 마지막으로 전원이 꺼져 있었다. 살인자는 활보하고 있을 것이고, 형사들은 D 씨의 휴대폰 위치추적이 가능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이제 수사의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범인 D 씨가 이미 멀리 도주했을 가능성과, 아직 당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 두 갈림길에서 형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D 씨에게 도망가거나 숨을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어떤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진경찰서 형사 C의 자매 살인범 추적기(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