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있는 시간보다 법정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변호사이지만, 형사 법정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특히 성범죄 사건은 피해 주장과 부인 사이의 간극이 크고,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더욱 높다.
의뢰인은 아동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미 경찰 조사가 끝난 뒤였고, 사건은 재판 단계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고, 혐의에 대한 선입견도 강했다. 나는 재판부터 변론을 맡게 됐다.
첫 공판기일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성범죄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배심원의 판단이 평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공개된 법정에서 충분히 다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러 절차를 거쳐 비공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이 결정됐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 선정 과정이 중요하다. 배심원들은 증거와 변론을 토대로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변호인과 검사는 각각 질문을 통해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지를 확인한다. 이 절차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사건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단계다.
본격적인 증거조사가 시작됐다. 검사는 피해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강조했고, 변호인은 객관적 증거의 부족과 진술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다.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이뤄졌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된다.
변론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록을 반복해 검토하며 작은 사실관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최후변론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재판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는, 증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하는 데 집중했다.
배심원 평의는 약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이 나왔다. 재판부 역시 이를 존중해 무죄를 선고했다.
성범죄 사건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고, 혐의만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낙인이 남는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유죄는 증명되어야 하며, 의심은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이번 사건은 특정인의 승패가 아니라, 절차와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법과 증거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