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접하는 표현 중 하나로, 억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거 정당방위 아니야?”라며 쉽게 말하곤 한다. 이처럼 정당방위라는 단어는 국민 정서에 널리 퍼져있고, 언론에서도 종종 다뤄질 만큼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이 단어를 법률 용어로 쓰려고 할 때는 고민이 생긴다.
정당방위는 부당한 법익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제도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상당한 이유’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흔히 발생하는 폭행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범한 직장인 A 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헬스장을 찾았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지만 그날 A 씨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A 씨가 헬스 기구를 이용하려는 중 B 씨와 마주쳤고 서로 누가 먼저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다툼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B 씨는 갑자기 A 씨의 부모를 언급하며 시비를 걸었다. A 씨는 키도 크지 않고 체격이 마른 편이었고, B 씨는 덩치가 크고 외모에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B 씨는 ‘맞장 뜨자’는 표현까지 써가며 A 씨를 도발하였고, 실내 소란이 부담됐던 A 씨는 B 씨에게 밖으로 나가 얘기를 하자고 했다.
B 씨는 순순히 따라 나가는 척하면서 A 씨를 CCTV가 없는 구석으로 데려갔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순간 B 씨는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A 씨는 저항할 틈도 없이 얼굴을 가격 받고 고꾸라졌다.
이어지는 무자비한 폭행 속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다리를 허우적거렸고 B 씨의 다리 부분을 걷어찼다. 이후 간신히 폭행 현장을 빠져나온 A 씨는 헬스장 프런트에서 112 신고를 했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된 A 씨는 경찰이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을 가격한 B 씨가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A 씨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B 씨가 본인도 맞았다며 A 씨를 처벌해달라 요구한 것이다.
결국 쌍방 폭행으로 두 사람 모두 입건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A 씨의 법정 공방은 길고도 냉혹했다.
A 씨는 늑골 골절, 치아 파손 등 수주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B 씨는 다리 부분에 입은 찰과상이 전부였다. A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검사는 A 씨에게 상해 혐의를 인정하면서 정상을 참작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기소유예 처분은 사실상 다툴 방법이 없다.
헌법소원이라는 절차가 있긴 하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극히 낮다. 또 1년이 넘게 걸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 씨는 정신적 신체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 몇백만 원 수준의 판결을 받았다. 치료비와 그간의 고통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길고도 지루했던 폭행 사건의 결론은 A 씨에겐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A 씨는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정당방위를 주장했던 그의 방어 행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소송을 통해 힘겹게 얻어낸 손해배상금조차도, 실질적인 손해와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이 사건은 우리 법 제도에서 쌍방 폭행으로 규정되는 순간,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구제가 얼마나 박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대 앞에서, 그저 손 놓고 맞고만 있으란 말인가? 내 몸뚱아리를 샌드백처럼 내어주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른다.
말로는 ‘정당방위’가 존재한다지만 실상은 그 방어를 입증하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택해야 방법은 이것이다.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답답하고 분하고 못마땅하겠지만, 싸움은 피하고 봐야 한다. 한발 물러서는 용기가 결국은 내 자존심과 몸과 재산을 지키는 최선의 방패가 된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보다 정당방위를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사실관계는 일부 각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