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 내 음란도서 자유 반입… 법 체계 모순

  • 등록 2025.04.07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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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소장 재량에 한계…
법령 간 모순으로 통제 불가
교정당국 “교화 저해” 지적
국회 형집행법 개정안 발의

성범죄자를 포함한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19금’ 도서를 별다른 제한 없이 자유롭게 반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형자가 신청만 하면 선정성이 높은 잡지나 성인 만화도 대부분 반입이 허용된다. 심지어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수강한 수형자조차 수용실에서 성인 도서를 열람하고 있어, “교정의 목적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제47조는 “수용자가 신청한 도서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른 유해 간행물이 아닌 이상 반입을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 간행물 지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여성의 나체가 등장하는 잡지나 음란성이 짙은 성인 만화 대부분이 유해 간행물로 간주되지 않는다.


법무부가 지난 2023년 취합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의 월간 도서 반입 건수는 평균 약 14만 권 수준이며, 이 중 성인 잡지는 월평균 3,5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정 현장에서도 이로 인한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교정 공무원은 “성폭력 수형자가 음란 도서를 열람하는 상황이 과연 교화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령의 구조적 모순도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형집행법 제47조는 유해 간행물이 아닌 도서에 대해 구독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같은 법 제26조·27조·92조는 음란물이나 폭력물 등을 소지 금지 물품으로 간주하고, 소장이 재량에 따라 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조항 간 충돌은 법원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대구고등법원은 2018년 선고한 판결(2018누2293)에서 “유해 간행물이 아닌 잡지를 음란성을 이유로 반입 불허한 교도소장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도서의 내용은 형집행법상 제한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소장의 재량권 행사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형집행법과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그리고 판례 간의 구조적 불균형이 수용자들의 행정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폭력 범죄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A 씨는 2022년 해외 간행물을 수령하려다 교도소장으로부터 ‘음란 도서’라는 이유로 반송 처분을 받자, 이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해당 도서는 유해 간행물이 아니며, 반입을 제한한 것은 알 권리 침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구독 신청은 허용하면서 교부 신청은 음란성을 이유로 제한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도 교도소 측의 ‘사정판결’ 요청은 기각됐다.


교정 당국은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와 국민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그런 공익적 고려는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교정시설마다 도서 반입 기준이 다르고, 교도관의 주관에 따라 검열 강도가 달라지는 점도 위헌적 요소라는 판결도 나왔다. 법원은 “심의자마다 기준이 달라 수용자 간 권리 행사에 차별이 생기는 것은 위헌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법무부는 수발 대행업체의 도서 반입 및 대여(음란물 및 불법 제작물) 등 지속적 반입 시도, 우송·차입 물품 교부에 따른 금지 물품 반입 등의 문제로 ‘수용자 우송·차입 도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여 영치금을 통한 도서 구매 방식을 원칙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인권위는 수용자의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한 조치라면서 시행 중지를 권고했고, 법무부는 이 지침을 철회하였다.


이후 2024년 8월부터는 외부 도서 반입 시 발송인의 신분을 사전 등록하는 ‘우송 도서 등록제’를 도입했지만, 도서의 내용 자체에 대한 제한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024년 8월 형집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수용자가 구독을 신청한 신문·잡지·도서가 음란, 폭력, 마약 등의 행위를 과도하게 묘사하여 수용자의 교화를 저해하거나 시설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무부령으로 해당 간행물의 구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법무부 역시 “수용자의 알 권리 제한이라는 측면은 있으나, 교정 교화와 수용 질서 유지, 국민 법 감정 등을 고려할 때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도서 열람은 수용자의 정서 회복과 사회 복귀에 도움이 되는 만큼, 음란성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알 권리 침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무법인 JK 김수엽 대표변호사는 “형집행법과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그리고 판례 간의 충돌은 ‘교정 목적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가치의 충돌을 상징한다”며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교도소별로 도서 반입 기준이 상이해 헌법상 평등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유해 간행물 지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19금 잡지조차 유해 간행물로 분류되지 않는 현실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설아기자 seolla@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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