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D 교도소에서 야간 사동팀장을 할 때였다. 수용사동 담당직원 K가 수용자 한 명을 조사수용 해달라며 사무실로 데려왔다. 수용자들이 외부에 발송하는 편지에 찍힌 소인을 지우고 떼어낸 우표를 붙였다는 이유였다. 수용자 S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무릎 꿇고 울며 사정했지만, 담당 직원 K는 처벌 의사를 강력하게 표했다.
나는 사안이 크지 않고 수용자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만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원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우선 조사수용을 시키고 다음 날 조사실에 연락해 훈계 처분을 해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사실에서는 우표 소인을 지운 행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며 S에게 징벌을 부과했다.
수용질서를 바로잡고 수용자들을 교정교화 하는 데는 교도관 각자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소년교도소에 근무할 당시, 교도소 직원들과 소년수용자들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 선생님과 학생과 같이 서로에게 끈끈한 정이 있었고 적대관계가 아닌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였다. 소년수용자들이 관규 위반을 했을 때도 큰 문제가 아니면 직원들은 조사수용 시키기보다 상담을 통해 훈계하는 등 품어주는 경우가 많았고, 소년수용자들은 이런 직원들의 태도에 감사해하며 따르고 있었다. 어떤 수용자들은 담당 직원을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출소 후에도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사이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곳에 수용질서를 잘 잡기로 유명했던 L 소장이 새롭게 부임하며 모든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한 소장의 주도로 ‘적발제도’라는 것이 시행되었다. 수용자들의 관규위반 행위를 잡아내어 처벌하는 것이었는데, 적발 세 번을 당하면 징벌을 받는 제도였다. 적발을 많이 한 직원에겐 소장 표창을 주었고, 사무직 지원 시 우선 선발하고 인사 및 성과급에 반영되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었다. 반대로 적발 횟수가 적은 직원들에겐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로 인해 수용질서는 잡혔지만 이른바 적발왕들이 수용자들의 사소한 잘못까지 지적하자 소년수용자들이 언젠가부터 직원들을 적대시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L 소장 부임 전에는 표창 하나 받지 못하던 모 직원은 L 소장 부임 후 매달 적발왕 순위에 들어 표창을 계속 받기도 했다. 어떤 직원들은 L 소장 치하에서는 C급 직원이 S급이 된다며 빈정대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던 조사실 선배는 L 소장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했고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적발왕들이 조사실로 넘긴 수용자들중에는 징벌받을 사안이 아닌 억울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았고, 직원들이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로 수용자들을 대하면서 마찰이 잦아지자 수용자를 무조건 조사실로 넘기고 있었다. 선배는 이런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L 소장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가 이전에 근무하던 A 교도소에서는 L 소장이 조직폭력배들의 수용질서도 확실히 잡아 준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L 소장의 긍정적인 면은 그가 다른 소장들과 달리 수용자 교정교화와 수용관리에 있어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L 소장은 프로그램을 위해 보안과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한 달여에 걸쳐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시켰고, 수용질서를 엄격하게 잡아 전 수용자들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워낙 카리스마 있고 강하게 추진했던 만큼 직원들에게나 수용자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소장이었는데, 프로그램만을 놓고 본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 명심보감 등의 책자를 만들어 전 수용자에 배포했고, 성적이 우수한 수용자에겐 가족 만남의 날 등과 관련해 인센티브를 주었다. 조직폭력사범이나 마약사범에게도 그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당시 가족 만남의 날 행사나 장소변경 접견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이 기를 쓰고 공부해 성적우수자 혜택을 받기도 했다. L 소장은 전 수용자들이 소장에게 편지를 쓰게 하여 본인이 직접 읽고 고충을 해결해 주기도 했고, 보라미 방송이 없던 당시 방송 시스템을 갖추어 전 수용자들에게 음악이나 좋은 글을 방송으로 내보며 소장실에서도 함께 들었다.
또한, 징벌 사동엔 라디오 방송도 나오지 않았는데 자체 방송으로 어머니의 편지 등을 읽어주었고, 성경과 명심보감 등을 필사하면 징벌 감경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징벌 수용자들이 필사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내가 만난 수용자들중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K는 신안의 작은 섬에서 자라며 한글을 깨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다른 수용자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나는 K와 같은 방을 쓰는 B에게 한글을 가르치라고 지시했다. 일방적인 지시였고, 한글을 가르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K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들을 경험해 보니 L 소장의 강압적인 지시와 처벌이 부작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필요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