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바꾸는 건 처벌이 아니라 관계였다

  • 등록 2025.04.21 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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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에서 확인한 변화의 조건
문제아가 아닌, 남겨진 아이였다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호칭은 ‘선생님’도 ‘교도관님’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종종 우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규율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아이가 있다. 박00. 늘 문제의 중심에 서 있던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그마저도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생계를 위해 1만원을 훔치다 상습절도로 이어졌고,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됐다. 그의 전과 기록에는 죄명보다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먼저 읽혔다.

 

소년교도소 안에서도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규율을 어겼고 징벌방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다른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사동팀장 김 모 교위는 달랐다. 그는 박00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를 쳐도, 욕을 해도, 징벌을 받아도 그는 늘 아이를 불러 세워 말을 건넸다. 꾸짖기보다 물었고, 지적하기보다 들으려 했다. 왜 그랬는지, 무엇이 힘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결국 아이가 무너졌다.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제발… 나한테 잘해주지 말고 신경 끄세요.”

 

그 말은 거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 받아보는 관심이 두려워 밀어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결국 그는 또 규율을 어기고 징벌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동팀장은 그를 놓지 않았다. 아이가 부르면 언제든 찾아갔고, 말이 없으면 그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 이어진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며칠 뒤 징벌을 마치고 나온 박00이 김 교위를 찾아왔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박00은 “팀장님 때문에… 더 이상 사고 못 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그는 입실을 거부하지 않았다. 말없이 거실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선택한 ‘멈춤’이었다.

 

사동팀장은 나와도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승진을 포기한 채 늘 사동에 남아 아이들 곁을 지켰다. 더 나은 자리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는 그 자리를 지켰다.

 

돌이켜보면 교정시설에서의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한 번의 처벌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곁에 남아 있을 때, 그 사실이 사람을 조금씩 바꾼다.

 

소년교도소에서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아이들이 우리를 ‘아버지’라고 불렀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혈연이 아니어도, 등을 돌리지 않는 어른이 있다는 것. 그 존재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붙잡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천동성 cjseh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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