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18화) 형사 C의 잊지 못할 실종수사 사건

  • 등록 2025.04.28 15: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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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중인 아내의 실종신고
‘이혼’ 두고 오랫동안 다퉈와
내연녀 가족들과 공모한 범행
범행 흔적을 간직한 사체 발견

 

2011년 봄, 시흥경찰서 실종수사팀은 말 그대로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형사 C는 실종수사팀의 팀장으로 연일 쏟아지는 청소년, 부녀자 실종 신고로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해 3월 18일, 형사 C는 잊지 못할 한 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신고자는 중년의 남성 B 씨, 별거 중인 아내 A 씨가 실종됐다는 신고였다.


B 씨 말에 따르면, 그가 아내 A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3월 13일 새벽 인천시 계양구 주택가 앞이었다. 두 사람은 별거 중이었고 이혼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B 씨는 이혼을 논의하기 위해 A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A 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수원에 살던 B 씨는 A 씨가 고의로 본인의 전화를 피한다고 생각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겨우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B 씨는 A 씨와 통화 후 본인의 트럭을 몰고 인천 계양구까지 달려갔다. 이혼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B 씨의 트럭을 타고 시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화는 말다툼으로 번졌고, 새벽 4시경 B 씨는 아내를 시흥시 중림사거리 근처에 내리게 한 뒤 그대로 떠났다고 진술했다. 그날 이후 4일이 흐를 동안 A 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이혼 때문에 다툼을 벌였다지만 B 씨는 아내가 걱정되었고 결국 시흥경찰서 실종수사팀에 실종신고를 하게 된 것이었다. 형사 C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성인의 경우에는 실종이 단순 가출인지 아니면 범죄연계인지 신고 단계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형사 C는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머릿속에서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그려놓았다. 그에 맞춰 수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첫째, 가출. 형사 C는 가장 단순한 가능성부터 짚었다가 이 가설은 배제했다. 비록 남편과 별거 중이었지만 A 씨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다. 25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고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온 어머니였다. 이러한 일상을 모두 내팽개치고 가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둘째, 사고. 형사 C는 다음 가능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편 B 씨가 그녀의 거주지가 아닌 시흥시에 내려주었기 때문에 새벽 시간 A 씨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이용해 부천, 안양 등을 거쳐 이동했을 터였다. 수사팀은 해당 시간대의 교통사고 여부를 철저히 조사했지만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셋째, 마지막 가설은 끔찍한 사건으로의 발전이었다. 즉 납치, 살인사건 등을 가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A 씨는 빚도 없었고 주변의 원한을 살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단 하나, 남편 B 씨와 이혼 문제로 오랜 시간 다퉜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실종신고 당시 A 씨와 B 씨는 서류상 혼인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편 B 씨는 이미 내연녀 D 씨와 동거를 하고 있었고, 동거 중인 두 사람 사이에는 취학 연령에 접어든 6살짜리 딸까지 있었다.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서 B 씨는 계속해서 A 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내연녀 사이에서 낳은 딸이 혼외자식으로 취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A 씨가 끝내 이혼을 거부한 이유 또한 자식들 때문이었다. 남편 B 씨와 낳은 두 딸의 장래가 걱정되어 서류상이나마 아버지를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형사 C가 이들의 가정사를 모두 파악했을 때 그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실종신고를 한 남편 B 씨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 별거를 했더라도 본처를 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인가? 형사 C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서둘러 수사에 착수했다. A 씨가 실종됐다고 주장하는 그날의 B 씨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B 씨의 알리바이가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이 사건은 실종보다 살인 쪽에 가까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형사 C는 실종자 A 씨와 신고자 B 씨의 행적을 샅샅이 되짚었다. 이 과정에서 A 씨의 실종 당일 B 씨만이 아니라 내연녀 D 씨와 D 씨의 오빠 E 씨까지 모두 사건 당일 동일한 동선에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사실 B 씨는 처음부터 내연녀 D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A 씨를 만나러 가는 길 트럭 조수석에 D 씨가 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D 씨가 직접 A 씨와 담판을 짓겠다고 말해 같이 이동했다고 했다. 하지만 B 씨는 두 사람의 싸움을 우려했고 D 씨를 중간지점인 부천에 내려주었다고 했다. 이후 인천에서 A 씨를 만나 말다툼을 벌였고, 다시 D 씨를 포함해 대화를 나누려고 부천으로 돌아갔는데 D 씨가 보이지 않자, D 씨의 오빠 E 씨에게 찾아달란 부탁을 하게 된다. E 씨는 곧 D 씨를 찾았고 네 사람이 함께 E 씨가 운영하는 시흥시 고물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대화를 시도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B 씨는 아내 A 씨를 시흥시에 내려주고 D 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B 씨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형사 C는 그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CCTV에 포착된 장면들과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을 추적했을 때 B 씨의 진술엔 허점이 많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형사 C를 멈칫하게 한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B 씨는 아내 A 씨를 3월 13일 새벽 4시경 시흥시 중림사거리에 내려줬다고 했지만, 수사팀은 그 시각 B 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휴대폰이 그날 새벽 2시 41분경에 부천시 오정구에서 꺼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B 씨가 A 씨를 살해했다면 범행 후 휴대폰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을 미리 꺼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B 씨가 트럭 안에서 A 씨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장소에 대한 진술도 거짓이었다. 마침 그날 화이트데이를 맞아 인근 제과점이 새벽 2시가 넘도록 영업을 하고 있었고, 제과점 CCTV에서는 B 씨의 트럭이 제과점 앞 도로를 정차 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형사 C의 추궁이 이어지자 B 씨는 계속 발뺌을 하며 진술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억이 잘못됐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새로운 기억조차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그의 내연녀 D 씨, 그녀의 오빠 E 씨의 진술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수사팀은 다시 실종자의 흔적을 되짚는 데 집중했다. A 씨는 새벽 1시 50분경 현관문을 나섰고, A 씨의 큰딸에 따르면 이날 B 씨를 만나러 간다며 외출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다음 날 A 씨가 돌아오지 않자 큰딸은 B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B 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경찰에 진술했던 것과 똑같이 일러두었다.


형사 C는 A 씨가 3월 13일 새벽 1시 55분경 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B 씨를 만났고, 이후 B 씨의 차량이 인근 고가도로를 지나 잠시 정차했으며, 새벽 2시 27분경 똑같은 고가도로를 지나 되돌아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30분의 공백을 확인한 형사 C는 직감했다. A 씨는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수사팀의 치밀한 조사가 이어지자 B 씨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의 입에서 진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B 씨는 내연녀 D 씨와 함께 미리 범행을 공모했고, 준비해 둔 밧줄로 차 안에서 목을 졸라 A 씨를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범행을 저지른 후 B 씨는 E 씨에게 연락해 함께 고물상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고물상에 모인 이유는 A 씨의 시신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내연녀 D 씨는 사체를 빨리 부패시키려면 옷을 벗겨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이들은 A 씨의 옷을 모두 벗기고 사체를 자루에 담았다. 이후 옷가지와 범행도구인 밧줄을 고물상에서 불태우고 사체 유기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지목한 유기 장소를 아무리 뒤져도 자루에 담긴 사체는 나오지 않았다. B 씨의 진술에 따르면 3월 16일 새벽 1시경 서해대교 인근에서 사체를 유기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조사가 시작되자 B 씨는 실제로 사체를 유기한 장소를 자백했다.

 


그곳은 서울시 양재동의 한 농원이었다. 농원의 소유주는 내연녀 D 씨의 아버지였다. 내연녀의 아버지까지 이 사건에 얽히게 된 것이었다. 결국 B 씨와 D 씨 일가족은 3월 14일 오전 농원 한쪽에 땅을 파고 사체를 유기하기에 이른다. 마침 3월 18일이 D 씨 남매 아버지의 생일이었고, 이들은 이날의 생일 모임을 통해 알리바이를 꾸미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낸 것이었다.


형사 C가 이 사건을 잊을 수 없는 건 본인이 아내를 살해하고도 실종신고를 했던 남편의 뻔뻔함 뿐만이 아니었다. 3월 28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찾아낸 A 씨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탓이다. 매장한 지 열흘 가까이 지났지만 A 씨의 사체는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마치 억울함을 온몸으로 외치듯,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목 부위에는 범인들의 범행을 증명하듯 밧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

박진규 작가 cjssadfeh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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