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 고객과의 저녁식사(1) (정재민의 변호사 다이어리)

  • 등록 2025.05.07 17: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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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기소된 17세
‘무죄’를 유일하게 믿어준 건 변호인

 

일전에 고객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고객은 내가 변호한 피고인의 어머니였는데, 그 피고인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기소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영호(가명)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함께 한 동료 이민진 변호사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시간이 좋았기에 다음에 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 변호인과 고객이 사적으로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영호의 어머니와 계속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영호의 재판 결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영호는 일부 무죄를 받았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다시 한번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진심으로 변론해 주신 것을 잘 안다며 격려해 주었다. 대신 우리는 잘못된 판결이 남긴 고통과 상처를 서로 위로했다. 어머니는 믿어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자신의 무고함을 믿어주지 않자 온 세상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듯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피고인들을 여럿 보았다. 사실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억울함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은 변호인뿐이다. 친구나 가족도 있겠지만 변호인만큼 사건의 내용과 그간의 진행 과정을 세세히 알지 못한다.


물론 변호인조차 피고인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나는 영호와 모친의 진실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건을 맡았고 열심히 했던 것이었다. 재판을 받는 일은 그분들의 인생에 훨씬 더 중요한 일이겠지만 내 인생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생의 전성기라는 4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더더욱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20여 건의 소수의 사건만 유지하면서 내가 직접 서면을 쓰고 변론하면서 정성을 들인다.


이 사건은 내가 가장 열심히 매달린 사건이자 우리 사법 시스템이 성범죄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영호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7세 때 인터넷에서 한 여자아이가 성관계 제안(‘돔’이라는 성적 취향을 찾았다)을 하는 것을 보고 채팅을 시작했다. 그 여자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고, 그 아이가 모텔을 가자고 해서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으나 모텔이 아닌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서로의 음부를 손으로 만지다 헤어졌다. 이것이 영호가 말하는 사건의 시작과 끝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11세)였다. 피해자 아버지가 우연히 딸의 휴대폰을 보고 딸이 한 달 사이 5명을 만나 성관계를 한 것을 알고 5명 모두를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고소했다. 이 중 4명은 자백을 해서 징역형을 받았는데 3천만 원 전후의 금액으로 합의를 해서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영호는 합의를 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수사 중 피해자 부친이 먼저 합의를 제안해 왔다. 그렇지만 영호는 성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 끝내 합의 요청을 거부했다. 영호는 결국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기소되었다. 피해자가 본인이 12살이라 말했고, 영호가 화장실에서 강압적으로 성기를 조금 삽입했다고 진술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솔직하게 말하면 무혐의결정이 나올 줄 알았던 피고인과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영호 어머니는 2심 마지막 기일 전에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 기일에 법정에 처음 나갔다.

 

(다음 회에 계속)

정재민 변호사 CHDWO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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