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접견 시간에는 대부분 사건과 관련된 논의가 주를 이루지만, 가끔은 의뢰인과 구치소 생활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갑자기 의뢰인들의 얼굴색이 나빠지면 걱정이 되는데 평소 지병이 있으시거나 날이 더운 여름엔 특히 걱정이 더 크다. 변호사와 의뢰인이라는 계약 관계로 만났지만 사건 논의를 위해 깊은 얘기까지 하다 보면 인간적인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에서 지내시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이 드는지 여쭤보면 공통된 답변이 있다.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다는 것이다. 십몇 년 전에 처음 구치소를 다니기 시작할 때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유죄가 나올 수도 있고, 형량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본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아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장 눈앞에 닥친 본인의 재판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나. 당시 내 짧은 생각은 그랬다.
계절이 변하고 변호사로서 지낸 시간이 쌓여 가면서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한다. 재판은 재판이고, 그와 별개로 안에서는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고 각자가 적응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뢰인들이 같은 방 사람들과 지내기 편하다 하시면 나도 기분이 좋고, 안 맞아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 걱정이 된다. 적어도 물리적 충돌만큼은 반드시 피하라고 말씀드린다. 징벌이라도 받게 되면 진행 중인 재판에 악영향이 있음은 분명하다.
구치소 내의 인간관계와 관련해 의뢰인께 들은 인상 깊은 일화가 있다. 지금은 출소한 지 오래된 분의 이야기다. 걸그룹 ‘카라’의 한승연을 닮아 무척 귀여운 외모를 가진 20대 의뢰인이었는데, 접견을 가니 지난번과 다르게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다. 방에 여섯 사람이 함께 생활 하는데 사회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분이 와서 힘들다고 했다. 생활 습관이 일반 사람들과 달라 전혀 씻지도 않고, 본인 공간에서 각종 비위생적인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화를 내도 꿈쩍도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의뢰인이 방에서 나이가 제일 어려서 잘 때도 그분 옆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어린 나이에 들어와 고생하는 의뢰인인데, 진행 중인 형사 재판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생활 환경까지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것 같아 걱정됐다. 접견을 갈 때마다 나는 그분 흉을 들어주는 게 루틴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변호인 접견을 갔는데 이번에는 의뢰인의 표정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그분’ 때문에 힘들어서 늘 뚱한 표정이었는데, 그날은 건드리면 울 것 같았다. 피해자들이랑 합의도 전부 됐고 검사 구형도 잘 받았는데 뭐가 문제일까. 덩달아 나도 긴장을 했는데 의뢰인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분이 이제 다른 방으로 가시는데 정이 들어서 슬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아니, 그분 때문에 그토록 고생했으면 이제 방이 바뀌니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쾌재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 그때 깨달았다. 싫으나 좋으나 나와 같이 한 공간에서 고생하는 내 옆 사람이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형사 재판’이라는 어두운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스스로를 ‘구치소 변호사’라고 부를 만큼 구치소를 누비며 성장한 변호사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때서야 안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구치소 담장 너머의 재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작은 사회에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하는 일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억울함을 푸는 일, 형량을 줄이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야말로 ‘구치소 변호사’라는 이름을 조금은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