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 판사석에 있다 변호인석에 앉아보니

  • 등록 2025.06.04 17: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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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판사였다가
이제는 변호사가 되어 피고인편 되기로

 

변호사로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법정이다. 나는 20여 건의 소수의 사건만 수임하는 입장인데도 일주일에 보통 두세 번은 간다.

 

세상에 특별한 의미와 권력구조가 부여된 공간이 참 많지만, 법정만큼 좁은 공간에 근대 국가의 권력 구조를 뚜렷하게 반영한 공간도 없다. 판사는 사법부, 검사는 행정부, 피고인과 변호인은 일반 시민의 지위에 있고 이들이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법률은 입법부가 만든 것이다.

 

즉, 국가권력은 삼권을 분립해서 견제와 감시를 하게 하는 한편, 힘의 균형을 위해 미약한 시민 옆에는 변호사도 붙여 놓은 것이다.


변호사가 된 지금은 판사일 때 법정에 들어가는 방식도, 입구도 달라졌다. 내가 판사일 때는 재판 시간보다 이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법관전용문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변호사인 지금은 법정 안으로 들어가서 방청석에 대기하고 있다가 재판장이 내 사건 번호를 부르면 판사 입장에서 왼쪽, 방청석에서 보기에는 오른쪽에 있는 변호인석으로 나가서 선다. 나의 왼쪽 바로 옆자리에는 내 의뢰인이자 피고인이 앉는다.


이런 자리 배치만 보더라도 내 입장이 판사 때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사일 때는 가운데 앉아서 누구의 편도 들면 안되었지만 지금은 피고인석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피고인편을 들기로 작정한 셈이다. 판사의 고충은 어느 한쪽 편으로 쏠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애쓰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변호사의 고충은 편들고 싶은 쟁점에 대해서도, 편들고 싶지 않은 쟁점에 대해서도 무조건 피고인의 편을 들어야 하는 데서 비롯된다.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장이 인정신문을 한 이후 검사가 공소장을 보면서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한다. 검사는 근대 삼권분립제도의 산물이다. 근대 이전의 법정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과거에는 모든 권력이 왕에게 있어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판사와 검사가 구분되지 않았다.

 

삼권분립 제도가 도입되면서 형벌권이 속한 행정부와 재판이 속한 사법부를 구분함에 따라 행정부가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에 형사소송을 제기해야만 되었다.

 

이에 따라 소송의 제기 즉, 기소를 담당할 공무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마침 14세기부터 왕의 명을 받는 왕의 대관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로 설립된 공화국은 이들에게 기소 권한을 주었는데 이것이 검사 제도의 효시다.


나는 원래 검사 지망생이었다. 법과대학을 다니고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내내 나는 나중에 검사가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원래 법대를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강권으로 법대를 이왕 왔으니 법조인 생활은 어느 정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판사 일은 너무 수동적이고 재미가 없고 젊을 때부터 애늙은이처럼 될 것 같았다. 변호사는 판검사를 한 이후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 같고 일의 본질이 누가 돈을 준다고 그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검사 일이 보다 능동적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을 수사하고 처벌해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 보람도, 자부심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법무관 때 국방부 정책실에서 공무원, 군인들과 함께 일하며 피라미드형 상명하복 조직인 검찰보다는 개개인의 판단이 존중되는 판사가 되는 것이 내 성향에 맞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을 바꿔 판사가 된 것이었다.


이후 판사로 일하면서 가끔, 검사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법무부에서 심의관으로 일하면서는 검사들을 상사로, 또는 부하로 해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가보지 않으면 그 길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가본 길과 가지 않은 길은 서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변호인석에 앉아서 과거에 가려 했다가 가지 않은 길(검사)과 이미 갔던 길(판사)를 번갈아 보는 자리(변호인)에 앉아서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정재민 변호사 soon@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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