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청] 무죄를 원한다면, 증인의 진술을 흔들어야 한다

  • 등록 2025.06.16 18: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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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법정에 세워 진술 파고들어야
증인신문에 따라 재판부 판단 달라져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라고 물었다는 괴담.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예전에 맡았던 마약 사건의 증인신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서 나는 증인에게 “검은 봉투였나요, 투명한 봉투였나요?”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했고,
그 끝에 피고인에게 ‘마약 전달책’이라는 혐의가 씌워진 사건에서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다.

 

당시 의뢰인은 마약 전과가 있었고, 또다시 마약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마약을 건넸다고 주장한 제보자는 장소, 시간, 전달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나는 의뢰인과 여러 차례 면담을 거치며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법정에서 무죄를 정면으로 다투기로 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기록에는, 투명한 봉지에 담긴 마약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제보자의 진술을 꼼꼼히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초기 조사에서는 ‘검은 봉투에 마약을 포장해서 전달했다’고 분명히 진술했는데, 이후 진술에서는 ‘투명한 봉투’라고 말을 바꾼 것이었다.

봉투 색깔을 헷갈렸다는 건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직접 마약을 포장하고 전달한 사람이라면, 봉투의 색깔 정도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나는 이 모순이야말로 사건의 진실을 뒤집을 결정적 단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증인신문에 앞서, 인근 마트를 샅샅이 뒤져 증거기록에 나온 투명 봉투와 그 외 다양한 종류의 봉투를 준비해 법정으로 향했다.

 

신문 당일, 나는 증인에게 봉투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제보자인 증인뿐 아니라, 재판부와 검사, 방청객들까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 변호사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그 순간 법정 전체를 감싸던 정적과 긴장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증인이 봉투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몰아붙였다.

 

“왜 처음 조사에서는 검은 봉투라고 진술했습니까?”
증인은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이어서 말했다. “사실은, 제보자가 말한 검은 봉투는 실제로 피고인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지금 증거기록에 있는 투명 봉투 사진은 피고인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후에도 끈질기게 추궁을 이어갔고,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입증이 필수다. 간혹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고소인이나 제보자를 법정에 세우지 않은 채 진술 기록만으로 대응하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무죄를 받아낼 수 없다. 무죄 주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순간은 고소인 또는 제보자를 법정에 세우고, 그들을 상대로 어떻게 증인신문을 펼치느냐다.

 

그 한 장면에서 사건의 흐름이 바뀌고,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진다. 그 순간이야말로 변호사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무대다. 막연한 억울함의 호소만으로는 무죄를 이끌어낼 수 없다. 무죄는 철저한 전략, 그리고 날카로운 증인신문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손건우 기자 soon@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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