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합격 선물이 살인 도구로… IQ 140 수재는 왜 살인범이 되었나

  • 등록 2025.08.15 17: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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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
의대 합격했지만 형편상 포기

폭언‧폭행 일삼던 외삼촌 살해
법원 이례적 형량으로 기회 줘

 

2008년 8월 16일, 경기도 화성의 어느 도로.

 

근처 공장에서 일하던 남성이 길가에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자 인근을 살펴보고 있었다. 냄새의 진원지는 근처 풀숲이었다. 풀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머리와 양팔이 사라진 채 가지런히 절단된 사람의 몸뚱이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경찰의 수사가 즉각 시작되었다.

국과수의 결론은 ‘급성 청산염 중독 사망 후 사체 훼손.’ 시신은 액체질소로 급속 냉동된 뒤 전문가용 도구로 잘린 것으로 추정됐다.

 

발견된 시신의 단면이 마치 정육점에서 잘린 고기처럼 반듯하고 깨끗한 상태였던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신원이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머리와 팔 없는 시신의 신원은 쉽사리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한 장의 그을린 전단지가 답보 상태였던 수사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급하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불쏘시개로 쓰였을 이 전단지에 남아있는 휴대전화 번호가 실마리였다.

그 번호의 주인은 만 19세의 A 군이었다. A 군은 서울의 명문대 1학년 휴학생이자 IQ 140의 영재였다.

 

과학 분야에 재능을 보여 벤처 회사를 세우고 청와대 초청까지 받은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그가 살아가는 현실은 장밋빛과 거리가 멀었다.

 

A 군의 어머니는 가정이 있는 남자 사이에서 A 군을 낳았고, 식당일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워왔다. 그런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본 A 군은 의사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전 해에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의 벽에 부딪혀 장학금이 나오는 다른 학교를 택했다. 어머니가 합격을 기념하며 의료용 메스까지 선물해주었지만 A 군은 비싼 학비로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불행은 모자가 살던 빌라에 불이 난 이후 시작됐다.

모자는 무직인 외삼촌 B 씨 집에 얹혀 살게 됐는데, 무직이었던 B 씨는 술을 자주 마셨고 그때마다 모자에게 폭언, 폭행을 일삼았다.

 

A 군을 ‘불륜의 씨’라고 모욕하는가 하면, 폭행도 잦았다. 그러면서도 B 씨는 A 군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2,500만 원을 빌려 갚지 않고 사채까지 끌어다 쓴 것으로 알려졌다.

 

B 씨의 폭력적인 술주정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B 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동네 사람들의 증언이 나왔다. 담당 형사는 토막 시신이 B 씨일 것이라고 직감하고 A 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올렸다.

 

 

경찰 수사의 압박이 커지자 A 군은 돌연 유서를 남기고 울진으로 도피해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의 설득 끝에 자수를 선택한다.

 

A 군이 경찰에 남긴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소주에 청산염을 타 외삼촌을 살해하고, 어머니가 준 메스로 시신을 절단한 뒤, 머리와 양팔은 인천 소래포구 앞바다에, 몸통은 화성 풀숲에 유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1심은 “반인륜적 중범죄”라며 A 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사생아로 태어나 홀어머니와 어렵게 성장했고, 주변의 멸시를 버티며 힘들게 살아왔다. 특히 외삼촌에게 큰돈을 빌려줬음에도 상습적 폭언과 구타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지른 동기를 주목해야 한다”며 자수와 반성, 피해자 친족의 선처 요청, 교화 가능성을 참작해 15년 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참혹함 속에는 A 군이 태어남과 동시에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비극이 있었다.

분명 그는 잔혹한 살인범이나,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방치된 폭력과 사회적 멸시 속에서 터져 나온 ‘마지막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결국 A 군 사건은 한 개인의 범죄이자 우리 사회가 놓친 경고음이었다.

그의 범행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전도유망한 청년이 살인범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소외된 가족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이 있었다는 냉혹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소망 기자 CCJ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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