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앞 개 돌발행동에 노인 골절…법원 “전액 배상 불가”

  • 등록 2025.09.26 17: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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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처벌돼도 기왕증 있으면 책임 제한
法 “전액 손해배상은 공평의 원칙 반해”

 

“견주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상해 발생해도 보상 못 받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개 두 마리에 놀라 넘어져 다친 피해자가 치료비 전액을 배상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피해자의 기왕증(既往症)이 손해 확대에 영향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견주의 주의의무 위반은 인정했지만, 공평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제한했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 민사3단독(박희근 부장판사)은 80대 여성 A씨가 견주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3455만7119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A씨가 청구한 약 5300만원의 70% 수준이다.

 

기왕증은 피해자가 사고 이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던 질환이나 외상 등 과거 병력을 의미한다. 사건은 지난해 2월 발생했다. A씨는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B씨의 개 두 마리가 갑자기 짖으며 달려들자 놀라 넘어져 12주간 치료가 필요한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A씨는 치료비와 위자료를 포함해 5300만원을 청구했으며, 형사 사건에서는 B씨가 형법상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재판부는 공용 공간에서 다른 주민에게 위협을 주지 않도록 목줄을 짧게 잡는 등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견주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고령이고 골다공증을 앓고 있었던 점을 고려해 손해의 30%는 기왕증으로 인한 확대라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기왕증이 경합해 통상의 경우보다 손해가 확대됐다면 그 전부를 가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공평 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개 소유자가 외출 시 목줄 등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해 사람이 다치면 제97조 제2항 제4호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동물보호법 위반은 인정하지 않고 형법 제266조 과실치상만 적용했다. 춘천지법 2021노124 판결도 산책 중 느슨한 목줄 관리로 어린이가 다친 사건에서 동물보호법 위반은 무죄로, 과실치상은 유죄로 본 바 있다. 이는 형사법규 해석은 엄격해야 하며, 목줄 관리 방식이 곧바로 법정 안전조치 위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기왕증을 이유로 한 책임 제한은 다른 판례에서도 꾸준히 인정돼 왔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 은 요양원에서 넘어져 대퇴골 골절상을 입은 85세 피해자의 심한 골다공증과 과거 골절 전력을 고려해 피고의 책임을 90%로 제한했다. 또한 2024년 의정부지법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PTSD를 겪게 된 데에 기존 우울증과 만성 스트레스가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 피고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이처럼 법원은 가해자의 위법성과는 별개로 피해자의 건강 상태도 손해배상 범위 산정에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손해의 공평한 분담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법원은 피해자의 기왕증이나 건강 상태를 무시하지 않고 손해의 원인을 세밀히 나누어 책임을 제한한다”며 “이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법리적 접근으로, 앞으로도 유사 사건에서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대윤 기자 bigpark@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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