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 갭투자와 동시진행, 리베이트 구조 등을 통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받아낸 뒤 반환이 어려운 상태를 초래한 경우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임대차계약은 통상 계약 종료 시 보증금 반환을 전제로 체결되는 만큼, 반환 능력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숨긴 경우 기망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취지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세사기 유형에서는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구조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 경우 ‘편취의사’가 인정될 수 있다. 특히 보증금이 시세를 초과하거나 선순위 채권과 합산해 반환이 곤란한 상태였다면 거래의 기초가 되는 신뢰를 침해한 것으로 본다.
또 매매계약과 전세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동시 진행’ 방식이나,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기존 보증금을 돌려막는 구조는 범행의 계획성과 지속성을 판단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투자 실패를 넘어 구조적으로 반환 불능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사기죄 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 같은 법리는 이른바 ‘빌라왕’ 사건에서도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단독(김지영 판사)은 사기와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기소된 50대 진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기자본을 거의 투입하지 않은 채 자신과 타인, 법인 명의로 약 700채에 이르는 빌라를 취득했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임대 사업을 확장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은 주택 수와 피해액 규모가 상당하고 다수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때 반환받지 못해 주거 안정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진씨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총 772채의 주택을 매수하며 전세보증금을 매매가격과 같거나 더 높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을 충당하는 ‘무자본 갭투자’ 구조였다.
특히 매매계약과 전세계약을 동시에 체결해 차익을 리베이트 형태로 나누는 ‘동시 진행’ 수법이 활용됐고 이 과정에서 주택 가치보다 보증금이 높은 ‘깡통전세’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진씨는 신규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식으로 유지하다 구조가 붕괴되면서 범행이 드러났다. 그 결과 임차인 227명으로부터 총 426억6000만원의 보증금을 편취한 혐의가 인정됐다.
이와 함께 다른 피해자 5명으로부터도 수억원대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가 추가로 인정됐고 범행 과정에서 월세계약서 등 사문서를 위조해 행사한 점도 모두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과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송파경찰서 수사과 관계자는 “전세 계약 체결 전 등기부등본과 선순위 채권, 보증금 수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시세보다 높은 보증금이나 동시 진행 구조가 확인될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