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행 이후 피해자를 살해한 경우, 두 범죄를 하나로 묶어 처벌하는 ‘강간 등 살인’이 성립하는지 여부는 시간이나 장소의 일치 여부보다 범행의 연속성과 결합 정도에 따라 판단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9조 제1항은 강간 등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피해자를 살해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문은 강간과 살인이 동일한 장소나 시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법원은 이 규정을 적용할 때 두 범행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졌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단순히 시간이나 장소가 달라졌다는 사정만으로 결합범 성립이 곧바로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21년 수원고등법원은 피해자를 일정 시간 지배·감금한 상태에서 성폭력이 이뤄진 뒤 살해에 이른 경우, 시간 간격이 존재하더라도 하나의 범행 과정으로 보고 강간 등 살인죄를 인정했다.
반면 강간이 종료된 뒤 범행 은폐나 신고 차단을 목적으로 별도로 살인이 이뤄졌다면, 강간과 살인을 각각 독립된 범죄로 보아 실체적 경합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형량 구조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도 유사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은 강간 과정에서 폭행이 이어지며 사망에 이른 경우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면 강간 등 살인이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대법원 선고 2003도949). 이는 폭행과 살해가 기능적으로 이어졌는지를 중시한 판단이다.
이 같은 법리는 최근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사건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 장씨는 지난해 7월 경북 구미의 한 모텔에서 피해자를 협박해 성폭행한 뒤, 같은 날 오후 대전 서구의 한 도로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를 모텔에 감금하고 신체를 촬영한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수사 과정에서는 범행 전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관련 내용을 검색한 정황이 확인됐다. 과거 피해자를 폭행한 전력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 같은 점을 근거로 범행의 계획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반면 피고인 측은 강간과 살인이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강간 등 살인이 아닌 강간죄와 살인죄의 경합범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범행이 기능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라 별개의 행위라는 취지다.
결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국 재판의 쟁점은 단순한 시간·장소의 차이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지배 상태가 계속됐는지와 살인이 성폭력 범행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는지 여부에 모아진다. 감금 상태의 지속, 이동 경로, 범행 사이 시간 간격, 살해 동기 등이 판단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이 사건은 두 범행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점보다,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진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결국 재판부는 전체 경위를 놓고 범행의 연결성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향후 증거조사를 통해 두 범행이 하나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분리된 범죄인지 여부를 가려 적용 법조와 형량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