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핵심 역할’ 軍 방첩사, 49년 만에 해체

  • 등록 2026.01.08 14: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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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기무사·안보사…간판갈이 끝에 결국 폐지
인사첩보 전면 폐지…수사·정보·보안 기능은 분산

 

방첩·보안·수사 권한을 폭넓게 행사해 온 국군방첩사령부가 결국 해체 수순을 밟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단일 기관에 집중된 권한 구조를 분산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군 권력기관이 기능 축소와 분산 개편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8일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는 방첩사를 해체하고 기능을 나누는 방안을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세부 조정을 거쳐 연내 해체와 기능 이관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안보·수사 기능은 군사경찰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넘겨 정보와 수사 권한을 분리한다. 방첩정보 기능은 국방부 직할기관인 국방안보정보원을 새로 만들어 방첩·방산·대테러 사이버보안 업무를 맡긴다.

 

보안감사 기능 역시 국방부 직할로 중앙보안감사단을 신설해 담당한다. 다만 군단급 이하 부대에 대한 감사 권한은 각 군으로 이관하고, 장성급 인사검증은 기초자료 수집 범위로 제한한다.

 

특히 인사첩보와 세평수집, 동향조사 등 논란이 됐던 기능은 다른 기관으로 옮기지 않고 전면 폐지된다. 국방안보정보원장은 문민통제 강화를 고려해 군무원 등 민간 인력으로 임명하고 조직 규모도 기존 방첩사보다 축소한다. 국회 보고 의무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준법감찰위원회 설치도 외부 통제 장치로 포함됐다.

 

이번 결정으로 1977년 육해공군 방첩부대를 통합해 출범한 국군보안사령부의 계보는 49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보안사는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에게 직보하며 군 내부뿐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국내 정보를 장악했고, 12·12 군사반란과 정치 개입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꿨으나 기능 축소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도 재개됐다.

 

기무사는 이후에도 민간인 사찰과 정치 관여 논란에 휩싸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동향을 조직적으로 파악한 사실이 드러났고, 20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각을 전제로 한 계엄 실행계획 문건 작성 사실이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기무사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하며 인원 감축과 정치 개입 금지 조항을 도입했다. 그러나 업무 범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방첩 역량 강화를 명분으로 국군방첩사령부로 재출범하면서 조직과 기능이 다시 확대됐다.

 

결정적 계기는 2024년 12·3 비상계엄이었다. 방첩사는 당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하고 정치인 체포 지시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정치인 체포 지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주요 참모들도 징계 절차에 회부됐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방첩사 해체 방침을 명확히 했다. 자문위 역시 간판 교체나 인적 쇄신이 아닌 기능 분산과 폐지를 통한 구조 개편을 권고했다.

 

한편 국방부는 관련 조직 신설과 권한 조정 등 후속 절차를 거쳐 방첩사 해체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설아 기자 seolla@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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