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공탁’ 막았더니 ‘출금먹튀’ 늘어… 공탁법 개정안도 한계

  • 등록 2025.06.09 16: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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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동의서 없으면 회수 불가
제도 허점 노린 먹튀출금 속출
“현행법상 공탁자 구제 절차 없어”

“항소심에서 피해자에게 5,000만 원을 공탁했는데,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해 항소가 기각됐습니다. 지금은 피해자와 연락도 닿지 않는 상황입니다. 부모님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공탁금을 마련해 주셨는데, 죄는 제가 지었는데 부모님이라도 사실 수 있도록 공탁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수령 거부한 사실이 명시돼 있지만, 회수 동의서가 없습니다.”

 

피해자가 재판 중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 뒤 재판 종료 후 ‘몰래 출금’을 감행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공탁자의 권리가 사실상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이 최근 “피공탁자의 회수 동의서 제출이 없으면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현행 공탁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더시사법률>이 공탁금 회수 관련 문제에 대해 대법원에 질의한 결과 대법원 공보관실은 “재판부에서 피해자가 수령 거부 의사를 밝혔더라도, 공탁소에 서면으로 통고하지 않으면 공탁법상 ‘회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는 피해자의 거부 의사가 판결문에 명시돼 있더라도 공탁소 행정 절차와는 별개로 처리된다는 뜻이다.


형사공탁제도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가해자에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일부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금을 걸고 이를 형량 감경 요소로 활용하는 이른바 ‘기습공탁’을 진행해 왔다. 또한 판결 이후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은 틈을 타 이를 회수하는 ‘먹튀공탁’ 사례도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월 피고인이 공탁금을 낸 경우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문제는 피해자가 재판 중 수령 거부를 밝혀 놓고 선고 이후 연락을 끊은 채 공탁금을 출금하는 경우나 피해자가 명확히 공탁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공탁자가 이를 회수할 법적 대응 수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행 공탁제도는 ‘피공탁자의 수령 거부 통고’를 공탁소에 서면으로 제출해야만 공탁자의 회수 요건을 인정한다.

 

하지만 공탁금을 거부한 피해자가 선고 이후 공탁자의 회수 동의서를 작성해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탁자가 재판 중 피해자와 연락이 단절돼 회수 동의서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대법원은 “현행 명문 규정에 더해 공탁자의 회수 절차나 구제수단 마련은 입법 사안”이라며, 현행 제도 내에서는 별도의 대응책이 없음을 시인했다.

 

이어 “공탁자(일방 당사자) 입장에서 구제 수단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양형 반영 기준도 재판부마다 달라


공탁금 수령 거부 시 양형 반영 여부도 재판부마다 기준이 다르다.

 

대구지법 서부지원(2025.2.6. 선고)에서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므로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반면, 창원지법 마산지원의 특수상해 사건(2025고단1045)에서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으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참작해 양형에 고려한다”고 판시하는 등 양형 적용 기준이 상이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양형기준에서 감경 요소로 고려할 수 있는 공탁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피고인의 일방적 공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은 최근 양형위원회 결정을 통해 “양형기준상 피해 회복 방법의 하나로 기재된 ‘(공탁 포함)’이라는 문구가 마치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 인자가 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반영해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의사, 피고인의 공탁금 회수청구권 포기의사 등을 신중하게 심리해 실질적 피해 회복에 해당할 때만 양형에 반영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제는 피해자의 수령 거부 의사가 재판에서 확인되더라도 공탁소에 자동 통보되지 않아 회수 요건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공탁법 개정안이 발의돼 공탁관이 피해자의 공탁금 출금을 재판부에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아직 시행되지 않고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개정안 역시 재판 중 수령 거부 후 선고 전 출금 시 자동 통지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어 형이 확정된 뒤 피해자가 출금하는 경우에는 대응 방안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재판 단계에서 엄벌탄원서 제출 및 실형이 확인된 뒤 추후 출금하는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형민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는 물론 중요하지만, 공탁자의 선의도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어느 법이든 한쪽에 치우친 구조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기습공탁 사례에 치우친 현행 법은 균형을 잃을 우려가 있다”며 “재판부에서 피해자의 수령 거부 의사가 공식 확인된 경우 이를 공탁소에 자동 통보해 회수 요건으로 간주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양형위원회가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 회복 여부를 더욱 엄격히 심리하는 만큼, 앞으로는 단순한 공탁으로는 감경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결국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피해자와의 실질적 합의를 얼마나 잘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설아 기자 seolla@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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