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 논의 틈타 “배째라”…수사 피해도 사기죄 처벌 가능

  • 등록 2026.02.03 16: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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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 대체입법 지연 속 일부 피의자 수사거부 사례
전문가 “기망 입증되면 사기·횡령으로 충분히 처벌”

 

배임죄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자 일부 피의자들이 이를 방패 삼아 수사를 거부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수사 현장에서는 배임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 “조만간 없어질 죄인데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며 출석을 미루거나 사실상 조사에 불응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 또는 대체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입법 논의 자체를 수사 회피 논리로 활용하는 양상이다.

 

실제 국회는 지난해 상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배임죄 폐지 또는 전면 개편을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최근 코스피5000특별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배임죄 폐지안의 신속한 처리를 언급했다. 다만 구체적인 대체 입법안이나 시행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배임죄는 그동안 ‘기업 경영을 옥죄는 대표적 경제형벌’로 지적돼 왔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배임 사건은 매년 수천 건씩 발생하고 있으며 재계는 혁신적 투자 실패까지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되는 현행 구조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배임죄가 적용되는 사건 상당수는 기업 경영 판단과 직접 관련 없는 이른바 ‘생활형 재산범죄’에 해당한다.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납품대금을 부풀리는 사례뿐 아니라, 부동산 이중매매, 곗돈 잠적, 가족 명의로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 등 일상 영역의 재산범죄에도 배임죄가 폭넓게 적용돼 왔다.

 

이 때문에 배임죄가 국민의 재산 피해를 형사적으로 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배임죄 폐지 논의와 별개로, 기망이나 보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기죄나 횡령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이는 조건부로만 성립한다. 사기죄는 기망행위와 피해자의 착오, 처분행위, 재산상 이익 취득이 입증돼야 성립하며, 처음부터 상대방을 속여 금전을 편취할 의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횡령이나 업무상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가 전제된다.

 

이 때문에 모든 배임 사건이 사기나 횡령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배임죄는 기망도, 보관관계도 없지만 ‘불충실한 사무처리로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키는 영역’을 포괄해 왔다는 점에서, 배임죄 존폐 논쟁의 실질적 쟁점은 바로 이 공백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에 있다.

 

최근 판례 흐름을 두고 배임 인정 범위가 전반적으로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이를 일률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담보 제공 의무나 담보가치 유지 의무 등 전형적인 채권·채무형 거래 관계에서는 이를 채무자 자신의 사무로 보고 배임 성립을 부정하는 방향을 분명히 해왔다.

 

반면 부동산 이중매매처럼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 단계에 들어간 경우에는 매도인의 등기협력의무를 ‘타인의 사무’로 보아 배임 성립을 인정하는 전원합의체 판결도 유지되고 있다. 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을 부정한 반면, 곗돈 사건에서는 계주의 배임 성립을 인정한 판례도 존재한다.

 

형량 비교 역시 정확한 죄명 구분이 전제돼야 한다. 일반 사기죄와 컴퓨터등사용사기, 보험사기 등은 법정형이 다르며, 사기·횡령·배임 모두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가중처벌된다.

 

배임죄가 폐지되더라도 기망을 통해 금전을 편취한 행위나 위탁받은 재산을 임의로 소비한 경우까지 처벌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배임죄 폐지 논의가 곧 면죄부로 오인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법무법인 민 박세희 변호사는 “배임죄를 정비하거나 폐지하더라도 고의로 타인의 재산을 침해한 행위까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며 “사기나 횡령 등 기존 재산범죄 규정만으로도 형사적 대응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계는 배임죄를 전면 폐지하거나 독일·일본처럼 고의적 위법행위만 처벌하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배임죄가 사라질 경우 생활형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적 보호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한다.

 

결국 쟁점은 배임죄의 존폐 자체보다, 고의적 재산 침해 행위를 어떻게 정교하게 규율할 것인가에 있다.

 

배임죄의 향후 처리와 무관하게 “법이 바뀐다”며 버티는 전략이 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수사기관과 법조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핵심은 죄명이 아니라, 타인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했는지 또는 타인의 재산을 위탁받아 임의로 처분했는지 여부라는 점에서 피의자들의 ‘배째라’식 대응이 실질적인 방패가 되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지연 기자 duswlansl@tsis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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