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에서 유인책과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한 가담자들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받았다. 범행을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범죄 구조를 인식한 채 역할을 수행했다면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방법원 형사11부(이영철 부장판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2024년 10월부터 약 6개월간 보이스피싱 조직의 유인책으로 활동하며 29명으로부터 47억2000만원을 가로채는 데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금융감독원 직원이나 검찰청 검사를 사칭해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으니 지정 계좌로 이체하라”고 속이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과정에서 A씨는 같은 해 3월 중국으로 출국해 조직원을 만난 뒤 유인책 역할을 제안받고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계획하거나 주도하는 지위에 있던 것은 아니다”라며 “기소된 피해 금액 중 피고인의 직접 행위가 개입된 부분이 일부에 그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최근 현금 수거책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여현주)는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50대 B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B씨는 2024년 11월 29일부터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피해자 6명으로부터 건네받은 현금 6억5000여만원을 조직의 2차 수거책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들은 “본인 명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전화에 속아 현금을 인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서울과 경기 시흥, 경남 밀양 등지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현금을 수거한 뒤 인천 부평과 경기 부천에서 이를 2차 수거책에게 전달했다.
그는 범행 한 달 전 구직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인물로부터 “지시하는 사람을 만나 서류를 전달하면 건당 8~16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현금을 받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이 정상적인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며 “보이스피싱 피해금 수거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15조의2 제1항은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저지른 자를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실형 선고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건수는 881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19건과 비교하면 약 46배 증가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은 2021년 7017건, 2022년 8930건, 2023년 1만 1314건, 2024년 9519건, 지난해 1만 3323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발생 건수는 2021년 대비 89.8% 증가했다.
반면 대출 사기형은 2021년 2만 3965건에서 지난해 1만 37건으로 58.1% 감소했다. 저금리 대환대출을 빌미로 한 유형은 줄어든 대신 수사·금융기관을 사칭해 명의도용이나 개인정보 유출을 언급하는 기관 사칭형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과거에는 보이스피싱 중간책을 총책 등에게 이용당한 일종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있었고, 재판부도 ‘단순 심부름인 줄 알았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형을 감경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현금 수거·전달 등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죄 구조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되면 이러한 주장 역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사정으로 평가해 엄단하는 추세”라며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현금 전달 업무 제안을 받는 경우 범죄 연루 가능성을 먼저 의심해야 하고, 가담 시 실형 선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