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반려동물용 의료 소모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이를 악용한 판매 사기가 잇따라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 업체 정보를 도용하거나 정상 거래를 가장한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장 혼란도 커지는 양상이다.
22일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일부 동물병원을 상대로 존재하지 않는 주사기 물량을 판매하겠다고 속여 대금을 가로채는 사기 의심 사례가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울산, 광주, 인천 등 여러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으며 일부 병원은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다.
사기범들은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주사기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거나 “대량 주문 시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며 구매를 유도한 뒤 선입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입금이 확인되면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전형적인 ‘선입금 먹튀’ 방식이다.
최근에는 범행 수법도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실제 의료기기 업체 명칭을 도용하거나 영업사원을 사칭해 접근하는 사례가 확인됐으며, 사업자등록번호와 주소, 연락처, 담당자 이름 등이 포함된 단가표를 제시해 신뢰를 높이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일부 사례에서는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는 안내와 함께 화물기사 연락처까지 제공하는 등 정상 거래처럼 꾸민 뒤 수백만원대 금액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피해를 입은 한 동물병원 원장은 “업체 정보가 실제와 동일해 의심하기 어려웠고, 가격도 시장 상황과 크게 차이가 없어 정상 거래로 판단했다”며 “입금 이후 연락이 끊기면서 뒤늦게 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통한 일반 소비자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커뮤니티에는 “주사기와 나비침을 결제했지만 배송 완료로 표시된 뒤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다”, “배송 예정 상태만 유지되고 판매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등의 피해 호소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기 확산의 배경에는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 따른 원자재 수급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의료용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흔들리면서 주사기 등 소모품 유통에도 차질이 발생했고, 이러한 시장 불안을 노린 범죄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의사회는 지난 21일 전국 회원 병원에 ‘주사기 판매 사기 사례 주의 안내’ 긴급 공문을 발송하고 예방 수칙을 안내했다.
수의사회는 “기존 거래처가 아닌 업체로부터 판매 제의를 받을 경우 반드시 대표번호로 업체 실재 여부와 담당자 재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취급 품목과 영업 이력 등도 교차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선입금을 요구하는 거래는 사기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정상적인 유통 구조와 비교해 이례적인 조건이 제시될 경우 거래를 중단하고, 의심 사례는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실제 존재하는 업체 명칭이나 사업자 정보를 도용해 거래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 외형만으로 정상 거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선입금을 요구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빠른 납품을 약속하는 경우에는 사기 가능성을 우선 의심하고 거래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행위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하며 피해 금액과 범행 수법에 따라 가중 처벌될 수 있다”며 “피해가 발생한 경우 거래 내역, 통화 기록, 계좌 정보 등 관련 증거를 확보해 신속히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추가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