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을 맡다 보면 피고인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 있다. 물론 이런 착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정 같은 낯설고 두려운 공간에 처음 놓이면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인 반응에서 나온 착각들이 때로는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들어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 인지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첫 번째 착각은 “무조건 부인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피고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때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리한 정황만을 근거로 “이건 무조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고, 때로는 억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증거 기록을 열어보면, 피고인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거나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컨대, 본인은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당시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문자 메시지, SNS 메시지, 이메일, 혹은 통화 녹음 파일 등으로 객관적인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계주로서 ‘계불입금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나 재판을 받게 된 분들이 자주 하시는 질문들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최근 전통적인 형태의 계모임은 많이 없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중장년층 어머님들 사이에서는 친목도모 형태로 계모임을 유지하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계모임 기간이 길어지고 인원이 많아지면서 계금이 커질수록 이에 따른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계원들로부터 계불입금을 받아 이를 직접 관리하시면서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돌려막기를 하다가 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계원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거나 고소를 당할 처지에 있게 되는데요, 이에 막막함이나 걱정을 느끼고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대응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저는 10여년 전부터 동네 지인들을 상대로 1구좌당 100만원, 계원 30명의 계를 운영하여 왔는데,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다가 계불입금이 쌓여 목돈이 생기자 이를 개인적으로 소요하게 되었고, 이후 곗돈을 지급할 금원이 부족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곗돈을 탈 순번이 된 계원에게 해당 곗돈을 빌려주면 월 2부 이자를 주겠다고 하여 이를 다
형사 절차의 첫 단계인 수사 단계에서는 경찰, 검찰이 전면에 나서 피의자의 혐의를 조사한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피의자는 변호인을 선임하여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실무에서는 말처럼 쉽게 보장받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구속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지면 피의자가 무엇 하나 제대로 따질 틈도 없이 빠르게 절차가 진행되기에 방어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는 통보 없이 갑자기 검사실로 불려 가게 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이렇듯 수사 단계에서는 현실적으로 피의자가 수사기관과 대등한 수준에서 대응하기 어려운데, 그렇기에 공정한 형사 절차가 되기 위해서는 재판 단계만큼 더더욱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우선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형사사법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피고인과 검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주장과 입증을 한다는 ‘무기대등(武器對等)’의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제도를 발전시켜 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재판’이야말로, 공정한 형사 절차의 핵심인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
1심에서 무죄 주장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항소심에서 다시 무죄 주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증거란, 꼭 기존의 증거 기록에 없는 바깥에서 뭔가를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존 증거 기록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1심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 기록에서도 모두가 놓쳤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1심에 출석한 증인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경우, 항소심에서 다시 불러 다투어서 원심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증거’가 되고 무죄를 받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과거 변론했던 사건 중에도 1심 증거 기록 속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판결을 뒤집은 사례가 있었다. 그 사건 의뢰인은 여러 개의 계(契)를 운영하면서 고소인으로부터 계불입금을 받았는데, 이를 반환하지 못해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운영된 계도 있었기에, 해당 계불입금은 무죄를 다투어야 했다. 문제는 양측 사이에 금전 거래가 너무 복잡하여 무죄를 주장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재래식 변소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누군가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예전에 맡았던 마약 사건의 증인신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증인에게 “검은 봉투였나요, 투명한 봉투였나요?”를 집요하게 질문하여 결국 마약 전달책으로 지목된 피고인의 무죄를 받아냈다. 우리 의뢰인은 마약 전과가 있었고, 이번에 또 마약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마약을 전달했다는 제보자는 장소, 시간,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나는 의뢰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담하면서,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무죄를 다퉈보기로 했다. 증거기록에는 제보자가 의뢰인에게 전달했다는 마약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투명한 봉지에 마약이 담긴 사진. 그런데 제보자의 진술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처음 조사에서는 분명 ‘검은 봉투에 포장해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명한 봉투’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봉투 색깔을 헷갈렸다는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나 재판을 받게 된 분들이 자주 하시는 질문들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은 크게 현금 수거책, 전화상담원, 장집, 자금세탁책 등으로 역할이 구분되지만, 결국 ‘사기죄’ 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위반죄’라는 죄명 아래 무겁게 처벌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렇기에 질문도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보이스피싱 사건은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든 결국 합의만 잘하면 된다던데요?”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세부적인 전략이 결과를 좌우하고, 작은 디테일을 놓친 탓에 뒤늦게 후회하는 분들을 저희는 많이 봐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막막함이나 걱정을 느끼고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저는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경찰 조사만 받은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연락이 없습니다. 구치소에 있어서 알아볼 방법이 없는데, 그러면 저는 따로 또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인가요? A. 현금 수거책으로 엮인 사건에서
최근 진행한 상담 중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상담자는 항소심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 대다수와 합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누구나 집행유예까진 몰라도 적어도 감형은 될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고 한다. “범행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합의를 했어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며 항소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상고를 해서라도 결과를 바꿀 수 없겠냐고 했는데,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기대하시는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변호인 접견실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피해자와 합의를 했음에도, 단 1일의 감형도 허락되지 않은 이 판결 앞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정의로운 판결인가?” 요즘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엄벌주의’가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자리 잡고 있다. 범죄 뉴스가 보도되기만 하면 댓들 창에는 빠짐없이 “무조건 세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언론도 분위기를 부추긴다. ‘합의로 형량을 줄이는 시대는 지났다’, ‘공탁으로 감형받는건 안 된다’는 식의 논조가 공공연히 소비된다. 이러한 기류는 이제, 실제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탁’만 했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수사 단계에 있는 피의자분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답변 위주로 구성해보려 합니다. 구치소에 계신 분들 중에는 사건이 이미 재판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지만, 이제 막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경찰조사를 마치고 검찰 조사를 앞둔 분들, 또는 아직 받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내가 왜 구속된 건가요?”, “조사받을 때 진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처럼 막막한 질문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영장판사는 알려주지 않는 ‘진짜 이유’와 ‘팁(TIP)’에 대해 이번 글에서 차근차근 설명드리겠습니다. 수사 절차에 대한 불안과 궁금함을 느끼시는 분들께, 이 글이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저는 얼마 전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로 오게 되었습니다.구속영장이 청구된 형사사건에서, 영장이 기각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A.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은 당연히 ‘구속 여부’에 대한 것입니다.이와 관련해 검찰청에서는 「구속영장 청구 및 발부, 기각현황」을 정리하여 공개하고 있는데요. 실제 수치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작년 2024년 한 해 통계를 보면, 총 21,469건에 대해 구속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