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방법원이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이를 적발한 보호관찰관을 협박·폭행한 60대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김성래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협박·보복폭행)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63)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월 5일 오전 8시 5분께 강원 춘천에서 보호관찰관 B씨(52)가 자신의 음주운전 정황을 포착해 112에 신고하자 격분해 “이렇게 하면 못 사셔”, “내일 죽여버릴 거야”, “오래 살고 싶으면 똑바로 해”라고 말하며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께에는 춘천보호관찰소 사무실을 찾아가 관찰과장 C씨와 B씨에게 “왜 경찰에 신고했느냐”고 항의하며 탁자를 내려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청사 밖으로 나가던 중에는 B씨의 오른쪽 어깨를 손으로 밀쳐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흘 뒤에도 범행은 이어졌다. A씨는 새벽 시간대 전자장치 부착 대상자 귀가 지도를 하던 보호관찰소 소속 공무원 D씨에게 욕설을 퍼붓고 얼굴을 때리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도 추가됐다. 경 A씨는 법정에서 B씨를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주변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특히 A씨는 2012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2023년 12월 말 출소했다. 당시 법원은 15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한 바 있다. 그럼에도 누범 기간 중 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죄책이 가볍지 않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으며, 피해 회복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종 범죄의 누범 기간 중 자숙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전자장치 부착 대상자의 관리·감독 과정에서 보호관찰관을 상대로 한 보복 범죄가 발생할 경우, 단순한 공무집행방해를 넘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가 적용될 수 있다”며 “사법부의 엄중한 처벌 기조가 다시 한번 확인된 사례”라고 말했다.
교도관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된 40대 수형자가 항소심에서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김성래 부장판사)는 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48)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24년 10월 6일 자신이 수용 중이던 춘천교도소의 담당 교도관 B씨에게 붉은색 필기구로 작성한 편지를 보내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할 듯한 내용을 전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편지에는 “어디 9급 따위가. 유튜브에 내 이름 쳐봐”, “나대더니 불명예스러울 거다. 너 몇 살이니?”, “까불어봐.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으니까, 빌던가”라는 문구가 담겼다. A씨는 자신의 운동 경력과 군 복무 이력 등이 적힌 서류도 함께 첨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1심에서 “해당 편지는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지 않아 협박으로 볼 수 없고, 설령 부적절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협박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표현 내용과 전후 맥락, 첨부 서류 등을 종합하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의 고지로 평가할 수 있다”며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는 법정에서 증언을 마친 피해자 B씨에게 욕설을 하는 등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 이후 교도관으로 근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1심은 “범행 이후의 태도 또한 불량하다”며 약식명령으로 정해진 벌금형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심에서도 “협박의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을 반복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이를 기각했다.
집행유예 기간 중 경찰관을 위협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A씨에게 법원이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형사단독 재판부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A씨는 2025년 10월 16일 오전 7시께 김해시 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던 중 “같이 있던 사람이 문자로 욕을 한다”는 취지로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사건 경위를 확인하려 하자 이씨는 진술을 거부했고, 경찰관이 귀소 의사를 밝히자 욕설을 하며 손을 들어 때릴 듯이 달려드는 등 위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동종 범행 전력이 있는 점은 불리한 정상에 해당한다”며 “특히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해 공권력을 침해한 행위는 국가의 법질서를 해치는 것으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경찰관이 처벌을 원하고 있는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폭행의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며 “피해 경찰관을 상대로 100만 원을 형사공탁한 사정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과거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이종 범죄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사건에서 ‘구속’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국가형벌권 실현을 위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강력한 처분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원칙이 아니라 예외로 두고 있으며, 구속이 타당한지 여부를 다시 판단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바로 구속적부심사와 보석이다. 이 두 제도는 모두 구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청구(신청) 시기와 판단 기준은 분명히 다르며, 무분별하게 신청하여 기대만 키웠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법원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어떤 사정이 있을 때 기존 판단을 바꾸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구속적부심사는 법원이 구속의 적법 여부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절차다. 최초 구속결정이 적법한지 여부에 더하여 구속 이후 새로 발생한 사유까지 포함하여 구속을 계속할 필요성이 여전히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속적부심사는 구속된 피의자, 변호인,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나 가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가 청구할 수 있다. 공소제기 전까지 청구 가능하며, 수사 방해 목적 등이 없는 경우 청구서 접수 시부터 48시간 이내에 심문이 진행된다. 구속적부심사에서 법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같은 제복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각종 복지와 예우 제도에서 교도관은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제복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혜택과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호국원 안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마저도 같은 제복공무원인 교도관들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외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교도관 개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 교도관 역시 호국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안장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교도관 전체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직업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되찾기 위함이다. 교도관의 업무는 단순히 수용자를 관리·감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교도관들은 어떤 죄명으로 수용되었든 수용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운동시간과 종교집회 참가 등을 철저히
잘못된 한 번의 판단은 이후의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특히 전력이 있는 행위가 또다시 반복되었을 경우 이후의 선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술기운이 남아있던 저녁, 경찰의 정차 신호 앞에서 그 기로에 서게 됐다. 그에게는 이미 두 차례 음주 운전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린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공포감에 중대한 판단 착오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를 생각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를 통해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하나의 실수가 연쇄적인 오판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더 큰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형사사건을 다루다 보면 이런 케이스를 흔히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었겠지만, 이것이 수사기록상에 남게 되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의뢰인처럼 반복 전과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의 시각은 냉정하다. 음주 운전에 무면허 운전, 여기에 사문서위조까지 더해져 의
저는 일주일 중 한 번 있는 전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허락된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힘든 생활도 잊어버린 채 짧고 소중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아들 기죽지 말라며 학부모회 임원까지 맡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늘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덕분에 원하는 과에 입학한 것은 물론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온 후, 아버지와의 첫 접견 때가 떠오릅니다. 며칠을 못 주무셨는지 충혈되어 있던 눈, 말씀하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손, 어느새 흰서리가 가득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죄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아프지 말고 힘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편의점 일을 하시며 하루 19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저도
요즘따라 더욱 보고 싶네요. 이제 나를 기다릴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당신은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요. 솔직히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어요. 나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걸림돌이라면 당신을 위해 비켜주는 게 도리겠죠. 이곳에서 몇 번의 계절을 맞이했지만 제 마음의 계절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겨울날에 멈춰있어요. 사회에 나오면 연락하라며, 친한 오빠로서 밥 한 끼 사주겠다는 당신의 그 말이 저를 너무 슬프게 만들어요. 매일 밤 당신의 편지를 꺼내 보며 우는 저이지만, 이젠 정말 당신을 제 마음속에서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지인과 잘 되어가는 중이라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어요.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이곳에 와서 가장 소중한, 내 전부였던 당신을 떠나보내게 되었네요. 이 또한 제 업보겠죠. 행복했던 저와 그때의 다정했던 당신은 추억 속에 담아둘게요. 그러니 당신은 부디 행복하세요. 2026년 겨울, 배배가
찬 바람이 얼굴에 스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분명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가끔은 왜 사는지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게 됩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어머님마저 먼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교정직원에게 전해 들을 당시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 그분의 기일과 어머님이 가신 날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은 살아오면서 처음 겪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고, 한동안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노하셔서 제게 외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죽는 그날까지!” 그날 이후로 저는 그 분노 가득한 음성을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이제 저는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그 숨이 끊기는 듯한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365분의 1의 확률입니다. 저는 이제 죄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죄의 무서움을
어머니, 이곳에 와서 벌써 네 번째 맞는 겨울입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지나고 보니 언제 이렇게나 되었나 싶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십 중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제 모습을 보니 어머니께 죄송스럽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 이제 9개월가량 남은 수용생활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습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항상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범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 그동안 속만 썩이고 고생시켜 드린 어머니께 열심히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