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현지 체류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와 귀국 지원을 위해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귀국을 희망하는 국민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철수 지원을 계속하겠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7일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귀국을 희망하는 국민이 모두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가 가진 외교 네트워크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현지 공관과 긴밀히 협력해 필요한 지원을 즉각 제공하겠다”말했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이후 지역 정세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는 등 이동 여건도 크게 제한된 상태다. 조 장관은 이러한 상황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며 “군용기와 전세기 투입, 육로 이동 등 다양한 방식의 철수 방안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매일 해외 공관과 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현지 정세를 공유하고 필요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도 중동 인접 국가로 파견해 현지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대응팀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배치돼 우리 국민의 안전 확인과 대피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란과 이스라엘, 바레인,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여러 국가에서 약 150명의 우리 국민이 주변 국가로 이동해 임시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아랍에미리트에서 항공편 중단으로 귀국하지 못했던 국민 가운데 372명이 민간 항공편 운항 재개 이후 국내로 돌아왔으며 추가 항공편도 인천 도착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특히 이동이 어려운 취약 계층의 귀국을 우선 지원할 방침이다. 외교부는 고령자와 임산부, 영유아 동반 가족 등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국민을 먼저 귀국시키기 위해 약 290석 규모의 에티하드항공 전세기를 확보해 운항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간 항공편 운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안전한 귀국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조 장관은 “현지 공관 직원과 교민들이 다시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정부의 대응은 계속될 것”이라며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재차 밝혔다.
반려동물 진료기록을 보호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현행 수의사법에는 진료기록 작성 의무만 규정돼 있을 뿐 보호자의 열람 권리를 명확히 두지 않아 분쟁이 발생해도 기록 확인이 어렵다는 문제 제기다. 7일 동물권 변호사단체 ‘영원’에 따르면 단체는 최근 헌법재판소에 수의사법 제1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현행 법률이 보호자의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교부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헌법상 기본권 보호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 수의사법 제13조 제1항은 수의사가 진료부(진료기록)를 작성하고 보존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진료 내용과 처치 경과 등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한 규정이다. 그러나 진료계약의 당사자인 반려동물 보호자가 해당 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단체 측은 이러한 구조가 사실상 ‘불완전한 입법’이라고 주장한다. 진료기록을 작성하도록 하면서도 정작 보호자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법적 통로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도 진료기록 작성·보존 의무의 취지를 “계속적인 치료에 활용하고 진료 관련 종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사후적으로 진료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사람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 본인이 자신의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 교부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이 때문에 동물 의료 분야에서도 최소한의 기록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실제로 보호자가 진료기록 제공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일부 동물병원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나 내부 기록이라는 이유로 기록 제공을 거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단체 측은 이러한 제도 공백이 진료 분쟁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보호자가 진료 과정이나 처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면 과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고 의료사고 발생 시 대응도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체 관계자는 “이번 심판을 통해 반려동물 진료기록에 대한 보호자의 열람 및 사본 교부 권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해 동물 진료 영역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진료기록 문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개인 청구인이 국회의 입법 부작위를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며, 해당 사건은 현재 헌재 전원재판부에서 심리 중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수의사법에 보호자의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교부 청구권과 동물병원의 교부 의무가 명문화될 경우 동물 의료 분야의 분쟁 구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료기록 접근권이 제도화되면 과잉진료나 설명 부족 등 진료 분쟁에서 보호자의 증거 접근성이 개선될 수 있고, 동물병원의 진료 과정에 대한 투명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곧바로 법률이 개정되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규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입법 내용은 국회의 입법 절차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
출소 이후의 삶은 교정시설 밖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형기를 마쳤다고 곧바로 안정적인 일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거와 일자리, 사회 적응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 복귀 과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이 같은 공백을 줄이기 위해 출소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기관들이 운영된다. 울산 태화강역 인근에 위치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울산지부도 그중 하나다. 이곳은 일정 기간 숙식과 생활을 지원하는 시설과 함께 기술교육, 취업 연계,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상자의 사회 적응을 돕는다. 특히 울산기술교육원에서는 용접·특수용접 및 배관 교육이 이뤄진다. 산업도시 울산의 구조를 고려해 현장 투입이 가능한 기술 습득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생들은 작업장에서 반복 실습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이후 취업 연계를 통해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한다. 관리와 지원으로 재범을 낮추다 한국법무보호복지 공단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왜 범죄자를 돕느냐”는 것이다. 남상협 울산지부장은 “가해자는 한 명일 수 있지만 피해자는 수십 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며 “대상자를 사회 안에서 관리하고 적응을 돕는 것이 추가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되는 극단적 사례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음주운전이나 생계형 범죄로 보호 대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지역사회의 우려도 현실이다. 신상정보 고지 대상자가 입소하면 주소지를 이곳으로 전입해야 하고, 관련 통지가 인근 거주자에게 전달된다. 이에 따라 문의와 민원이 뒤따르기도 한다. 남 지부장은 외출·외박 관리와 보호관찰 연계를 통해 통제가 이뤄지는 만큼 대상자를 관리 체계 안에 두는 편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울산지부의 강점으로는 지역 대기업의 참여가 꼽힌다. HD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OIL, 풍산, SK에너지, 한국동서발전 등 울산 산업단지 주요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남 지부장은 “울산은 대기업 기반 산업도시인 만큼 지원 체계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며 “후원과 프로그램 협력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설의 입지도 또 다른 강점이다. 울산지부는 태화강역 인근 역세권에 위치해 대중교통 접근성이 높고, 생활 인프라도 갖춰져 있어 사회 적응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행복이음센터, 맞춤형 정착 지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운영하는 ‘행복이음센터’는 조건부 가석방 보호대상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거주형 시설이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지만 가족과 연락이 끊기거나 환영받지 못해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같은 주거 공백은 생계 불안과 맞물려 재범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행복이음센터는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숙식 지원과 함께 직업훈련, 심리 상담, 자립생활 교육을 제공한다. 보호수용 조건부 가석방자를 위한 거주형 사회복귀 지원시설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법무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송호준 계장은 “입소 과정을 초기와 중기, 후기 단계로 나눠 맞춤형으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운영은 3단계 구조로 이뤄진다. 초기 단계에서는 면담을 통해 생활 환경과 성향을 파악하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숙식·심리·취업 담당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 방향을 마련한다. 중기 단계에서는 직업훈련과 자립 계획을 실행하면서 심리 상담을 병행한다. 사회 복귀에 대한 부담이 큰 만큼 정서적 안정도 함께 관리한다. 후기 단계에서는 취업 연계에 집중하며 실제 노동시장 진입을 지원한다. 신청은 가석방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교도관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지원 대상은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통상 3년 이상 장기수 가운데 형기가 6개월 이상 남은 가석방 대상자여야 하며, 동시에 센터 입소 의사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신청할 수 있다. 이후 각 교정시설의 자체 기준에 따른 가석방 심사를 거친 뒤, 입소 희망자가 확정되면 지부 관계자와의 사전 상담을 통해 센터 입소 절차가 진행된다. 현재 울산지부에는 대상자 3명이 생활하고 있다. 가석방과 관련한 오해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남 지부장은 “가석방 심사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가 결정한다”며 “공단은 사전 상담과 입소 준비를 지원할 뿐 심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청이 곧 가석방 결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용접·배관 기술로 여는 새 출발 울산기술교육원 문을 열자 금속이 타는 냄새와 함께 붉은 불꽃이 번졌다. 보호구를 착용한 교육생들은 각자의 작업대 앞에서 토치를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용접 비드를 다듬는 금속 마찰음이 이어졌고, 다른 작업대에서는 기술교육을 담당하는 박중재 계장이 교육생의 자세를 짚어가며 교정하고 있었다. 울산지부의 기술교육 과정은 크게 두 갈래다. 용접·특수용접기능사와 배관기능사 과정이다. 기술교육원의 연간 목표 교육 인원은 110명이다. 정해진 학기 없이 인원이 채워지면 바로 개강하는 수시 운영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 계장은 “일반 학원은 한 달에 20~30명을 같은 진도로 가르치지만 이곳은 10명 안팎의 소규모 교육이라 개별 지도가 가능하다”며 “오늘도 2명이 새로 입소하면 하루 동안 집중 교육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교육생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도 전시돼 있다. 용접 기술로 만든 장식품과 배관을 연결해 만든 잠수함·용 모형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한 실습 결과물을 넘어 교육생의 기술 숙련도를 보여주는 작업물이다. 박 계장은 “기능사부터 산업기사, 기능장까지 단계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며 “기술을 축적하면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목표는 자격증 취득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정시설 생활을 거친 교육생 상당수는 사회 복귀에 대한 불안과 위축을 안고 입소한다. 취업 지원을 맡은 김진환 팀장은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존감 회복”이라며 “질책보다 격려가 먼저다. ‘잘했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 표정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 작업복을 입고 하루 실습을 마치는 과정은 교육생들에게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다시 사회로 나아갈 감각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유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성범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주 제기하는 질문이다. 성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명확한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결).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한 문장이 누군가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한 가지 현실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법률 상담에서 “이길 수 있나요”라고 묻지만, 그 질문의 본질은 결국 “지금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느냐”에 가깝다. 분쟁은 대개 법률문제로 시작하지만 곧 생활 전반으로 확산된다. 거래 갈등은 사업 운영을 흔들고, 형사 절차는 직장과 가족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래서 법적 대응은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과정이 아니라 일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실제 분쟁에서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손해를 최소화하며, 과도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분쟁이 초기 대응의 부재나 감정적 대응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확대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계약 분쟁에서는 구두 약속이나 관행에 의존한 거래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납품, 검수, 하자 통지 등 기본적인 절차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분쟁이 장기화되기 쉽다. 전문가들은 거래 과정에서 최소한의 문서화와 시간 순서 정리가 분쟁 예방의 핵심이라고 지적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을 찾는다. 이미 법정구속이 되었거나 항소심을 앞둔 경우가 많다. 시간은 제한돼 있고 선택의 여지도 크지 않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말이 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판단이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은밀한 공간에서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 외에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적지 않다. 객관적 물증이나 영상 자료가 확보되지 않는 사건에서는 결국 피해자 진술이 판단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재판 실무에서도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유지될 경우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수사 단계부터 법정 진술까지 내용 변화가 크지 않다면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1심 판결문 상당수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문제는 진술의 일관성과 사실의 객관적 가능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기준은 단순한 개연성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다. 따라서 사건 당시의 물리적 환경과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성범죄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 강제성 여부다. 상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일상의 관심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선다.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를 묻는 평범한 대화는 아이의 생활을 지켜보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가 구속 상태에 놓일 경우 이러한 역할은 사실상 중단된다. 문제는 그 공백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최근 교정시설 수용자 상담 과정에서는 자녀가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례가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구속 상태에서는 학교 방문이나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 초기 대응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폭력 절차는 보호자의 상황과 관계없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된다. 사실관계 조사, 진술서 작성,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회부 여부 판단 등 주요 절차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보호자 부재가 곧 대응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심의위원회의 판단 역시 과거보다 엄격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 대응이나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구속된 부모의 경우 무엇보다 ‘대리 보호자 지
오빠, 부부에서 서로를 제일 잘 아는 남 되기가 참 쉽다.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지도 벌써 2년이나 되었네. 과거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주곤 했잖아. 그래서일까? 모든 걸 잊고 잘 살아가 보자는 오빠에게 난 결국 잡은 손을 놓자고 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아. 실감이 안 나는 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과거의 나는 늘 오빠 탓을 하며 오빠를 괴롭혔잖아. 더 이상 오빠가 그런 말들로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의 가장 예쁜 20대에 오빠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살게 해줘서 고마웠어. 오빠가 힘든 만큼 나도 힘들 거고, 오빠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플 거야.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불러보자! 준아, 넌 나의 20대 전부였어. 그래서 그게 참 고마워. 다음번에 사랑할 때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라. 아~ 덕분에 내 20대 너무 예뻤다! - 대구에 있는 너에게, 사랑했던 내가.
이 글을 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23년 3월에 구속되었거든요. 같은 해 6월 19일, 제 생일에 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루게릭병을 앓아 온몸의 근육이 다 빠진 채로 쓸쓸히 돌아가셨어요. 저는 집행유예도 있었기에 이번 사건으로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신 나간 행동을 했거든요. 많은 분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렸고요. 저를 믿어주시던 목사님, 사모님께서 필리핀에 선교를 가신다고 해서 사택에 몰래 들어가 체크카드 2개를 훔쳤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수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징역을 살면서도 전 불량아였습니다. 미결 때 징역 3번, 기결 때 4번, 훈방 1번… 징벌방을 8번이나 들락날락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한 천하의 후레자식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제 걱정을 하셨습니다. 피해를 입은 목사님과 사모님께 저 대신 용서를 구하셨고, 아프신 와중에도 저만 생각하다가, 저만 기다리다가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버지가 늘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장남이었고, 두 동생에게도 피해만 주
2018년 1월, 지금은 없어진 ○○교도소 전기기능사 직업훈련 공과 훈련 시작 직후 있었던 일이다. 훈련생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로 꽤 젊은 축이었는데, 개중 돋보이는 62세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그 어르신은 자기소개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은퇴 후 좋지 못한 일에 연루되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이 나이에도 직업훈련을 신청한 이유는 출소 후 아파트 경비원 일을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기기능사와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이 있으면 경비원 취직 시 우대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교도소에 들어왔다고 해서 마냥 절망만 하지 마시고, 이곳에서 재도약할 수 있는 인생 설계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1년간 선생님과 반장, 숙련공을 포함한 모든 훈련생들이 이 어르신을 도와드렸다. 어르신은 12월 말 시험 당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시게 되었지만, 소장님과 선생님,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교도소 안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사히 전기기능사와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훈련생들이 그 어르신의 자기소개를 듣고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전까지만 해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내
저는 일주일 중 한 번 있는 전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허락된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힘든 생활도 잊어버린 채 짧고 소중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아들 기죽지 말라며 학부모회 임원까지 맡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늘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덕분에 원하는 과에 입학한 것은 물론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온 후, 아버지와의 첫 접견 때가 떠오릅니다. 며칠을 못 주무셨는지 충혈되어 있던 눈, 말씀하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던 손, 어느새 흰서리가 가득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죄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아프지 말고 힘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편의점 일을 하시며 하루 19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