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이른바 ‘사법개혁 3법’ 입법이 지난 2월 28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유지돼 온 사법 체계가 약 39년 만에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이번 입법에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 ▲대법관 정원 확대 ▲판사·검사의 법 왜곡 행위 처벌 규정 신설 등이 포함됐다. 사법 통제 구조 전반이 바뀌는 만큼 제도 시행 이후 파장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재판소원이 가능해지면서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의 위헌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은 확정된 재판을 대상으로 하며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법원 재판이 헌법·법률을 위반해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등이 해당된다. 재판소원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제기해야 하며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최종 결정 전까지 해당 판결의 효력이 정지될 수 있다. 정부는 위헌 여부 검토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법을 공포할 예정이며 시행 이후 접수되는 사건부터 적용된다. 법조계에서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재판 결과에 불복한 당사자들이 판결 집행을 지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판소원을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민사 명도소송이나 강제경매 사건에서 패소 당사자가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판결 효력과 후속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소송을 통해 확정된 징계나 영업정지 처분 역시 재판소원 대상이 될 수 있어 공공기관 인사와 행정 집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가 판결을 취소한 이후 법원이 어떤 절차로 재심리를 진행할지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혼란 요인으로 꼽힌다. 헌재의 사건 부담 증가 역시 과제로 제시된다. 재판소원 도입으로 심판 사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인력 구조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헌재도 연구관과 심판 지원 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함께 통과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원은 법 공포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매년 4명씩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재판연구관 등 보조 인력 확충과 시설·예산 부담 증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원합의체 운영 방식과 심리 구조 개편 역시 향후 과제로 남았다. 특히 새로 도입되는 ‘법 왜곡죄’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판사와 검사 등의 직무 판단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을 경우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재량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 소속 박준영 변호사는 제도 도입 과정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사나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개인이나 세력이 고소·고발을 반복할 경우 ‘법 왜곡’ 혐의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정권에 불리한 수사나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결국 위축되는 것은 수사기관과 법관의 소신과 양심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재판소원 제도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취소할 경우 기존 확정 판결의 효력이 어느 시점에서 상실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형사 재심 제도와의 정합성 문제 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입법의 속도는 정치적 성과가 될 수 있지만 형벌 규정은 한번 도입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며 “제도 도입 과정에서 구조적 공백과 혼란 가능성을 충분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이틀 만에 과거 교제폭력 피해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출동한 경찰관까지 폭행한 5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승호)는 강간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도 함께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7일 새벽 강원 원주시 자택에서 30대 여성 B씨를 상대로 두 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함께 술을 마시던 피해자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범행을 저질렀고, 이후 귀가하려는 피해자를 위협해 다시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과거 A씨의 교제폭력 사건 피해자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2022년부터 연인 관계였으며, A씨는 교제 기간 중 반복적인 폭력 행위로 벌금형과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범행은 A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두 사람을 분리하려 하자 A씨는 경찰관을 밀치고 멱살을 잡는 등 폭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는다. 해당 경찰관은 “지인이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뒤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내고 연락이 끊겼다”는 내용의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그 정도 또한 점차 중해졌다”며 “정당한 공무집행까지 방해했으며 피해자와 경찰관 모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교정시설 내에서 이른바 ‘사동도우미(사소)’로 불리는 일부 수용자들이 편의 제공을 명목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른 수용자와 가족을 상대로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단순한 개인 일탈을 넘어 일부 교정시설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교정 행정 전반의 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8일 법무부에 따르면 사동도우미는 수용동 청소, 배식 보조, 물품 배분 등 수용동 운영을 지원하는 작업 수용자를 지칭하는 내부 호칭이다. 해당 제도는 ‘분류처우 업무지침’ 제84조에 따라 각 교정기관장이 기관 실정에 맞게 운영하며, 건강 상태와 작업 수행 능력, 수용생활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류심사과장 또는 보안과장의 심사를 거쳐 소장 또는 부소장이 최종 선발한다. 문제는 일부 사동도우미가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다른 수용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최근 수용자 가족 커뮤니티 ‘오크나무’와 언론 제보 창구에는 “사동도우미가 편의를 제공해 주겠다며 외부 가족에게 송금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복수 접수됐다. 제보자들은 사동도우미가 개인 또는 제3자 명의 계좌를 전달하고 가족을 통해 돈을 보내도록 요구하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동도우미 경험이 있다는 한 출소자는 <더시사법률>과의 통화에서 “단순 간식이나 생필품 수준을 넘어 상당한 금액이 오간다”며 “인천구치소에서는 사동도우미를 맡으면 중고차 한 대 값은 벌고 출소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시설마다 상황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10급 공무원’으로 불리는 사동도우미들 또 다른 제보자는 “사동도우미에게 잘못 보일 경우 문제 수용자로 지목돼 조사수용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며 “업무를 보조하는 수용자의 말을 교도관이 신뢰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수용자들 사이에서는 사동도우미를 ‘10급 공무원’이라고 부른다는 표현까지 사용된다는 증언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사동도우미의 금전 요구를 거절하거나 신고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가족을 둔 한 제보자는 “입소 직후 사동도우미 계좌로 38만6000원을 입금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며 “교정당국에 신고를 고민했지만 이후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출소한 또 다른 제보자 역시 “교도소 내에서는 금전 요구가 있더라도 신고하면 오히려 함께 조사수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설령 징계가 이뤄지더라도 신고자는 수용동 내부에서 ‘코걸이’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법무부 “금전 거래 명확히 금지”…관리 통계는 없어 이에 대해 법무부는 수용자 간 금전 수수는 명확히 금지된 행위라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본지에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당한 금품 요구나 허가 없는 금전 거래는 금지된다”며 “위반 시 조사 및 징벌 절차가 진행되며 사안에 따라 형사입건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방장이 ‘공동구매’ 명목으로 금전을 걷는 행위 역시 허가 없는 금전 수수에 해당할 경우 징계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무부는 개별 교정기관에서 발생한 금전 수수 사례를 본부 차원에서 별도로 보고받거나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신고자 보호와 관련해 익명 신고함 설치, 무기명 설문조사, 신고자와 피신고자의 분리 수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신고 이후 보호 조치의 구체적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교도관 근무 기피·배치 불균형 속 사동도우미 권력화 사동도우미의 금전 요구 문제가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관리 공백의 결과라는 증언도 이어진다. 2016년과 2024년 각각 사동도우미를 경험했다는 한 출소자는 “과거에는 간식 요구 수준에 그쳤지만 2020년 이후 금전 거래 형태로 확대됐다”며 “일부 시설에서는 사동도우미 교체 시 금전 거출 방식까지 인수인계가 이뤄진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도관은 “과거에는 경험 많은 교도관이 사동 관리를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근무 기피 현상으로 현장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8급 직원이 담당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동 근무는 업무 강도와 민원 부담이 크다 보니 일부 교도관들이 작업장 근무를 선호하고, 사동 관리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직원들에게 맡겨지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며 “관리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 부담까지 커지면서 사동도우미의 보고에 의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사동 근무는 업무 부담을 고려해 근무평정이나 인센티브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인력 배치의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사동 관리 공백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 비위가 아닌 구조적 관리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 계좌나 우편을 통한 금전 거래는 교정시설 내부 점검만으로 적발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안팍 안지성 변호사는 “교정당국이 사동도우미 선발 기준과 역할 범위를 전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인력 부족을 이유로 수용자에게 사실상의 관리 권한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사적 권력이 방치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유사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금전 요구 정황이 확인될 경우 즉각적인 분리 조치와 외부 독립 조사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고 이후 보호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수용자가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제보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사동도우미 계좌 사용 여부에 대한 정기 점검과 수용자 상담·설문 절차 등을 통해 내부 신고 체계를 실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인을 찾는다. 이미 법정구속이 되었거나 항소심을 앞둔 경우가 많다. 시간은 제한돼 있고 선택의 여지도 크지 않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말이 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판단이 내려졌다”는 주장이다.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은밀한 공간에서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 외에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적지 않다. 객관적 물증이나 영상 자료가 확보되지 않는 사건에서는 결국 피해자 진술이 판단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재판 실무에서도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유지될 경우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수사 단계부터 법정 진술까지 내용 변화가 크지 않다면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1심 판결문 상당수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문제는 진술의 일관성과 사실의 객관적 가능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기준은 단순한 개연성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다. 따라서 사건 당시의 물리적 환경과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성범죄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 강제성 여부다. 상대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일상의 관심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선다.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를 묻는 평범한 대화는 아이의 생활을 지켜보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가 구속 상태에 놓일 경우 이러한 역할은 사실상 중단된다. 문제는 그 공백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최근 교정시설 수용자 상담 과정에서는 자녀가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례가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구속 상태에서는 학교 방문이나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 초기 대응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폭력 절차는 보호자의 상황과 관계없이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된다. 사실관계 조사, 진술서 작성,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회부 여부 판단 등 주요 절차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보호자 부재가 곧 대응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심의위원회의 판단 역시 과거보다 엄격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 대응이나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구속된 부모의 경우 무엇보다 ‘대리 보호자 지
“변호사님, 저는 정말 고액 알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걸 꿈에라도 알았겠습니까?” 구치소 접견실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절규다. 대개 경제적 곤궁 속에서 ‘채권 회수 업무’나 ‘단순 현금 전달’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이들은 1심에서 ‘사기죄’ 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빠진 덫의 깊이를 깨닫는다. 변호사로서 그들의 눈을 마주하다 보면, 억울함 뒤에 숨겨진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순간에 피고인이 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자각보다는 뒤늦게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는 억울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수사 기록에는 피해 금액의 규모, 현금 수거 장면이 담긴 CCTV, 송금 내용과 이동 동선이 정리되어 있다. 법정은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그러한 객관적 정황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피고인의 절박한 호소는 차가운 증거의 벽에 가로막히곤 한다. 법정은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현장에서 피고인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지점은 ‘고의성’이다. 본인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
얼마 전 경찰 여청수사팀에서 근무 중인 경찰대 동기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보다 긴장된 목소리였다. “이번 사건은 폭행과 협박이 명확한 강간 사건이야.” 그 한마디에 수사관으로서의 무게가 전해졌다. 명백한 폭력과 강제성이 동반된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형사사법의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다. 그런 사건일수록 수사관들은 더욱 신중하고 단호해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성범죄 사건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물리적 폭행이 분명한 사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관계의 해석, 동의의 범위, 당시의 상황 인식 등을 둘러싼 다툼이 쟁점이 되는 사건들이 많다. 변호사로서 체감하기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성범죄 관련 상담이 크게 증가했다. 상담 사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중에는 명백한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사안도 있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분쟁도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관계의 기억이 달라지거나 사후적 감정 변화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수사와 재판은 언제나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와 무죄추정의 원칙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를 예방하고
저는 일주일 중 한 번 있는 전화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허락된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힘든 생활도 잊어버린 채 짧고 소중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고 피곤하실 텐데도 아들 기죽지 말라며 학부모회 임원까지 맡으셨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늘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 덕분에 원하는 과에 입학한 것은 물론 졸업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교도소에 들어온 후, 아버지와의 첫 접견 때가 떠오릅니다. 며칠을 못 주무셨는지 충혈되어 있던 눈, 말씀하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손, 어느새 흰서리가 가득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죄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아프지 말고 힘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편의점 일을 하시며 하루 19시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젊은 저도
요즘따라 더욱 보고 싶네요. 이제 나를 기다릴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당신은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요. 솔직히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어요. 나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걸림돌이라면 당신을 위해 비켜주는 게 도리겠죠. 이곳에서 몇 번의 계절을 맞이했지만 제 마음의 계절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겨울날에 멈춰있어요. 사회에 나오면 연락하라며, 친한 오빠로서 밥 한 끼 사주겠다는 당신의 그 말이 저를 너무 슬프게 만들어요. 매일 밤 당신의 편지를 꺼내 보며 우는 저이지만, 이젠 정말 당신을 제 마음속에서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지인과 잘 되어가는 중이라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어요.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이곳에 와서 가장 소중한, 내 전부였던 당신을 떠나보내게 되었네요. 이 또한 제 업보겠죠. 행복했던 저와 그때의 다정했던 당신은 추억 속에 담아둘게요. 그러니 당신은 부디 행복하세요. 2026년 겨울, 배배가
찬 바람이 얼굴에 스치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분명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가끔은 왜 사는지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게 됩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어머님마저 먼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교정직원에게 전해 들을 당시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 그분의 기일과 어머님이 가신 날이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은 살아오면서 처음 겪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고, 한동안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노하셔서 제게 외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죽는 그날까지!” 그날 이후로 저는 그 분노 가득한 음성을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지만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이제 저는 저로 인해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그 숨이 끊기는 듯한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365분의 1의 확률입니다. 저는 이제 죄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죄의 무서움을
어머니, 이곳에 와서 벌써 네 번째 맞는 겨울입니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지나고 보니 언제 이렇게나 되었나 싶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사십 중반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제 모습을 보니 어머니께 죄송스럽습니다. 못난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 이제 9개월가량 남은 수용생활을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겠습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항상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범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 그동안 속만 썩이고 고생시켜 드린 어머니께 열심히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못난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