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형사전문 변호사 이동규입니다. 저는 주로 구속된 피고인과 그 가족들 곁에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고 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거창하게 정의하기보다는, 저는 늘 이렇게 소개합니다. “인생의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나는 분들에게 건네는 작은 손난로이자,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라고요. 법정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되, 의뢰인 앞에서는 가장 편안한 대화 상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2. 변호사님의 이력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전직 교도관으로 근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나 직업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린 시절 저에게 교도소는 ‘무서운 범죄자가 갇힌 곳’이 아니라, ‘아버지가 출근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던 일터’였습니다. 아버지는 주로 수용자 상담과 교화 업무를 맡으셨는데, 퇴근 후에는 종종 “○○○ 수용자가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더라”, “○○○ 수용자가 오늘은 이런 말을 하더라”라며 수용자들을 ‘번호’가 아닌 ‘이름과 사연을 가진 사람’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죄는 미워하되,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존엄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일찍부터 체감하게 됐습니다. 변호사가 된 지금도 저는 기록 속 사건보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먼저 보려 합니다. 아버지가 담장 안에서 그들의 일상을 지키셨다면, 저는 담장 밖에서 죄를 지은 만큼만 책임을 지도록 그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제 몫이자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Q3. 접견을 갈 때 재소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확실히 다르다고 느낍니다. 접견실에서 투명 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저는 그분들의 눈에서 ‘범죄의 흔적’보다 ‘고립감과 두려움’을 먼저 읽게 됩니다 많은 변호사들이 사건 내용부터 묻지만, 저는 "식사는 좀 넘어가십니까?", "밤에 잠은 주무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곳의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률적 조언자이기 이전에, 먼저 ‘심리적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신뢰가 쌓여야 진짜 변론도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Q4. 재판·접견·상담으로 바쁜데, 사건 분석할 시간이 있느냐는 질문도 많습니다. 실제 하루 루틴은 어떠신가요? 가족분들이 가장 걱정하시는 부분이 아마 "우리 변호사님이 바빠서 우리 사건을 소홀히 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일 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 하루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낮에는 법원을 오가고 수사기관에 입회하며 발로 뜁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진짜 승부는 '해가 진 뒤'에 시작됩니다. 전화벨이 멈추고 사무실이 고요해지면, 저는 그때부터 기록을 펼칩니다. 낮에 의뢰인이 흘렸던 눈물, 가족들이 전해준 절박한 당부를 떠올리며 판례를 찾고 서면을 씁니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고르느라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많습니다. “이 한 줄이 누군가의 징역 1년을 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펜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쏟는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의뢰인의 ‘자유를 위한 시간’이 된다고 믿습니다. Q5. 얼마 전 ‘아파트 주차장에서의 음주운전은 면허취소 사유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 칼럼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실무에서는 ‘인정하고 빨리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은데, 변호사님은 이런 쟁점을 어떻게 발굴하고 논리를 전개하시나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물론 혐의가 명백하다면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게 맞지만, 수사기관의 관행적인 법 적용이나 절차적 허점까지 묵인하는 것은 변호사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건 기록을 볼 때 '당연한 것'을 의심합니다. "왜 이 증거는 여기서 수집됐지?", "이 장소가 법적으로 도로가 맞나?" 집요하게 파고들어 작은 균열을 찾아내면, 그것을 대법원 판례와 법리라는 망치로 두드립니다. 설령 무죄가 나오지 않더라도, 치열하게 다투는 과정 자체가 재판부에게 "이 피고인의 권리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런 '깐깐한 변론'이 결국 형량을 줄이는 핵심 지렛대가 됩니다. Q6. 형사사건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건을 전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며, 의뢰인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고 소통하시나요? 저는 의뢰인에게 "무조건 집행유예 나옵니다" 같은 달콤한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저는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경우’, ‘현실적인 예상’, ‘최악의 시나리오’ 세 가지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최악의 상황은 제가 막겠습니다. 현실적인 예상을 넘어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막연한 위로 대신,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진정성 있는 소통입니다. Q7. 변호사님들은 서면에 “판례”를 자세히 적곤 합니다. 판사님들이 다 아실 텐데 왜 굳이 적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판사님들이 판례를 몰라서 적는 건 아닙니다. 서면에 판례를 적는 이유는, “이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봐 달라”는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님들께 "이 사건은 A판례가 아니라 B판례의 논리를 따라야 합니다"라고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죠. 즉, 서면에 적는 판례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님, 이 논리대로 판결하시면 상급심에서도 뒤집히지 않습니다"라는 일종의 '안심 보증서'이자 강력한 설득의 도구입니다. Q8.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건 이후 형량 추세가 많이 변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실무 체감은 어떤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몰랐다”는 변명은 이제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초범이나 단순 가담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단순 수거책에게도 실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법원의 시선이 상당히 냉정해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감정적 대응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체적인 기망의 정도, 가담 경위,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인 피해 회복'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변화된 양형 기준을 정확히 읽고, 수사 초기 단계부터 아주 정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Q9. 형사전문 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었나요? 어린 남매를 키우던 한 가장의 사건이 기억납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분이었는데, 접견 때마다 본인의 형량보다 "밖에 있는 아내가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얼마나 힘들까"를 걱정하며 우셨습니다. 치열한 재판 끝에 결국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던 날, 구치소 문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가족의 모습을 보며, "아, 내가 구해낸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의 우주였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10. 마지막으로, 현재 형사사건을 준비 중이거나 수사 단계에 있는 분들께 꼭 해주고 싶은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아마 인생에서 가장 춥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겁니다. 담장 안에 갇혀 있으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가족이 밖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고, 저 같은 변호사가 당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길을 찾는 과정에 제가 든든한 등불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수감자 가족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 회원을 모집해 전 운영자 배모 씨와 함께 변호사 알선 의혹을 받는 A 변호사가 본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0일 확인된 소장에 따르면, 원고인 카페 운영자 A 변호사는 본지가 게재한 ‘변호사 불법 중개 의혹’ 등 복수의 보도가 모두 허위이며 자신과 소속 법무법인의 업무와 평판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A 변호사는 “보도 이후 카페의 주요 이용자가 구치소 수감자 가족들인데, 기사 내용을 접한 다수의 의뢰인이 상담을 취소하거나 수임을 철회해 실제 손해가 발생했다”며 본지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 변호사는 소장에서 “옥바라지 카페에서 원고 법무법인의 외근 사무원이 활동한 사실이 없다”며 “수감자 가족 유입을 위해 교정본부 식단표를 공유하며 회원을 모집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제기된 ‘1:1 비공개 법률상담 게시판’ 운영과 관련해서도 “카페 입점 협력업체였던 본인의 요청에 따라 개설된 게시판”이라고 설명했다. A변호사는 “과거 배씨가 운영하던 시기 카페에 고객(카페회원)이 법률상담을 남기면 카페와 광고계약을 체결해 변호사(본인)가 직접 이를 확인하고 고객에게 연락한 것뿐이며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지 보도 직후 대한변호사협회가 관련 사실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서자, 카페에 광고를 게재하던 또 다른 변호사 B씨는 운영자 배씨에게 ‘이사님’이라고 부르며 조사 사실을 공유하고 문제의 ‘1:1 비공개 법률상담’ 게시판이 즉시 삭제되는 등 증거 인멸을 의심할 만한 정황도 확인됐다. 배씨는 지난 9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곧바로 카페 운영권을 A 변호사에게 넘겼다. A 변호사는 이에 대해 “카페를 매매한 것이 아니라 언론사의 부당한 보도 행태를 막기 위해 매니저 권한을 양도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삭제했던 ‘1:1 비공개 법률상담 게시판’은 A 변호사가 운영권을 넘겨받은 이후 다시 복구됐다. 그러나 법조계는 A 변호사의 주장과는 달리 변호사 광고 및 알선 행위 관련 법령과 판례 기준에 비춰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18년 서울남부지법은 개인회생 관련 인터넷 카페 운영자가 ‘1:1 법률상담’ 게시판을 개설하고 로펌 사무장들과 운영자가 상담을 주고받고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한 뒤 수임료와 광고비를 대가로 받은 사건에서 재판부는 “카페 운영자와 변호사 모두에게 변호사법 위반을 인정된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변호사법 제34조는 사건 알선·청탁·동업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A 변호사가 “본지 보도로 피해가 발생해 운영을 맡았다”고 주장한 부분은 변호사가 특정 커뮤니티 운영에 직접 관여한 정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사실상 동업 관계가 형성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수용자 가족이라는 특수한 이용자층을 대상으로 일반 배너 광고가 아닌 카페 내 게시판을 통해 법률상담을 받는 구조는 ‘공정한 수임 질서를 해치는 형태의 온라인 광고’ 또는 ‘잠재적 의뢰인을 선별해 연결하는 알선 통로’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해당 소송은 서울동부지법 민사단독에서 심리될 예정이다. A변호사 "더이상 취재 하지 말아라"...언론사 압박도 한편 A 변호사는 배씨와의 유착 관계 및 알선 의혹에 대한 본지의 취재 요청에 대해 “더 이상 취재를 이유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이메일을 보내는 등 어떠한 형태의 접근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또한 허위 기사를 더 이상 게재하지 말기를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이를 위배할 경우 민·형사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알려드린다”며 언론활동에 대해 사실상 추가 취재와 보도를 중단하라는 협박성 입장을 내놨다. 현재 배씨는 전국 교정시설 54개소와 법무부 각 처부를 상대로 본지 신문 구독료 조회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했다. 한 변호사는 “정부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 제도를 남발하는 것은 명백한 업무 방해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본지는 배씨를 업무방해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본 녹취는 A 변호사의 설명과 달리, 카페에 법률상담 글을 남기자 A변호사 사무장이라며 전화가 걸려와 선임을 유도하는 통화
개인투자자로 큰 수익을 올려 이른바 ‘수퍼 개미’로 불리던 40대 남성이 비상장 주식 투자를 미끼로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그는 유사한 수법의 사건으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복모 씨(42)를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복 씨는 2016년 7월 박모 씨 등과 공모해 자신이 운영하던 증권 관련 방송에서 “충만치킨이 곧 상장될 예정이며, 장외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허위로 홍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속은 주식 카페 회원 약 300명은 충만치킨 비상장 주식을 주당 2만6000원에 매도했고, 복 씨 일당은 이를 통해 총 102억 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복 씨 등은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기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추가 피해 사례를 확인하고, 별도의 사기 혐의로 복 씨를 추가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복 씨는 방송에서 “충만치킨 가맹점이 200개를 넘는다”는 취지로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상장 신청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가맹점 수도 100여 개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형사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1심 선고 직후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될 줄 몰랐다”며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억울함, 후회, 불안, 그리고 ‘이제 끝난 걸까’ 하는 절망이 뒤섞인 얼굴들이다. 그러나 형사사건을 오래 다루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형사사건은 1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결 직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항소심은 단순한 재검토 절차가 아니다. 기존 판단의 타당성만을 되짚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료와 변화된 태도를 바탕으로 사건을 다시 구성하는 재판이다. 1심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이유의 상당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심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절차가 항소심이다. 그러나 항소심은 시간을 되돌리는 재판이 아니다.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를 제출할 수는 있지만 단순히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항소심은 1심이 어떠한 논리와 근거로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최근 국회를 통과한 형법 개정안은 사기죄, 컴퓨터등사용 사기죄, 준사기죄의 법정형을 기존 징역 10년에서 최대 20년, 가중 시 징역 30년까지 가능하도록 크게 상향했다.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투자리딩방 등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조직형 사기 범죄에 강화된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형량 인상이라는 조치가 실제 사기 범죄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지는 별도의 문제다. 형사사법 현장에서 수많은 사기 사건을 다뤄본 변호사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개정은 분명 의미가 있으나 동시에 중요한 한계도 드러낸다. 무엇보다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로 범죄가 감소한 사례는 거의 없다. 사람은 범행을 저지르기 전 형량을 정교하게 계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은 '나는 안 잡힐 것'이라는 심리에 기반해 행동한다. 충동적 범행이나 조직적 지시에 따른 범죄에서는 형량 자체가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더 흔하다. 범죄 심리 연 구에서도 ‘처벌의 엄격함(severity)’보다 ‘처벌의 확실성(certainty)’이 행동 억제에 훨씬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해 왔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사기 구조의 특성이다. 최근 캄보디아 등 해외에 본거지를 둔
조진웅 배우가 소년범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마녀사냥과 다름없는 여론 몰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왜 이리도 가혹하고 세상은 왜 이토록 냉정한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나는 1992년 1월 당시 천안소년교도소(현재는 ‘천안교도소’)에 9급 교도관으로 임용되면서 교도관 생활을 시작해, 30년 중 17년을 소년수용자들과 함께 보냈다. 소년교도소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와 소년수들의 상처받고 비뚤어진 마음을 다독였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의 성직자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교화·개선을 도모하고, 심리치료·음악치료·미술치료 전문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소년수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정기관에서도 수용자들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당시 천안교도소에는 지역 대학교의 교수 한 분이 매주 교도소를 방문해 소년수들의 연극 지도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성껏 연극반 수용자들을 지도해 천안시민회관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다. 연극을 통해 소년 수용자들의 마음을 치료했던 조동희 교수님의 이야기다. 그의 소탈한 성격과 인자한 웃음을 통해 많은 소년수들이 새
성범죄 피의자로 입건되는 순간 사람들은 흔히 상상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억울하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하고 ‘수사에 성실히 임하면 진실이 드러나겠지’ 하는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현실의 수사·재판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직접증거가 많지 않고, 결국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이 맞서는 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사건의 향방을 거의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조사는 특히 중요하다. 수사기관이 처음 작성하는 피의자 진술조서는 이후 모든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 이때 피의자는 종종 ‘솔직하게 말하면 오해가 풀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준비 없이 진술에 나서곤 한다. 그러나 수사 기록에 남는 문장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 말의 앞뒤가 잘려 기록되기도 하고, 표현이 과장되거나 부정확하게 기재되기도 한다. 이후 진술을 ‘수정’하게 되면 진술 자체의 신빙성이 흔들려 불리함이 커진다. 따라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추측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 좋고, 당시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떠올려 정리한 뒤 조사에 응하는 편이 안전하다. 수사기관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칠
친구로 시작해서 연인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 부족한 남편의 아내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에서는 빈틈없는 상사로 완벽에 가까웠던 당신. 유학 시절 똑부러지는 성격과 철저한 자기관리, 따뜻한 성품에 반해 내가 여러 번 매달린 끝에 우린 연 애를 했고, 1년 후엔 결혼까지 하게 됐지. 부모님께 절대 손 벌리지 말고, 우리 힘으로 살아내 보자는 생각은 당신이나 나나 같았어. 그래서 월셋집에 살며 밤낮없이 일했던 기억이 나. 그러다 전셋집으로, 자가로,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신도시 아파트로…. 그 집에 들어서던 날의 감격은 아직도 잊지 못해. 그랬던 우리에게 두 천사가 찾아와 주었고, 난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명감을 안은 채 육아와 가사는 뒤로 하고 사업에만 몰두하게 됐어. 그 결과 남들이 보기에는 여유 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됐지만, 결국 내 이기적인 결정과 행동에 당신이 힘들어졌다는 걸 몰랐어. 대학 시절, 유학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당신이었는데…. 그토록 노력 해서 겨우 결실을 맺은 당신의 직업적 커리어를 내가 육아라는 이름의 짐으로 짓눌러 버렸지. 그런데도 묵묵히 남편의 앞길을 응원하며 따라와 준 당
안녕하세요. 저는 상고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미결수 수용자입니다. 교도소 담장 안에도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완연한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빠르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시간은 참 빨라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이곳에 머문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딸아이가 있습니다. 일찍이 사랑했던 아내가 하늘의 별이 된 뒤, 홀로 키우며 지켜주고자 했던 딸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과 선택으로 인해 오히려 그 아이의 인생을 더 외롭고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아 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떠올리면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조차 미안하고 괴롭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저는 오로지 딸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반성 속에서 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 아이의 미래입니다. 올해 수능을 치르고 곧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될 아이의 앞날이 제 잘못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걱정과 미안함을 담아 여러 번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
안녕하세요. 저는 6개월 동안 미결 독거실에서 지내며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더웠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추워졌습니다. 저처럼 힘든 감옥 생활 중에 반성과 후회의 나날을 보내고 계신 분들과 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글을 써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어긋난 길로 빠져 잘못 살아왔습니다. 특가절도죄로 30년가량을 교도소에 갇혀 문제수로 살았던 젊은 날이 생각납니다. 그 당시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다가 결국 스스로에게 해선 안 될 행동까지 하고, 수용자 신분으로 응급 수술까지 받으며 교도관님들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다 45세가 되자 갑자기 범죄라는 것이 무섭고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끝에 잠시나마 남들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7년이 흘러 50대 초반이 된 제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강제추행죄로 입건되어 다시 징역을 살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 의지로 도저히 성추행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성추행을 반복하며 정신과 진료까지 받던 중에 또 성추행을 해서 지금은 전자장치 부착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제 나이 60세가 다 되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 당신의 존재 자체가, 당신이 내 사람이라는 것이 정말 고마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주던 따스함이 여전히 내 가슴에 흘러넘쳐서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 갑작스러운 일을 겪게 돼 당신 마음은 분명 힘든 시간을 견디며 짜증, 분노, 허탈함, 후회, 그리움이 뒤섞여 혼란스러울거야. 누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느라 많이 외로울 거고. 그런데도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는 당신이 정말 고맙고 대견스러워. 또 세월이 수놓은 흰빛이 내려앉은 나의 모습을 보고도 나와 함께하고 싶다며 그리움을 표해주어 고맙기도 해. 지금까지 2년가량 버텨온 당신의 수고가 묻히지 않게, 언젠가 새로운 나로 거듭나 당신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힘내볼게!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자! 다시는 당신 외롭게 하지 않을게. 너무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