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을 노려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고(故) 장동오씨가 사건 발생 23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핵심 증거들이 영장 없이 수집된 위법 증거에 해당하고 이를 배제하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지원장 김성흠)는 11일 살인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장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사고 차량에 대한 압수·감정 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2003년 사고 당시 저수지에서 인양한 차량을 공업사로 견인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으나 이 과정에서 법관의 영장을 받지 않았고 영장주의 예외 요건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영장 없는 차량 압수는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하고, 이에 기초한 감정 결과 역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의 사고 여부에 대해서도 검찰 증거만으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게 졸음운전을 주장해 왔다”며 “도로 선형상 조향 없이도 사고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고, 졸음운전 상태에서도 일정 시간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사고 당시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물을 피하려다 무의식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 위 내용물에서 발견된 캡슐 형태의 약물은 피고인이 처방받은 약과 형태가 다르다”며 “피해자가 별도로 복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사망 시점과 수면제 반감기를 고려하면 혈액에서 성분이 검출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수사기관이 특정한 범행 방법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탈출을 피고인이 방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국과수 감정에서 언급된 출혈·압박 흔적에 대해서는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인 설명에 불과해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다수 보험 가입, 부부 갈등, 경제적 어려움 등 범행 동기로 제시된 정황 역시 “그 자체만으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장씨는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 39분경 전남 진도군 의신면 한 교차로에서 자신이 몰던 화물차를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로 추락시켜 동승한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보험금 8억8000만원을 노린 계획적 범행이라고 판단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장씨는 검경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졸음운전에 따른 사고라고 주장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05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으나 이후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2024년 재심이 개시됐다. 장씨 측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경찰과 검찰, 국과수 감정, 사법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수사와 기소 과정 전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은 지금이라도 이 사건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씨 부부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올바른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장씨는 재심 개시 결정 이후인 2024년 4월 형집행정지 조치를 받았으나 같은 날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사망 당시 나이 66세였다. 피고인이 사망하면 일반적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만 이 사건은 예외적으로 사후 재심이 허용돼 궐석 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대규모 비트코인이 전산 오류로 오지급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와 책임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금융당국은 검사 착수와 함께 2단계 입법을 포함한 규제 강화를 예고한 상태다. 11일 취재를 종합하면 빗썸은 지난 6일 ‘랜덤박스’ 이벤트 보상 입력 과정에서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잘못 설정해 총 62만BTC를 오지급했다. 249명에게 총 62만원을 지급해야 했지만 1인당 비트코인 2000개, 약 2000억원이 지급되는 방식으로 전산상 잔고가 비정상 생성됐다. 빗썸은 사고 발생 약 35분 만에 거래와 출금을 차단했다. 문제는 일부 당첨자가 이미 1788BTC를 매도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회수됐으나 약 125BTC가 아직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언론은 미회수 규모를 약 130억원으로 추산했다. 전산 구조 쟁점…“실제 발행 아닌 장부상 오류” 법조계는 우선 빗썸이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비트코인을 ‘지급’할 수 있었던 전산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거래소가 실제 보유하지 않은 비트코인을 ‘찍어낸 것’인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가상자산 전문 변호사들은 중앙화 거래소가 내부 전산 서버에서 잔고를 조정하는 ‘장부 거래’ 구조를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블록체인에서 코인이 새로 발행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사건은 비트코인이 생성됐다기보다 내부 데이터베이스에만 존재하는 ‘유령 잔고’가 표시된 성격에 가깝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준비금 증명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순간적인 오류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고 비정상 수량이 입력될 경우 즉시 시스템을 멈추는 ‘하드 스톱’ 등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일반 이용자 기능이 아니라 관리자 보상 기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상한선이나 검증 로직이 느슨하게 적용되는 ‘취약지대’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형사처벌 가능성은…“구성요건 입증 부담 커” 두 번째 쟁점은 오지급된 가상자산을 처분한 이용자에게 형사책임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다. 법조계에서는 이용자의 처분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은 엇갈리지만, 오지급 이익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 등 민사책임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법원은 2021년 12월 알 수 없는 경로로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을 사용한 사건에서 가상자산을 배임죄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반면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건에서는 전산상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매도해 시장 혼란을 야기한 직원들이 처벌됐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관련 제도 환경이 달라진 만큼 동일한 결론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결국 현행 규율 체계상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구성요건 해당성과 고의 입증 부담이 크고, 적용 법리 자체도 다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형사 쟁점과 별개로 민사책임은 비교적 명확하다는 해석이 많다.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이익은 반환해야 한다는 부당이득 반환 원칙에 따라, 오지급 자산을 매도하거나 현금화해 얻은 이익은 반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8월 서울고법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이 서버 오류로 발생한 잔고 회복을 둘러싸고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 소송에서 이용자의 반환 의무를 인정했다. 원물 반환이 원칙인 만큼 이미 현금화하거나 다른 가상자산으로 전환한 경우 반환 범위와 가액 산정을 둘러싼 추가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원물 반환이 원칙”…규제 강화 예고 정부와 감독당국은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은 반환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빗썸이 이벤트 당첨금 2000원을 고지했던 점을 근거로 “부당이득 반환 대상은 명백하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원물 반환이 원칙”이라며 오지급 코인을 매도해 현금화한 투자자들이 “재앙적인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도 당시보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한 경우, 원물 반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개별 거래소의 단순 실수가 아닌, 거래소 전반의 내부통제와 책임 구조 문제로 보고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제 금융감독원도 빗썸에 검사 착수를 사전 통지한 뒤 정식 검사에 돌입했다. 전산 오입력 가능 구조와 이상 징후 차단 프로세스 등 정보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을 집중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도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강경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부과와 외부 기관의 주기적 보유 현황 점검 의무화, 전산 사고 발생 시 사업자 무과실 책임 규정,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이 거론된다. 거래소 지배구조를 둘러싼 ‘50%+1주’ 논쟁과 대주주 지분율 15~20% 제한안, 특수관계인 합산 규제 등도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 현안질의를 예고했으며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의장과 현 빗썸 경영진이 출석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와 거래소의 신뢰 인프라 성격이 커진 현실에 비해 법적 지위와 책임 규율이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잘못 들어온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흥청망청 써버리면 결국 전액 반환 의무와 추가 비용 부담으로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유사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리자 권한을 포함한 거래소 내부통제 구조를 전면 재설계하고 비정상 잔고 생성 단계에서 자동 차단되는 기술적 장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리로 근무하며 8년간 13억 원이 넘는 공금을 빼돌린 50대에게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이은혜)는 1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58)에 대해 A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원주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리 업무를 담당하며 2017년부터 2024년 2월까지 180여 차례에 걸쳐 13억 원이 넘는 관리비 등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관리사무소는 자체 회계감사를 통해 2018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170여 차례에 걸쳐 13억 원 이상이 제3자 계좌로 이체된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이후 검찰은 범행 시점을 2017년으로 앞당겨 보고 해당 기간 180여 차례에 걸쳐 13억 원이 넘는 규모로 횡령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무죄를 주장한 400만 원 상당에 대해서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전체 횡령 규모와 범행 기간, 피해 회복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형량을 낮출 사정은 아니라고 봤다. 이에 따라 1심의 징역 4년 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피해액이 거액인 점, 피해가 대부분 회복되지 않은 점, 아파트 입주민들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으며 1심 선고 이후 A씨와 검찰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사건에서 ‘구속’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국가형벌권 실현을 위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강력한 처분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원칙이 아니라 예외로 두고 있으며, 구속이 타당한지 여부를 다시 판단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바로 구속적부심사와 보석이다. 이 두 제도는 모두 구속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청구(신청) 시기와 판단 기준은 분명히 다르며, 무분별하게 신청하여 기대만 키웠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법원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어떤 사정이 있을 때 기존 판단을 바꾸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구속적부심사는 법원이 구속의 적법 여부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절차다. 최초 구속결정이 적법한지 여부에 더하여 구속 이후 새로 발생한 사유까지 포함하여 구속을 계속할 필요성이 여전히 있는지를 판단한다. 구속적부심사는 구속된 피의자, 변호인,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나 가족, 동거인 또는 고용주가 청구할 수 있다. 공소제기 전까지 청구 가능하며, 수사 방해 목적 등이 없는 경우 청구서 접수 시부터 48시간 이내에 심문이 진행된다. 구속적부심사에서 법
“변호사님, 저는 회사를 살리려고 한 일입니다. 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접견실에서 마주하는 기업인이나 자금 담당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피고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검찰의 공소장에는 ‘업무상 횡령’ 혹은 ‘업무상 배임’이라는 무거운 죄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죄명은 1심 법정에서 실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구치소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난 뒤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역시 비슷하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억울함이 아니라 논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재산 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은 ‘불법영득의사’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다. 횡령과 배임을 가르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나를 위해 돈을 썼는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을
같은 제복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각종 복지와 예우 제도에서 교도관은 반복적으로 제외되고 있다. 제복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혜택과 지원 제도를 살펴보면,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빠져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호국원 안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마저도 같은 제복공무원인 교도관들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소외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교도관 개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내가 퇴직 교도관 역시 호국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곳에 안장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는 교도관 전체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 직업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호를 되찾기 위함이다. 교도관의 업무는 단순히 수용자를 관리·감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교도관들은 어떤 죄명으로 수용되었든 수용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운동시간과 종교집회 참가 등을 철저히
잘못된 한 번의 판단은 이후의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특히 전력이 있는 행위가 또다시 반복되었을 경우 이후의 선택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술기운이 남아있던 저녁, 경찰의 정차 신호 앞에서 그 기로에 서게 됐다. 그에게는 이미 두 차례 음주 운전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린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공포감에 중대한 판단 착오에 빠져든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를 생각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를 통해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하나의 실수가 연쇄적인 오판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더 큰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형사사건을 다루다 보면 이런 케이스를 흔히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었겠지만, 이것이 수사기록상에 남게 되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의뢰인처럼 반복 전과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과 법원의 시각은 냉정하다. 음주 운전에 무면허 운전, 여기에 사문서위조까지 더해져 의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조그맣고 나를 닮은 너를 두고 난 무책임하게 집을 나와버렸지. 본래 1년의 별거를 약속했지만, 세월은 기약 없이 10년이나 흘러버렸다. 달력을 헤아려 보니 벌써 너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더구나. 이곳에 와서 네 또래 정도 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리 마음이 가는지…. 은연중에 나는 너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밖에 있을 땐 뭔가 준비가 되어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벌써 다른 가정을 꾸렸는데 내가 나타나면 마음의 상처를 후벼파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 또 지금의 내 초라한 행색으로 인해 서로 마음만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젠 모든 걱정을 다 걷어버리고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단다. 내성적으로 자란 탓에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에서 혼란을 많이 겪었어. 그런 전철을 밟아보았기에 이혼만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혼자만의 다짐으로 되는 것은 아니더구나. 훗날 아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너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래도 가슴
함께 수감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접견실 유리 너머로 내 모습을 보며 펑펑 울더라고….” 하는 짠한 경험담이 그것이다. 사회에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교정시설에 들어간 것이 그만큼 큰 비극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하긴, 어찌 보면 사는 동안 인간이 맞이할 수 있는 비극 중 죽음 다음으로 큰 비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정시설에 있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루는 의료과에 가려고 나왔는데, 이미 같은 사동의 다른 재소자 한 분이 먼저 나와 계셨다. 덥수룩한 수염, 불안한 눈빛.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공황장애와 조현병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나 또한 양극성정동장애와 공황장애로 긴 시간 고생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쓰여 의료과에 다녀오는 내내 챙겨주게 됐다. 거실로 돌아가던 중 문득 나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마음가짐이 떠올라 한마디 건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을 뗐다. “…○○씨, 생각을 바꾸면 좀 괜찮아져요. 잘 생각해 봐요. 여기 생활이 뭣 같고, 오고 싶어서 온 곳은 아니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용자입니다. 개간 이후부터 꾸준히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열혈 독자입니다. 유익한 정보도 많고, 늘 수용자 입장을 대변해 주셔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를 살려주신 교도관님 한 분께 감사함을 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5년 6월에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중점관리 대상자입니다.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잃고, 제 인생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경주교도소에 있을 당시 수면제를 털어 넣고 극단적 시도를 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는 위급했기에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자신을 보면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져 비관적인 생각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만난 함수호 계장님은 그런 제게 은인이 되어주셨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계장님은 저뿐만 아니라 고민이 있는 수용자들이 있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항상 수용자 편에 서서 도와주십니다. 관구팀장님이라 항상 바쁘신데도 도움을 요청하면 제
나는 마약 판매 혐의로 구속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4년 정도 살고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고된 형량은 내 예상보다 두 배는 높은 8년이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긴 글렀다며 엄살을 떨고 죽네 사네 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형이 확정되면서 만기출소 날짜를 통보받고 좌절한 지 약 보름 만에 옛날에 있었던 일로 인해 추가 건 수사가 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애꿎은 하늘 탓을 하다가 ‘죄는 내가 지었지, 하늘이 지었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대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행유예 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1년 2개월이 확정되어 내 총 형기는 9년 2개월이 됐다. 8년을 선고받았던 날 그토록 절망했는데, 추가 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사하게도 내 가장 간절한 바람은 ‘제발 8년만 살고 나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였다. 그 마음의 변화가 스스로 우습기도 했다. 지금은 ‘나, 약은 했지만 나약하지는 않다’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중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