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3층 단독주택의 가격은 약 9억원이었다.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약 3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30년 전에도 삼성동은 강남 지역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정계 인사들과 그룹 총수, 성공한 사업가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개인 정원을 갖추고 집의 평수만 150평이 되는 이 3층 집의 주인은 한약 도매상을 운영하던 100억대 자산가 A씨 부부였다.
1994년 5월 19일 삼성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의 집이었다. 집 안에는 A씨 부부와 큰아들 B씨, 그리고 B씨의 이종사촌 C군이 머물고 있었다. 화재 발생 이후 A씨 부부는 현장에서 숨졌고 B씨와 C군은 다행히 가벼운 화상만 입은 채 화를 면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가스 누출로 인한 단순 화재로 판단했다. A씨 부부 시신은 새까맣게 탄 상태였고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그런데 부부의 시신을 인계받은 영안실 직원이 강남경찰서에 연락을 해왔다. “탄화 시신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곧장 영안실로 달려가 시신 상태를 확인했다. 실제로 부부의 몸에는 자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자상의 형태가 ‘난도질’을 연상케 할 만큼 잔인했다. 모두 100여 곳, 이른바 ‘오버킬’이었다. 곧이어 화재 감식 결과 현장에서 휘발유가 발견됐다는 보고도 이어졌다. 형사들은 삼성동 주택 화재 사건을 즉시 강력 사건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B씨는 부모님을 화마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괴로워했다. 하필 이번 사건이 미국 유학 중이던 B씨가 잠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벌어졌던 것이다. B씨가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경찰들은 수사망을 좁혀가며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 사망한 부부의 주변 인물을 모두 탐문했지만 부부를 그토록 잔혹하게 해칠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인 제보는 병원에서 나왔다. B씨의 화상을 치료해 줬던 간호사가 B씨 머리에는 상처가 없는데 머리카락과 핏덩어리가 뒤엉켜 있었고 발목에는 누군가에게 물린 치흔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형사들은 B씨의 행적과 부모와의 관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20대의 B씨는 유복한 부모 밑에서 유흥을 즐기던 이른바 ‘오렌지족’이었다. 미국 유학까지 갔지만 도박에 빠져 빚을 지기 일쑤였고 부모에게 외제차를 사달라며 받은 돈까지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결국 1994년 1월 귀국해 부모 몰래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제3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다 아버지 A씨에게 들켜 크게 혼이 나기도 했다.
B씨의 종아리에 남아 있는 치흔이 사망한 어머니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B씨를 존속살해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다 집에 불을 지른 것도 B씨였다. 부모의 유산을 노린 계획 살인이었다.
범행 방식도 기괴했다. 속옷만 입고 몸에 침대 시트를 두른 채 부모가 잠든 방에 들어가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옷에 혈흔이 튈 것을 우려한 행동이었다. 이때 B씨의 어머니가 방어하려다 그의 종아리를 물었던 흔적이 사건의 스모킹 건이 됐다.
1994년 11월 5일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사형선고를 피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1995년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한때 강남을 활보하던 오렌지족 B씨는 사형수의 신분이 되어 현재까지 수감 중이다.
살인까지 감행하며 받으려 했던 부모의 유산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민법 제1004조는 고의로 직계존속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고의로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상속자격을 박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