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프로야구 구단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일고를 졸업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호성을 1차 2순위로 지명했다. 그가 받은 등번호는 27번. 이 씨는 당시 해태의 타격코치였던 대선배 김봉연의 번호를 물려받으며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호성은 그에 부응하듯 입단 직후부터 4번 타자로 불려 갔고, 2년 연속으로 KBO 골든글로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로 호명되는 등 일약 스타 선수로 떠올랐다. 각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이호성의 이름은 18년 뒤 다시 한번 매스컴을 장식하게 된다.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네 모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바로 이호성이었다.
화려하게 데뷔해 해태의 주축 타자로 활약했던 이호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1년 프로야구선수협회장 활동을 끝으로 은퇴한 이 씨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게 된다. 처음엔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연고지인 광주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웨딩홀을 열었고, 그게 잘되면서 더 큰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호성이 새롭게 손대기 시작한 사업은 스크린 경마 장외 발매소였다. 사업권을 따낸 이호성은 100억의 투자금을 끌어들여 7층짜리 건물을 세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경마장 사업이 백지화되며 이 씨의 사업도 불가해졌다. 100억이었던 투자금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270억의 빚이 되었다.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이호성은 그 뒤 부동산 투자 유치 등의 명목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횡령하다 구속되었고,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아내와 이혼까지 하게 된 이호성은 투자자들의 눈을 피해 서울로 도피했다. 바로 이때 식당을 운영하던 김 씨(여)와 만나게 된다. 남편과 사별 후 세 딸과 살아가던 김 씨는 이호성과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런데 2008년 2월 18일, 김 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게 직원들에게는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겼을 뿐 연락은 두절되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22살, 21살, 15살이었던 김 씨의 세 딸도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김 씨 모녀의 실종을 알아차린 건 아이들의 외삼촌, 김 씨의 오빠였다. 처음엔 단순히 며칠 연락이 닿지 않는 정도로 여겼지만, 조카들까지 보름 넘게 연락 두절되자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은 네 모녀 실종사건을 강력사건으로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네 모녀가 살던 아파트 CCTV와 실종 당일 김 씨의 행적이었다. 경찰은 김 씨가 다섯 곳의 은행을 돌며 총 1억 7천만 원을 인출했다는 사실과 그녀를 비롯한 둘째, 셋째 딸이 집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22살의 첫째 딸은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수사 4일 만에 용의자를 특정하고 출국 금지조치를 내렸다. 그 용의자가 바로 이호성이었다. 김 씨와 둘째, 셋째 딸은 집 안에서, 첫째 딸은 집 밖에서 사라진 가운데, 형사들은 김 씨 아파트 CCTV 영상에서 대형 가방 여러 개를 밖으로 실어 나르는 이호성을 발견했고, 종로에 있던 첫째 딸이 엄마의 전화번호로 온 누군가와의 통화를 끝으로 실종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용불량자였고 이미 7건의 사기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이호성은 본인 명의의 통장이나 휴대폰이 없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아직 피해자들이 사망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경찰은 이호성을 실종사건 용의자로 특정해 전국에 수배를 내리기에 이른다.
용의자와 실종자 모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3월 3일 종로에서 꺼졌던 첫째 딸의 휴대폰 신호가 잠깐 잡혔다가 사라졌다. 휴대폰이 가리키는 곳은 전남 화순, 이호성 아버지의 묘가 있는 지역이었다. 네 모녀 실종을 둘러싼 모든 정황이 이호성의 범죄 혐의점으로 좁혀지고 있을 즈음, 드디어 숨어 있던 이호성이 나타났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공개수배로 압박감을 느낀 이호성은 허무하게도 한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형사들은 망연자실했다. 이호성의 사망으로 실종자들에 대한 단서도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화순에서 결정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 이호성의 요구로 어느 묘지 앞을 파냈다는 인부였다.
그리고 그곳에 김 씨와 세 딸이 있었다. 실종자들은 CCTV 속 이호성이 들고 날랐던 검은 색 가방 안에서 발견되었다. 김 씨와 둘째, 셋째는 질식으로, 첫째는 둔기에 의한 구타로 사인이 추정되었다. 첫째 딸은 심한 구타로 인해 눈도 감지 못한 상태였다. 이 씨가 사망하면서 범행동기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있다. 김 씨가 인출 한 돈을 이호성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며 금전에 의한 범죄로 추정하고 있으나, 프로파일러들은 대스타였던 그가 1억여 원의 돈 때문에 무려 네 명이나 잔인하게 살인했을 리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때 팬들이 사랑했던 스포츠 스타였고, 선수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선후배의 신임을 받았던 야구 선수는 모두에게 철저히 외면받으며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호성의 장례식엔 고인의 영정도, 이름도, 추모객의 방문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