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아동·청소년 강간죄로 복역 중이던 수형자가 소년교도소 같은 거실에서 생활하던 10대 재소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A씨와 피해자 B군은 경북 김천시에 있는 김천소년교도소 C실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같은 거실에서 생활하던 18세 재소자였다. 폐쇄된 수용 공간 안에서 피해자는 낮에는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밤에는 다른 수용자들이 잠든 시간대마다 반복된 추행과 폭행을 견뎌야 했다. 범행은 저녁 시간 수용 거실 안에서 시작됐다. A씨는 피해자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고 입을 맞추는 등 강제추행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에도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12월 4일부터 9일까지 매일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같은 거실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추행을 반복했다. 피해자는 피할 곳이 없었고 가해자와 같은 거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낮에는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한 뒤 밤이 되면 다른 수용자들이 잠든 시간대에 다시 피해를 입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반복된 범행은 추행에 그치지 않았다. “잠 자지 말고 기다려라” 폭행 뒤 협박 같은 달 9일 A씨는 수용 거실에서 피해
2003년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실형이 확정된 이수재씨와 당시 사고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처벌받은 성기수씨, 고(故) 전영도씨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재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23일 의정부지방법원에 이씨와 성씨, 전씨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기존 교통사고 유죄 판결뿐 아니라 목격자들의 위증 유죄 판결까지 함께 문제 삼는 재심 청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운전자는 누구였나”…사고 직후부터 엇갈린 진술 사건은 2003년 9월 28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의 한 군부대 앞 도로에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승용차 한 대가 도로를 벗어나 전신주와 나무를 들이받았고,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이씨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A씨는 숨졌다. 검찰은 이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13% 상태에서 무면허로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이씨는 사고 직후부터 자신은 운전자가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동승자였다고 주장했으며, 차량이 출발할 당시 A씨가 운전석에 앉았고 이씨가 조수석에 탔다는 목격자 진술도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사람은
“홍성록 씨가 화성 부녀자 연쇄 폭행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1987년 5월 13일 KBS 뉴스9는 경기도 화성에 사는 40대 남성 홍성록씨가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가운데 최소 3건의 범인이라고 보도했다. 홍씨가 경찰 조사에서 “가출한 부인이 평소 붉은색 옷을 즐겨 입어 술에 취했을 때 같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을 보면 이상한 충동을 느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해졌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홍씨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는 장면이 강하게 남았다. 그러나 홍씨가 일주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에 끌려간 사람이라는 낙인은 오래 남았고 억울하게 석방됐다는 사정은 쉽게 잊혔다. 이 과정에서 홍씨의 이름과 얼굴, 주소, 직장, 가족관계와 사생활까지 공개됐다. 홍씨는 회사를 그만뒀고 형사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두려워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도 ‘살인자의 자녀’라는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홍씨는 오랜 정신적 고통을 겪다 2002년 간암으로 숨졌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우리나라 대표 장기 미제사건이었
지은 죄의 무게만큼 형을 선고받고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사라진 이들.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살아가지만 그들의 목소리까지 완전히 갇히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의 높은 담장 안에서 쓰인 편지들은 때때로 바깥세상으로 흘러나오고, 그 안에는 법정에서 못다 한 말과 억울함의 호소, 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사건의 조각들이 담겨 있다. 교정시설에 배포되는 신문 중 유일한 법률신문인 더시사법률에는 하루 수십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누군가는 재판에서 못다한 변경을 되풀이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범행의 무게보다 억울함을 앞세우며 재판 기록과 수사기록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025년 6월 1일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가 보내온 편지는 여느 편지와 달랐다. 이씨는 “2020년 8월 안산단원경찰서 형사들로부터 2001년에 발생했다는 강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며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제 DNA가 나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고 했지만 경찰은 제가 어릴 적 본드를 많이 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자백을 요구했다”고 호소했다. 재소자들이 보내오는 억울함의 호소는 대
2022년 12월 25일 오전 11시 21분쯤 경기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이기영의 여자친구 C씨였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시신은 며칠 전 교통사고 문제로 이기영과 만난 뒤 연락이 끊긴 택시기사 A씨였다. 경찰은 C씨를 상대로 사건 경위를 확인한 뒤 이기영을 살해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시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긴급체포됐다. 단순 살인 사건으로 보였던 수사는 곧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A씨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기영이 살던 아파트 명의자가 동거녀 B씨라는 점을 확인했다. B씨는 2022년 8월 초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명의의 신용카드 대출과 사용 내역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기영은 처음에는 “B씨가 갑자기 집을 나갔고 나도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가 자기 명의의 집을 두고 사라질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점, 실종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 B씨가 모습을 감춘 직후 이기영이 새로운 여자친구 C씨와 동거를 시작한 점 등을 추궁했다. 결국 이기영은 “지난 8월 3일 B씨를 살해한 뒤 파주시의 한 강가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택
사람을 죽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의 수감 생활은 어떨까. 세간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의 당사자들은 교도소 안에서도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군가는 사람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방 안에서 조용히 지내고 누군가는 자신의 사건을 웃으며 이야기했다는 말도 나왔다. 또 다른 이는 성별 논란과 억울함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며 다른 수용자들에게 불편함을 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4일 더시사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고유정은 현재 2인실에서 생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는 대인기피 성향이 강해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함께 지내는 20대 수용자와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피해자의 시신조차 온전히 찾지 못하게 만든 잔혹한 범행과 달리 교도소 안에서는 극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외 중개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유정의 수감 생활은 또 다른 모습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현재 4인실에서 생활 중으로 방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또래 나이에 비해 다소 어
25일 <더시사법률>의 취재를 통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양평 두물머리 시신 유기 사건의 실체를 추적했다. 피의자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100일 넘게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21일 배달 기사 이준우 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동료는 실종 직전 그의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진술하며 폭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주변에서는 평소 준우 씨를 폭행하고 금전적으로 착취해온 성모 씨를 유력한 인물로 지목했다. 성 씨는 “불법 도박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이후 경찰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를 통해 1월 14일 밤 성 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준우 씨를 옮기는 장면을 확보하고 긴급 체포에 나섰다. 성 씨는 결국 살해 후 경기 양평 두물머리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수색에도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유가족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사가 답보 상태를 이어가던 가운데 지난 3월 2일 <더시사법률>에 성 씨와 같은 방을 사용 중이라는 재소자의 제보가 접수됐다. 해당 제보자는 “성 씨가 상해치사를 주
2000년대 초 인터넷 보급이 급격히 확산되던 시기, 국내에서는 이전에 없던 형태의 성인 콘텐츠 시장이 형성됐다.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성인 방송은 실시간으로 노골적인 성행위를 송출하며 단기간에 거대한 수익을 만들어냈다. 시청자가 채팅과 후원을 통해 방송에 직접 개입하는 구조까지 결합되면서 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2003년 5월, 한 국내 언론이 캐나다 밴쿠버 현지에 위치한 인터넷 성인 방송국 ‘live○○’를 직접 취재하면서 그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외관은 평범한 주택이었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1층 거실은 촬영장으로 개조돼 있었고 소파 앞에는 카메라와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커튼으로 외부를 차단한 채 조명이 비추는 공간에서 출연자들은 카메라와 채팅창을 동시에 바라보며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은 시청자의 요구에 맞춰 실시간으로 구성됐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요청에 따라 수위 높은 성행위가 즉각적으로 연출됐고 출연자들은 한쪽 눈으로는 카메라를, 다른 한쪽 눈으로는 모니터를 번갈아 확인하며 반응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나 관계는 배제된 채 반복적인 동작이 이어졌다. 이 공간에는 출연자와 운영자, 스태프를 포함해 8명 안팎의 인원이 함께
1994년 9월 27일, 서울 서초경찰서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조서를 쓰기 전에 기자들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지존파보다 더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는 5명을 살해한 폭력조직 ‘지존파’가 검거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직접 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한 이 남자의 이름은 온보현. 훔친 택시로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2명을 살해한 연쇄 강간 살인범이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온씨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다 1979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지만 운전 중 8세 아이를 치는 사고를 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일로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택시 일도 그만두게 된다. 1994년 8월,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고향 집을 찾은 그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마주치고 처음으로 살인 욕구를 느꼈다. 어머니를 학대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살인 계획은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대상을 향했다. 바로 불특정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살인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온씨가 선택한 수단은 택시였다. 택시 운전 경험이
1994년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3층 단독주택의 가격은 약 9억원이었다.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약 3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30년 전에도 삼성동은 강남 지역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정계 인사들과 그룹 총수, 성공한 사업가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개인 정원을 갖추고 집의 평수만 150평이 되는 이 3층 집의 주인은 한약 도매상을 운영하던 100억대 자산가 A씨 부부였다. 1994년 5월 19일 삼성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의 집이었다. 집 안에는 A씨 부부와 큰아들 B씨, 그리고 B씨의 이종사촌 C군이 머물고 있었다. 화재 발생 이후 A씨 부부는 현장에서 숨졌고 B씨와 C군은 다행히 가벼운 화상만 입은 채 화를 면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가스 누출로 인한 단순 화재로 판단했다. A씨 부부 시신은 새까맣게 탄 상태였고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그런데 부부의 시신을 인계받은 영안실 직원이 강남경찰서에 연락을 해왔다. “탄화 시신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곧장 영안실로 달려가 시신 상태를 확인했다. 실제로 부부의 몸에는 자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자상의 형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