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만난 여성이 차단하자 … 세 모녀 살해로 이어져

퀵서비스 기사 가장해 집안 침입
스토킹처벌법, 사건 이후 시행돼

 

2021년 4월 5일 서울경찰청이 한 남성의 신상을 공개했다. 25살의 김모씨였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씨의 범행을 질타하며 그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었다. 이 청원은 등록 이틀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20대 남성인 김씨는 왜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됐을까.

 

2021년 3월 25일, 노원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이었던 세 모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퀵서비스 기사를 위장해 집 안으로 침입했고 20대 여성 A씨와 A씨의 여동생,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 가해자가 바로 김씨였다.

 

김씨의 범죄는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와 A씨는 2020년 11월쯤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 이후 지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2021년 1월 초 PC방에서 처음 대면했고, 이후 두 차례 더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에게 호감을 느낀 김씨는 A씨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인들과 함께한 세 번째 만남에서 두 사람 사이 말다툼이 있었고, 이후 A씨는 김씨에게 더는 만나거나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A씨는 김씨의 연락처도 수신 차단했다. 그럼에도 김씨의 일방적인 구애는 이어졌다. 공중전화로 연락하거나 지인을 통해 문자를 보내는 등 집착적으로 굴었다.

 

A씨는 김씨의 이런 행동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지인에게 보낸 문자에서 ‘집주소를 알려준 적 없는 김씨가 집 앞으로 와 기다리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과 ‘두렵다’라는 심경을 남기기도 했다.

 

만나 달라는 김씨의 요청에 A씨가 끝내 답을 하지 않자 김씨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아이디로 게임에 접속해 다른 사람인 척 A씨에게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근무 스케줄을 알게 된 김씨는 3월 23일 A씨가 출근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A씨를 살해할 목적으로 노원구의 아파트로 향했다.

 

김씨는 A씨가 출근해 집에 없을 것을 알면서도 A씨의 거주지를 찾았다. 근처 마트에서 범행에 사용할 흉기도 훔쳤다. 당시 집에는 A씨의 여동생이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퀵서비스 기사를 가장해 A씨의 집 안으로 침입한 뒤 여동생을 살해했다.

 

그로부터 5시간 뒤 A씨의 어머니가 귀가하자 김씨는 어머니도 살해했다. 그 뒤로 약 1시간가량 집안에서 기다렸다가 A씨가 집으로 들어오자, A씨마저 살해했다. 세 모녀의 사인은 목 부위 자상이었다. 일가족을 연달아 살해한 김씨는 두 차례 자해를 시도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정도에 그쳤다. 김씨의 범행은 이틀 뒤인 3월 25일 A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지인의 신고로 발각됐다.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A씨를 살해할 계획을 갖고 있었을 뿐 가족을 살해한 것은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역시 무기징역을 유지했고 대법원이 2021년 4월 14일 검찰과 김씨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스토킹 단계에서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던 제도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에는 스토킹 행위를 별도의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인 제재가 쉽지 않았다.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면서 국회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나섰다. 1999년 처음 발의된 이후 약 20차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이 법안은 세 모녀 피살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국회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