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땅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의 찬 기운이 유난하게 시려 오는 담장 안의 이 겨울은 외롭고도 서러워라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철창 밖에 두고 온 삶 그립고 또 그리워라 푸념 섞어 숨을 뱉어 다시 한 번 힘을 내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겨울을 안아 본다 지난날의 어긋난 날 후회하며 반성하며 오랫동안 내 맘밭에 자리 잡은 쓴 뿌리를 뽑아내고 갈아엎어 좋은 씨앗 흩어 뿌려 따뜻한 봄 맞을 날을 두 손 모아 고대하리 ○○○교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너의 얼굴을 문득 그려 본다. 미소 짓는 너의 얼굴이 흩날리는 눈꽃 사이로 너는 날 보며 웃는 듯하다. 눈꽃 같은 나의 사랑아, 나와 사랑을 하는 너의 모습이 새하얀 눈꽃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비친다. 내 사랑아, 눈이 오는 날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냐”고 새하얀 눈꽃을 보며 적는다. 너에게 사랑한다고, 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흩날리는 눈에 띄워 너에게 전한다. 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2027년 9월 19일 결혼을 약속한 아내 최나래에 게 남편 상식 드림 ○○○교
존경하는 장관님, 청장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26년째 수용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무기수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은 죄의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 오직 한 가지 희망—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 루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도 못한 상태로 수 감되었지만, 이후 검정고시 합격, 방송통신대 재학, 수십 개의 상장과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에 전념해 왔습니 다. 더불어 법무부 소속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도 출전 해 입상한 바 있습니다. 그간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7년 전부터 최상위 등급인 S1·R1 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단 한 번의 징 계 없이 규율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중 관리대상자’라는 분류 하나만으로 모든 처우 심사에서 자동 제외되고 있다는 현실 앞에 절망을 느낍니다. 자율사동, 중간처우의 집, 희망센터, 자립금 지급, 확대 전화처우, 가족 접견 기회 등은 모두 재범 방지와 사회 복 귀를 위한 제도입니다. 그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죄명만이 아닌 수형생활의 실제 행적을 기준으로 일정 기준 이상 을 충족한 엄중관리대상자에 한해서는 최소한 심사의 기 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환한 대낮,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빛나는 컴 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왜 나는 매번 떨어지는 걸까? 이대로 취업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걸까?” 온갖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바닥 한가운데 누워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벌컥— 엄마는 늘 그렇듯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 왜 또!”라며 이불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만 아팠다. 어둠을 뚫고 방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엄마는 이 불을 확 걷었다. “일 나라!” 방문 너머 비치는 거실 전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실로 나가자 검은 비닐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내고, 싱크대에 물을 받 아 상추와 깻잎을 담그며 말했다. “삼겹살 3만 원어치 사 왔다! 먹자!”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나는 잔뜩 신난 듯한 엄마가 아니꼽게 보였다. 명치가 아플 정도로 속에 꽉 찬 이 답답함을 불효막심하 게도 엄마에게 풀 심산이었다. 그때,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허공에 뒷발차기를 하는 게 아닌가… 육중한 몸매의 엄마가 짧은 다리를 뒤로 뻗어 두어
누구나 어려웠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시절, 우리 집도 풍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 다. 한 지방 대학에 합격한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고, 아빠는 일을 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이것저것 가 리지 않고 일을 다녔다. 엄마가 보내주는 용돈은 아무리 아껴 써도 금방 바닥났 다. 학교생활은 과 대표를 맡을 만큼 적극적이고 재밌게 했다. 하지만 지방대에 다닌다는 열등감이 나를 붙잡았다. ‘더 열심히 공부할걸’ 미련 속에서 1학기를 마치고 집에 올라 왔다. 6월의 초여름, 느즈막한 시간에 한 친구가 날 찾아왔다. 나와 같이 미술학원을 다닌 친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후 그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입시 다시 해보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입시를 또 하라고? 그것도 반수를? 난 자신 없어.” 그렇게 돌아섰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아빠도 일을 마 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엄마, 아빠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 어놓았다. “너는 너밖에 모르니?” “아직도 미술학원비가 80만 원
20여 년 전,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 하철에서 어떤 여자 둘이 말을 건네왔다. 모르는 사람들 이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어찌어찌 이야기 가 오갔다. 내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던 한 여인이 물었다. “요즘 집에 안 좋은 일 있죠? 그거 본인만 해결할 수 있어 요.” 건강했던 동생이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데다 엄마, 아 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풍전등화일 때였다. 솔깃해 진 나는 겁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날이 컴컴해진 지 오 래여서 중간에 주저하는 마음도 생겼지만, 밑져야 본전 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에선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나는 곧바로 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희미하게 켜진 촛불 몇 개, 책상에 펼쳐진 한자 가 득한 책, 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거라는 조상님들 얘 기까지, 모든 것이 내가 잘못된 곳에 왔다는 걸 대변했다. 그제야 빠져나갈 궁리를 했지만 당장은 어려워 보였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미 제사상이 차려졌다고 말했다. 제사상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여하튼 조상님을 위한 것이며, 나는 가진 돈 전부를 내놓 은 뒤 절
창문 밖으로 온 세상을 다 덮을 듯, 내리는 새하얀 눈을 보고 있으니,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로 나의 사랑하는 딸과, 아내. 눈 내리는 걸 좋아했던 아내.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는 딸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던 나. 지금쯤 길을 걸으며 당신은 딸의 손을 잡고 걷고 딸은 이곳저곳 자신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겠지. 보지 못해도, 보이지 않아도 당신과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다시 보려면 수많은 날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딸 사진 뒷면에 편지를 쓰고, 당신과 딸을 생각하며 어렵게 잠을 청한다. ○○○교 아기 잠만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여기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아무렇지 않아지는 날이 올까. 이제는 네 얼굴조차 가물가물 하다고 덤덤한 척,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네가 생각나고 네가 너무 보고 싶고 네가 너무 그립고 그때의 우리가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우리가 어쩔 줄을 모르겠고 나는 아직도 그래! 너는 어때, 잘 지내? 나 없이도.
교도소에 수감된 지 10개월째입니다. 여전히 저는 어머님께 연락 한 번을 못 드리는 겁쟁이입니다. 면회 오시겠다는 어머님을 못 오게 하고 아직은 어머님을 뵐 용기가없다고 피하기만 하는 못난 아들입니다. 하루에 몇 번씩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너무도 보고 싶고 불러 보고 싶은 어머님이지만 좁은 면회실에서 죄수복을 입고 마주할 자신이 없고, 그런 어머님의 우시는 모습을 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기에 이렇게먼저 용기 내어 글을 보냅니다. 엄마, 저 때문에 아파하지 마세요. 저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정말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엄마, 제가 나가는 날까지 제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매섭던 겨울은 흘러간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일 년 네 철의 첫째 계절인 봄이희망과 함께 다가온다.새해 다짐했던 희망과 목표를다시 한 번 되뇌게 하는 봄,대한에 움츠렸던 사람들의 어깨는봄을 맞아 활짝 펴고얼어 있던 입가엔 따뜻한 미소가 생긴다.벌거벗었던 고목들은 거리 사람을 위해푸르른 새 옷을 준비하고,담홍 색깔 벚꽃과 노란 개나리는아름다움을 먼저 뽐내려 사투를 벌인다.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따뜻한 봄!고귀한 생명력도 봄 준비에 활동력이 넘쳐나니,우리는 삶의 행복을 지향하고 정진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