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체포 또는 구속된 사람에게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헌법 제12조 제4항). 형사소송법 역시 변호인의 접견과 서류 수수 등 방어권 보장을 위한 기본 장치를 두고 있다(형사소송법 제34조). 문제는 이 권리가 규정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수용자와 가족이 가장 큰 혼란을 겪는 시점은 사건 직후다. 정보는 부족하고 시간은 촉박하다. 이때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판단은 감정과 불안에 의존하게 된다. 그 틈에서 과장된 말이나 확인되지 않은 약속이 개입할 여지도 커진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라 수사를 위한 강제처분이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를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로 제한하고 있으며(형사소송법 제70조), 영장실질심사는 이러한 요건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이 이루어지는 절차다(형사소송법 제201조의2). 이처럼 판단 기준이 비교적 명확함에도, 실제 대응은 준비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가족이 준비할 수 있는 자료는 의외로 단순하다. 주거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임대차계약서, 등기부 등), 직업과 생계를 보여주는 자료
사무실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건기록이다. 파일을 펼치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사실관계’다. 법률 문서는 결국 사실관계를 토대로 작성되며, 그 기초가 흔들리면 그 위에 세워진 논리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적 분쟁에서 당사자들은 종종 결론을 먼저 묻는다. “이길 수 있는지”, “실형 가능성이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앞서 확인되어야 할 것은 사건의 사실관계다. 기록과 자료를 통해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률 문서는 종류와 관계없이 일정한 구조를 갖는다. 소장, 준비서면, 변호인 의견서, 항소이유서 모두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된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평가인지, 다툼 없는 사실과 입증이 필요한 사실은 무엇인지, 핵심 쟁점과 부수적 요소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구분이다. 이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장의 표현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법원은 표현의 화려함보다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문서는 제목, 사실관계, 법리, 결론의 구조를 따른다. 제목은 방향을 제시하고, 사실관계는
PD: 최근 대법원이 실제 마약이 들어있지 않은 물품을 수거한 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경우 실제 마약이 없었는데도 처벌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김변: 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물건의 실제 성질’이 아니라 ‘행위자가 이를 무엇으로 인식했는지’입니다. 대법원은 물품 자체가 마약이 아니더라도, 마약이라고 인식하고 취급했다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PD: 구체적인 사건 내용은 어떻습니까? 김변: 피고인은 성명불상의 판매상 지시에 따라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했습니다. 해당 상자에는 실제로는 장난감이 들어 있었지만, 피고인은 그 안에 마약이 들어 있다고 인식한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이를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이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PD: 실제 마약이 없었는데도 유죄가 인정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변: 해당 법률은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소지·양수한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물품이 실제 마약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마약으로 인식하고 취급한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상자를 ‘마약이 들어 있는 물건’으로 인식
월요일 월요일 새벽 5시 1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구속된 의뢰인의 시간은 밖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나의 오늘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으로 한 주의 아침을 연다. 출근 전 루틴은 늘 같다. 오늘 접견이 예정된 이들의 사건기록 핵심 쟁점을 1쪽으로 정리하고, 접견에서 반드시 확인할 질문 7개를 작성하고, 접견 후 즉시 실행할 목록을 확인한다. 오전에는 항소심 사건기록을 다시 훑었다. 점심 무렵, 구치소 접견을 다녀왔더, 나오는 길에는 오늘 접견 내용을 정리한다. 내용이 문서로 남아야 접견이 완성된다. 화요일 화요일은 오전에는 가족 상담이 있었다. 가족들은 대체로 두 가지를 묻는다. “언제 나올 수 있나요?” 그리고 “정말 가능한가요?” 나는 그들에게 가능성의 범위를 숫자로 명확하게 설명한다. 오후에는 사건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책상에 사건기록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원칙이다. 기록이 쌓이는 순간 그 안에 있는 사람도 함께 먼지 묻은 채 쌓인다. 그래서 나는 사건을 3단계로 분류해 곧장 검토한다. A는 서면 검토로 즉시 국면이 바뀌는 사건, B는 추가 증거 확보
Q.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사기죄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기죄 부분은 현재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 중입니다. 사기죄로 구속되기 이전, 저는 성매매 알선 행위에도 관여한 바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원래 성매매 알선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다가, 이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보관돼 있던 성매매 알선 장부가 함께 압수되었습니다. 이후 검찰은 기존의 사기죄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더해 성매매 알선 혐의까지 포함해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해당 성매매 알선 장부는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위를 벗어난 증거라는 이유로 위법수집증거로 판단되었고, 그 결과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과거 함께 성매매 알선에 관여했던 공범들에 대해 다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이 궁금합니다. 이미 압수수색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증거로 판단되어 무죄가 선고된 성매매 알선 장부에 대해 저에게 다시 동일한 혐의로 기소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는 해당
Q.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술자리를 가진 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일정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이 이어졌고, 이후 성관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관계 도중 특정 행위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고, 이후 돌연 성폭행을 당했다며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당황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상대방은 사건 전까지는 별다른 거부 의사를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이러한 신고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이처럼 성관계 도중 특정 시점에 거부 의사가 표현된 경우, 이전까지의 상황과 무관하게 성범죄로 판단될 수 있는지, 또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태율의 김상균 변호사입니다. 사안을 정리해 보면, 성관계가 진행되던 과정에서 특정 시점에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고, 이후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며 신고에 이른 상황으로 보입니다. 질문의 핵심은 관계 도중 표현된 거부 의사가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있다고 이해됩니다. 이와 같은 사안에서는 강간죄 또는 준강간죄의 성립 여부가 쟁점이 됩니다. 판단의 기준은 ▲폭행이나 협박이
Q. 안녕하세요. 저는 조건 만남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저는 아청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저는 상대의 외모가 성인처럼 보였는데, 이 부분도 법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또 상대방이 ‘미성년자임을 밝혔다’ 고 주장하면 해당 진술만 가지고도 유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요? 더불어 이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성범죄 재판과 함께 판단될 수도 있는지, 만약 병합 되지 않고 따로 재판을 받게 되면 형량이 더 무거워지는지도 궁금합니다. 저처럼 이런 상황에 놓인 경우 가장 중요한 대응 원칙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태율의 김상균 변호사입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 13조 제1항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행위자가 ‘상대방이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했는가’ 하는 점, 즉 범죄의 ‘고의 (故意)’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고의범 처벌을 원칙으로
2017년 ‘미투 운동’이 계기가 되어 형성된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우리나라 성범죄 판단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대표적으로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특수성·맥락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사회구조와 성별 권력관계, 2차 피해 위험 등을 고려해야 한다” 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고 이후 하급심 역시 이러한 판단 기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른 양상을 보게 되었 다. 성인지 감수성은 본래 실제 피해가 존재함에도 ‘증거 부족’ 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던 사각지대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리였다. 그런데 이 법리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과 도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향으 로 오남용되면서, 의도치 않게 무고한 가해자가 양산되는 부 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기억의 단편화, 트라우마로 인한 시기 혼동, 진술 과정의 왜곡 등 다양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완벽하게 일관된 진술’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나는 여러 사건에서 피해자가 겪는 이러한 현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일관성 결여의 원인이 ‘트라우마 때문인지’, ‘허위신고 때문인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명확
Q. 저는 다수의 전세 사기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사건(1형, 2형)은 이미 총 15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고, 1심에서 형 면제 판결을 받았으나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사건(3형),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4형), 그리고 앞으로 기소될 56건의 추가 사건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2025년부터 서민 대상 사기 범죄의 법정형이 최대 30년까지 상향 조정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개정법이 시행될 경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기소될 제 사건들에도 새로운 법이 적용되어 형량이 가중될 수 있는지, 법률 전문가의 정확한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25년에 사기죄의 법정형을 가중하는 내용으로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개정법 시행 이 전에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소급하여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귀하의 항소심 진행 사건, 1심 진행 사건, 그리고 향후 추가될 사건 모두 범죄행위 당시의 법률(舊法)에 따라 처벌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 정주의’와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따 른 것입니다. 가. 핵심 법리: 행위시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는 가해자에게는 형사처벌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되고, 피해자에게는 실질적인 회복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정신적·인격적 침해를 금전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의금은 늘 논란과 갈등을 낳는다. “얼마가 적정한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합의는 ‘형법’ 제51조의 ‘범행 후 정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감경 요소로 평가된다. 특히 처벌불원 의사가 포함된 합의는 양형기준상 특별감경 사유로 작용하여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대구고등법원 2018. 9. 20. 선고 2018노242 판결)(서울북부지방법원 2019. 1. 11. 선고 2018고합383 판결). 다만 법원은 합의서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합의가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졌는지, 합의금이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적절한지,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 세심하게 따진다. 미성년자나 장애인처럼 취약한 피해자와의 합의라면 그 진정성을 더욱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최근 판례의 흐름이다(대구고등법원 2018. 9. 20. 선고 2018노242 판결). 반대로, 겉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강압적 분위기에서 합의서가 작성되었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