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한 상담 중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상담자는 항소심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 대다수와 합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누구나 집행유예까진 몰라도 적어도 감형은 될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고 한다. “범행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합의를 했어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며 항소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상고를 해서라도 결과를 바꿀 수 없겠냐고 했는데,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기대하시는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변호인 접견실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피해자와 합의를 했음에도, 단 1일의 감형도 허락되지 않은 이 판결 앞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정의로운 판결인가?” 요즘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엄벌주의’가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자리 잡고 있다. 범죄 뉴스가 보도되기만 하면 댓들 창에는 빠짐없이 “무조건 세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언론도 분위기를 부추긴다. ‘합의로 형량을 줄이는 시대는 지났다’, ‘공탁으로 감형받는건 안 된다’는 식의 논조가 공공연히 소비된다. 이러한 기류는 이제, 실제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탁’만 했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수사 단계에 있는 피의자분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답변 위주로 구성해보려 합니다. 구치소에 계신 분들 중에는 사건이 이미 재판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지만, 이제 막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경찰조사를 마치고 검찰 조사를 앞둔 분들, 또는 아직 받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내가 왜 구속된 건가요?”, “조사받을 때 진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처럼 막막한 질문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영장판사는 알려주지 않는 ‘진짜 이유’와 ‘팁(TIP)’에 대해 이번 글에서 차근차근 설명드리겠습니다. 수사 절차에 대한 불안과 궁금함을 느끼시는 분들께, 이 글이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저는 얼마 전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로 오게 되었습니다.구속영장이 청구된 형사사건에서, 영장이 기각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A.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은 당연히 ‘구속 여부’에 대한 것입니다.이와 관련해 검찰청에서는 「구속영장 청구 및 발부, 기각현황」을 정리하여 공개하고 있는데요. 실제 수치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작년 2024년 한 해 통계를 보면, 총 21,469건에 대해 구속영
1심에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항소심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억울한 마음에 무죄 주장을 그대로 밀고 가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다. “나는 정말 결백한데, 1심 재판부가 왜 그 증거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을까?”, “유리한 양형 사유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왜 이렇게 일방적인 판단을 했을까?” 이런 답답함은 항소를 결심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다. 결국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기준으로 항소심 변론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쯤 멈춰서 냉정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2심에서는 무죄 주장이 통할 수 있을까?’.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을 2심에서 반복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항소 기각’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새롭게 보는 건 사실관계 자체라기보다, 1심의 판단에 명백한 잘못이 있었는지여부다. 즉, 같은 이야기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죄에 부합하는 증거를 냈는데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재판부가 증거를 아예 안 보고 누락한 게 아닐까?’, ‘항소심 재판부는 다시 봐주지 않을까?’. 그러나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재판부는 증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형사 재판의 숨겨진 함정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여겨 적극적으로 주장하시지만, 실무에서는 재판부가 경찰과 검찰, 즉 수사기관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쟁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을 잘 모르고 대응하면 진짜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퉈보지도 못한 채 재판이 끝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법 조문상으로는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 재판에서는 의외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 지금 겪고 계신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글을 읽으시면서 천천히 짚어보시길 바랍니다. Q.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서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마약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꾀어낸 마수대의 수사 방식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A. 재판 과정에서 ‘함정수사’를 이유로 공소기각을 주장하는 장면, 종종 보게 됩니다. 피고인 측에서는 위법한 수사로 기소가 이루어졌으니, 애초에
변호인 접견 시간에는 대부분 사건과 관련된 논의가 주를 이루지만, 가끔은 의뢰인과 구치소 생활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갑자기 의뢰인들의 얼굴색이 나빠지면 걱정이 되는데 평소 지병이 있으시거나 날이 더운 여름엔 특히 걱정이 더 크다. 변호사와 의뢰인이라는 계약 관계로 만났지만 사건 논의를 위해 깊은 얘기까지 하다 보면 인간적인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에서 지내시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이 드는지 여쭤보면 공통된 답변이 있다.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다는 것이다. 십몇 년 전에 처음 구치소를 다니기 시작할 때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유죄가 나올 수도 있고, 형량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본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아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장 눈앞에 닥친 본인의 재판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나. 당시 내 짧은 생각은 그랬다. 계절이 변하고 변호사로서 지낸 시간이 쌓여 가면서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한다. 재판은 재판이고, 그와 별개로 안에서는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고 각자가 적응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뢰인들이 같은 방 사람들과 지내기 편하다 하시면 나도 기분이 좋고, 안 맞아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 걱정이 된다.
편집장님이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구치소에 계신 안 사람들이 평소 궁금해하시지만 좀처럼 자세히 알기 어려운 주제들을 정해 하나씩 풀어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형사 재판절차’를 다루면서 독자 여러분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앞선 두 편을 통해 체포부터 항소심 종료까지의 절차에 대해 함께 살펴보셨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 단계, 3심 절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대법원에서 이루어지는 3심은 앞선 1심, 2심과는 구조가 다른 재판입니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이 봄날의 단비처럼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Q.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단 상고를 제기하는 절차 자체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는 절차와 동일합니다.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상고장을 제출하면, 항소심 법원은 14일 이내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대법원에 보냅니다. 이후 대법원은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피고인에게 보내고, 피고인은 통지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기간 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고기각 결정을 받게 됩니
얼마 전 당황스러운 상담 전화를 받았다. 로펌 두 곳과 상담을 했는데 양쪽 말이 너무 달라서 누구 말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 번째로 우리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처음 상담한 곳은 경찰 단계에서 쉽게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두 번째 상담한 곳은 지금 당장 구속될 수도 있으니 바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인데도 입장이 180도 다르니 상담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담자의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코인 구매대행 아르바이트를 하여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상태였다. 본인 계좌로 돈을 입금받아서 코인을 구매하고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송금한 것인데, 이는 범죄 조직에서 수익금을 세탁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내가 놀란 이유는 상담자가 코인 구매를 위해 입금받은 돈의 액수와 수수료 때문이었다. 어림잡아도 50억 이상을 받아서 코인을 구매했고, 그로 인해 받은 돈이 한 달 동안 7천만 원 이상이란다. 그 과정에서 계좌 지급 정지도 여러 번 되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연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한 달 일하고 받았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인 일이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돈의 출처에 문제가 없다면
편집장님이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법.알.못 상담소’ 코너는, 구치소에 계시는 안 사람들이 평소 궁금해하시지만 상세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주제를 정해서 설명을 드리는 코너입니다. 지난 코너부터 ‘형사 재판 절차’를 주제로, 체포부터 1심 공판기일이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앞선 내용에 이어서 그 후 진행되는 1심, 2심, 3심 재판 과정을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구치소 안에서 막연한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이 봄날의 단비처럼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Q. 1심 재판은 몇 번이나 진행되나요? A. 지난 회차 ‘법.알.못 상담소’에서는 기소 이후 대개 일주일 내외로 공소장을 받으시게 되고, 2~3주 안에 1심 첫 공판기일이 지정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저희가 실제 상담 과정에서도, 공소제기 직후 단계에 있는 분들로부터 “1심 재판은 몇 차례나 진행되나요?”, “첫 공판기일에 바로 선고까지 나오는 건가요?” 등과 같은 질문을 자주 받곤 하는데요. 1심에서 공판기일이 몇 차례 열릴지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사건의 성격과 쟁점의 복잡성에 따라,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