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 사건에서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가장 흔한 논리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쓰라고 통장을 준 것이 아니라, 도박사이트 운영에 사용되는 줄 알고 제공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재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보통 대포통장을 개설하여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사기 리딩방과 같은 범죄 조직에 제공한 경우, 그 과정에서 유령 법인을 설립했다면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죄 및 동행사죄가 적용된다. 이후 대포통장으로 입금된 자금을 인출하거나 코인으로 환전하는 등의 자금세탁 행위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위반에 해당한다. 나아가 이러한 자금세탁을 통해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위반죄 또는 사기죄의 공동정범 또는 방조범으로 기소된다. 즉, “통장을 넘기긴 했지만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사용할 줄 알았다”는 주장은 곧 일부 무죄를 주장하는 셈이지만, 단순히 “몰랐다”는 말만으로는 무죄를 받을 수 없다. 무죄 주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첫째, 피고인 측에서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과 다른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하며, 둘째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
최근 ‘인천 총기 살인 사건’으로 사형 집행 논란이 다시금 일고 있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집행 관련 절차도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1997년 12월 30일에 23명이 사형 집행된 이후 28년째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제도라면 차라리 사형제를 폐지하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사형 제도의 존치와 집행 필요성을 여전히 주장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사형제 폐지의 근거로는 보통 인간의 존엄성과 오판 가능성이 주로 언급된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사형이 선고된 사건들에서 다른 범인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된 경우는 없었으며, 과학 수사 기법의 발전과 전국적인 CCTV 보급 등으로 인해 범인 검거는 과거보다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오판의 가능성을 사형제 폐지의 주된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형제 폐지의 가장 강력한 논거로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남게 된다. 필자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관점에 동의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이유에서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 이유는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이 ‘추징’과 관련해서 자주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추징’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한 차례 설명해 드린 바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해석이 필요한 질문들에 답해드리고자 합니다. 추징이 선고되는 사건에서는, 범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피고인의 기존 재산까지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에 계신 분 중에는 당장 선고될 형량보다 추징금 문제를 더 걱정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요. 제가 자주 받는 질문들을 위주로, 최대한 알기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추징 선고에 대비해 방향을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Q. 제가 무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한 것이 적발되어 대부업법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면회 온 가족들이 제 계좌가 모두 정지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통장에 있던 돈은 쓸 수가 없게 되는 건가요? A. 질문자분의 경우에는 ‘추징보전조치’가 내려진 상황으로 보입니다. 추징보전이란 민사 절차로 치면 ‘가압류’와 유사한 개념인데요. 추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서, 피의자가 재산을 미리 빼돌리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서 ‘차용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나 재판을 받게 된 분들이 자주 하시는 질문들에 대해 짚어보려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은행이나 대부업자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등 주변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릴 때는 정말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도 갚을 돈을 모으지 못해서 말미를 좀 더 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이렇게 돈을 빌렸다가 빌린 돈 전부가 됐든 일부가 됐든 갚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민사소송을 당하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믿고 빌려줬는데, 나를 속였어?”라는 감정까지 개입되게 되어 사기죄로 형사고소까지 하는 경우도 꽤나 많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차용 사기’ 사건으로 막막함을 느끼고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저는 돈을 빌릴 때 마음속으로 “어려울 때 도와준 만큼 꼭 기한 내에 다 갚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제가 애초에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면서 사기죄로 고소했어요. 전 너무 억울한데, 제 솔
많은 분들이 구속영장 실질심사장에서 “혹시라도 영장이 발부될까 봐” 검찰이 적시한 혐의를 인정하고 판사에게 가급적 순응적인 모습을 보여야 영장을 기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실질심사는 전체 재판 과정 중 일부일 뿐이며, 말하자면 단 한 번의 전투에 불과하다. 이때 섣불리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취해 기각 받겠다는 전략은 눈앞의 구속만 피하려는 단기적 전략일 수 있겠지만, 이후 본안 재판에서 불리한 고리를 만드는 장기적 패착이 될 수 있다. 구속영장 청구서나 의견서에는 수사기관이 파악한 범죄사실이 기재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조차 사실관계가 완전히 확인된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영장 발부가 목적이기에 혐의의 중대성, 증거인멸 우려 등을 강조하며 다소 과장되거나 일방적인 사실 기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수사 중이므로 당연히 증거와 진술은 계속 보강·변형될 수밖에 없고, 이후 정리된 내용이 공소장으로 확정된다. 구속영장 청구서야말로 ‘공소장의 예고편’이자 수사의 밑그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심사에서 단순히 기각을 목표로 검찰 의견을 모두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한 번 인정해 버리면 나중
형사사건을 맡다 보면 피고인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 있다. 물론 이런 착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정 같은 낯설고 두려운 공간에 처음 놓이면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인 반응에서 나온 착각들이 때로는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들어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 인지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첫 번째 착각은 “무조건 부인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피고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때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리한 정황만을 근거로 “이건 무조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고, 때로는 억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증거 기록을 열어보면, 피고인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거나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컨대, 본인은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당시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문자 메시지, SNS 메시지, 이메일, 혹은 통화 녹음 파일 등으로 객관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