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피싱, 투자 사기, 재테크 사기, 코인 사기 등 이른바 보이스 피싱 범죄에 대해 수사기관은 형법상 <사기>가 아니라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있고, 조직원 중 자금 세탁책, 인출책 등에 대해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형법 제114조의 범죄단체 조직죄>까지 실체적 경합범으로 보고 기소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에서 위 3가지 범죄에 대해 한꺼번에 기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통신 금융 사기로 기소하여 1심이 선고된 후, 또는 심지어 2심이 선고되어 판결이 확정된 뒤에야 비로소 나머지 범죄사실로 추가 기소하여 법원에서 각형을 받게 함으로써 피고인은 장기간 법정에 서게 된다. 물론 법원에서는 <형법 제39조 제1항(경합범 조항)>을 적용하여 형을 선고하고 있으나, 재판을 받는 처지에서는 되도록 병합하여 판결받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1심에서 검사에게 나머지 혐의에 대해 최대한 빨리 기소해달라고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직접 대면하여 독촉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속기소 된 전기통신 금융 사기 사건의 경
나는 포항에서 형사사건을 가장 많이 맡는 변호사 중 한 사람이다. 수사 초기부터 법정 대응, 국민참여재판까지.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말과 표정을 읽는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내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첫 마디는 “변호사님, 저는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였다. 그는 동호회 모임에서 알게 된 여성과 술자리를 가졌고, 서로 좋은 감정이 오간 뒤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날 여성의 태도가 돌변했고, 며칠 뒤 그는 준강간 피의자로 소환되었다. 이 사연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그가 이미 수사를 홀로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본인은 결백하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수사기관에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법적 조언 없이 수사기관에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면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진술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남성의 경우 대화녹음, 영상, 메시지 등 물증도 없었다. 오직 피해자라 주장하는 여성의 눈물 어린 진술 하나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를 찾아오기 전 몇몇 로펌을 다녀봤지만 모두 ‘입증이 어렵다’, ‘사건이 어렵다’는 대답만 할 뿐이라고 했다. 물론 내 생각에도
마약 사건과 같이 중형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은 변호사를 믿고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상담하다 보면 자신의 변호인을 신뢰하지 않는 의뢰인을 종종 만난다. 물론 의뢰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혹여라도 변호사가 틀리지는 않을까?’, ‘내 사건에 정말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할까?’라는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의 수준을 넘어 아예 변호인을 불신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인이 꼭 필요한 상황임에도 이를 믿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변호사의 판단을 단순히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겁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심한 경우엔 수임비를 많이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반문을 받기도 했다. 성범죄나 마약 사건처럼 중형이 예상되는 범죄에서도 종종 변호인을 불신하는 경우를 본다. 당장 구속 수사 내지는 실형이 예상됨에도 변호인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을 믿지 않으면 선처 및 감형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건 사실상 어렵다. 얼마 전, 집행유예 기간 마약 투약을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이 의뢰인은 상담 당시엔 마약 투약 외에는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말하
보이스피싱에 가담되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문제는 그 억울함을 말로는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박의 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면 그 정황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냥 취직 좀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필자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한 의뢰인은 30년 넘게 경찰로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경찰관이었다. 평생을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그에게 은퇴 후의 삶은 낯설고 막막했다. 퇴직 후 찾아온 공허함과 무력감 속에서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지내던 의뢰인은 결혼을 앞둔 외동딸에게 한 푼이라도 보태주고 싶다는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아르바이트 공고는 ‘고수익 단기 일자리’를 제안하는 곳이었다. 시급도 좋았고, 복잡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아 의심 없이 수락했다. 그렇게 그가 맡게 된 일은 다름 아닌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현금 수거책’이었다. 보이스피싱은 점점 더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진화하고 있고, 지시도 매우 체계적이다. ‘고수익 알바’나 ‘간단한 심부름’처럼 위장한 모집 공고를 통해 범죄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단순한 아르
성범죄 사건에서 무혐의와 기소를 가르는 요건은 바로 강제력의 행사 여부다. 양측 동의가 있는 성관계나 스킨십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성범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문제는 합의가 있었다는 걸 객관적인 증거로 밝혀야 한다는 데 있다. 단순히 주장만 해서는 수사기관에서 이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합의를 확인하기 어렵다면 사건 전후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정황은 없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관계나 스킨십은 본질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이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거나, ‘행운’이 따른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계가 빠르게 진척된다면 자리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합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술은 오히려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한 의뢰인이 ‘숙박업소에 함께 가자고 한 것이 곧 성관계에 동의한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두 사람이
“억지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범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다. 수사기관이나 법원 앞에 선 순간, 이 말은 일종의 방어 본능처럼 튀어나온다. 나 역시 그 말이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이 같은 주장만 반복해서는 결코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재판은 감정의 호소가 아니라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판단의 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사재판이 그렇듯, 성범죄 사건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거 기록의 철저한 검토다. 수사기관이 수개월에 걸쳐 수집한 기록들 속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 참고인의 말, 현장 상황, 사건 전후의 정황 등의 수많은 정보가 있다. 기본적으로 검사가 기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분히 기록을 검토했고, 그 기록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형사재판의 기본은 공소사실과 증거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에 있으나, 간혹 사건 속에는 수사기관조차 놓친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기도 하다. 피고인이 기억해 낸 사소한 정황, 공개되지 않은 메시지나 사진 한 장이 전체 사건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 발견은 결코 우연이 아
필자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은 예전부터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실제로 수많은 난관이 있는 사건들에서도 의미 있는 합의 결과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인지 “‘법무법인 청’은 합의를 잘해준다”는 평판이 종종 들려온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로펌이 어떤 마법과 같은 기술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합의도 결국은 양 당사자의 이견을 조율하는 절차이고, 그만큼 기본이 중요하다. 합의를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담당 변호사가 사건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어 내용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소한 사실관계도 빠뜨리지 않아야 피해자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설득이 가능해진다. 흔히들 “서로 간에 금액만 맞으면 끝나는 것 아니냐?”, “합의금을 많이 마련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시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쳐 보면 그렇지 않다. 돈을 많이 제시하고도 합의에 실패하는 케이스는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진행한 사건 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을 제시하고도 성공한 사례가 많다. 금액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정한 요구(needs)를 파악하는 것,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바로
나는 30년 동안 형사재판정 한복판에 서 왔다. 무수히 많은 재판을 거치며, 때로는 판결이 상당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피부로 느껴왔다. 형사재판정에서 판사는 혐의만을 본다. 그리고 대법원이 정한 범죄별 양형기준표에 따라 가중 또는 감경 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한 후 거기에 맞춰 형을 정한다. 그러나 판사도 인간이다. 피고인의 기구한 인생의 흐름, 고단한 삶의 궤적, 그리고 결국 그를 법정에 세운 배경이 변호사인 나까지 울릴 만큼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면, 나는 확신한다. 판사 또한 그것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재판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형법 제53조, ‘정상참작감경’에 관한 규정이다. 형법 제53조는 단순히 형량을 깎아주는 법적 장치가 아니다. 이 조항은 재판이 단죄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유심칩 판매·관리를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나를 찾아온 의뢰인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포항 사람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들을 위해 먼 길을 달려 내 사무실까